혼자서는 못하죠. 뭐...

치료의 기회를 포기하는 환자

by 여행자

70대 노인은 식도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다. 1차 항암치료가 종료되어 퇴원이 가능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환자는 하루도 더 병원에 있기 싫었는지 퇴원을 원했다. 퇴원했던 노인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응급실에서 볼 수 있었다.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던 환자의 기력이 마음 같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1차 항암치료는 종료되었지만, 방사선 치료가 남았다. 입원이 필요하지 않고 5주 동안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5주 동안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딸이 있지만 정신과 질환으로 이미 1개월 이상 정신과 병원에 입원 중이라 환자를 도울 수 없다.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지만, 노인을 도와줄 가족이 없고 치료 욕구가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며 의사가 사회복지팀에 의뢰했다.


표정도 없고 기력도 없는 노인은 무기력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노인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야죠 뭐….”


“도와줄 가족이나 지인이 있으세요?”


“딸이 있기는 하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퇴원하면 곧 다시 입원할 겁니다.”


“힘들게 항암치료를 받았고 5주 동안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데 환자분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좋다던데 혼자서는 못하죠. 뭐….”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싶으세요?”


“도와주는 사람만 있으면 받아야지요.”


“평소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보내주는 곳이 있어서 그렇게 살았어요.”


“그곳이 어딘가요?”


“OOO 재가돌봄센터에서 한 번씩 집에 찾아왔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가돌봄센터에 연락했다. 다행히 노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병원 동행을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반나절이나 심하면 하루 종일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므로 매일 동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접수부터 검사, 대기시간까지 하루 종일 병원에 매여야 하는 일을 자주 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된다. 그럼에도 담당자는 노인을 만나보기로 하고 병원을 찾아왔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했던 재가돌봄센터 담당자는 노인을 만나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 동행은 둘째치고 지금의 건강 상태로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하므로 집으로 퇴원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나는 치료 과정에 집중한 나머지 일상생활 유지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것에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병원을 선택했다. 의사도 충분히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요양병원으로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방사선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며칠을 더 입원한 노인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어떻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였을까?


치료를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아무리 좋은 치료 방법이 있어도 타인의 도움 없이 치료를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환자가 많다. 가족관계가 약화하고 독거노인의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소득·자산 및 교육 수준이 높은 노인이라고 해도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운 건강 상태라면 비슷한 문제는 발생한다.


진료 동행을 도와주는 유료 서비스도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결국 치료의 기회를 포기하는 환자는 발생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은 단지 생활 습관의 개선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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