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의 세이브를 만들어놓고 호기롭게 연재를 시작했다. 열한 편의 글 중 다섯 편을 써놨으니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든 게 생소했다. 구독해 주신 분들의 목록을 엑셀로 뽑고, 그 엑셀 파일을 이용해서 네이버 주소록에 저장했다. 생각처럼 한 번에, 쉽게 하진 못했다. 시간이 걸렸다.
구독자 분들의 메일 주소를 저장하고, 메일을 썼다. 글씨체와 글씨 크기를 조정했다. 첫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별거 없는 짧은 문장을 쓰는데도 많은 시간이 들었다.
미리 써둔 세이브 내용도 막상 보내려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보며 자꾸 고쳤다. 핸드폰으로 보실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해 '나에게 보내기'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읽었을 때의 가독성을 살폈다. 핸드폰으로 보며 또 글을 수정하고, PC로 보며 한번 더 수정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갔다.
미리 써놓은 글을 보내려고 보니 마음에 안 들어 완전히 새로 쓴 적도 있다. 써놓은 글을 그대로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쯤 되면 세이브라기보단 초고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5일 만에 세이브가 모두 없어졌다. 그나마 있던 초고마저 없어지자 더 초조해졌다.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다행히 여섯 번째 글을 쓰고 난 후엔 주말이 있었다.
주말 동안 세이브를 다시 만들어놓자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글이 안 써졌다. 분명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는 하루에 하나씩 잘 썼는데... 결국 글을 쓰지 못한 채 월요일이 다가왔다.
월요일 아침, 신기하게도 책상 앞에 앉아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8시에도, 10시에도, 12시에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2시가 되어도 마찬가지었다. 자괴감이 차올랐다. 그냥 울고 싶었다.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고 나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4시가 돼서야 꾸역꾸역 쓰기 시작했다. 뒤늦게 쓰기 시작한 글은 고쳐도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니 어쩔 수 없이 글을 놔줘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해놓은 시간인 6시를 넘겨 6시 16분에 메일을 보냈다.
그날은 밥을 차려먹을 기운이 없어 치킨을 시켜 먹었다. 치맥을 먹고 취중 요가도 갔다 왔다. 요가를 갔다 와서 더 글로리도 봤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잘할 수 있을까? 모레는? 그다음 날은?
11시, 내가 좋아하는 웹툰을 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구독자분의 메일이었다.
‘오늘 글, 특히나 더 좋았습니다.’
특히, 좋았다... 내가 힘들게 쓴 글을, 내가 꾸역꾸역 쓴 글을, 내가 거지 같다고 생각했던 글을, 누군가가 특히, 좋다고 말해줬다.
엉망진창이었던 하루가 환해졌다. 보낸 메일함에 들어가 다시 글을 읽어봤다. 괜찮아 보였다. 여전히 내일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날 이후에도 글이 안 써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앉아있어도 4시쯤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날만큼 힘들진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메일을 보내고, 무사히 연재를 마쳤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받는 응원의 메일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