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과 말투가 아니라, '일치'가 답이다
발표나 스피치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론이 있다.
말의 내용(언어)은 7퍼센트만 전달되고,
나머지는 표정(시각)과 말투(청각)가 결정한다는 이야기.
이른바 "메라비언의 법칙"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라는 것,
논리보다 표현이나 인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생략이 있다.
앨버트 메라비언의 연구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법칙이 아니다.
그 연구가 다룬 것은
훨씬 더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말의 내용과 표정, 말투가 서로 어긋날 때,
사람이 무엇을 더 신뢰하는가.
핵심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괜찮다(언어)"고 말하면서도
표정(시각)은 굳어 있고, 목소리(청각)는 차갑다면,
우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이때 사람은
언어(7%) : 괜찮다는 말보다
시각(55%) : 표정과
청각(38%) : 말투를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수치화 한 것이 바로
[ 시각 55 : 청각 38 : 언어 7 ]이라는 공식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수치가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는 법칙처럼
확장되어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적 내용보다 시각적 이미지나 청각적 요소,
즉 표현이 훨씬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가 말해주는 것은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 연구의 핵심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긋날 때
사람이 무엇을 더 믿는가에 있다.
내용과 태도가 충돌하면
사람은 메시지 자체로 들어가지 못한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먼저 생기고,
그 순간 메시지는
제대로 검토되기 전에 멈춘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바꿔보자.
말의 내용과 표정, 말투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때도 여전히
내용은 7퍼센트에 불과할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말과 태도가 일치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그 내용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때부터는
표정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이 지점에서 메라비언의 법칙은 다르게 읽힌다.
비언어는 내용을 대신하는 요소가 아니라,
내용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문을 여는 것과
방 안을 채우는 것은 다르다.
표정과 말투가 문을 연다면,
사람을 끝까지 머물게 하는 것은 결국 내용이다.
그래서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표현을 꾸미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표정이 좋고 말투가 부드러워도
메시지에 논리가 없으면 오래 남지 않는다.
반대로 내용이 좋아도
표정과 말투가 그것을 무너뜨리면
애초에 전달이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셋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내용, 표정, 말투를 서로 맞추는 일이다.
메라비언의 법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말보다 표정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사람은 불일치에 민감하다는 것,
그리고 그 불일치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내용이 평가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인상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담는 태도를
일치시키는 일이다.
말의 힘은
표정과 말투의 방해 없이
내용이 온전히 전달될 때
비로소 생긴다.
-
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