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그녀에게, 뭐라고 첫마디를 건넬 것인가
한적한 버스 안이었다.
자리는 적당히 차 있었다.
창밖을 보며 앉아 있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누군가 올라탔다.
그리고 내 앞자리에 앉았다.
순간 가슴이 요동쳤다.
이상하게 시선이 한 번 더 갔고
계속해서 눈이 갔다.
내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 것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짧은 생각이 스친다.
'용기내서 말을 걸어볼까'
여기서 질문.
만약, 당신이라면
첫눈에 반한 그 사람에게 뭐라고
첫마디를 건넬 것인가?
이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보통
'더 좋은 말'을 떠올리려고 한다.
조금 더 센스 있게,
조금 더 인상적으로.
그래서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첫 번째
“아름다우십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대화라기보다 어설픈 혼잣말에 가깝다.
상대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두 번째
“저, 이번에 내려요.”
구닥다리 CF 멘트다.
'내린다'라는 정보는 전달되지만.
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세 번째
“어디까지 가세요?”
처음으로 질문이 나왔다.
잘하면 대답도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어색하다.
왜일까.
강의 중 위와 같은 상황을 주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의 표현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화를 어색하게 만드는 건
표현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대화를 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내가 어떤 인상을 줄까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즉, 말의 중심이 '나'에게 있다.
그래서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지 않는다.
이건 낯선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익숙한 관계에서도
더 자주 같은 실수를 한다.
회의가 끝난 뒤,
선배가 후배에게 야단치듯 한마디를 던진다.
“김 대리, 이거 왜 이렇게 됐어?”
순간 공기가 바뀐다.
김 대리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한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덜 문제처럼 들릴지,
내 잘못으로만 보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답은 시작되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다.
설명이 길어지고,
변명처럼 들리지 않으려 애쓰고,
대화는 점점 더 딱딱해진다.
같은 상황에서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김 대리, 이거 진행하면서 막혔던 부분 있었어?
나도 사실 옛날에 이 부분이 많이 어려웠거든”
이 질문을 들으면
생각하는 방식부터 달라진다.
문제가 아니라 과정을 떠올리게 되고,
잘못이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게 된다.
“사실 중간에 일정이 한 번 밀리면서…”
“그때 자료가 들어오긴 했는데…”
말(대화)이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한다.
두 질문의 차이는 크다.
대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놨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결과를 향하고,
두 번째 질문은 경험을 향한다.
첫 번째 질문은 문제를 먼저 꺼내고,
두 번째 질문은 사람의 과정을 먼저 꺼낸다.
그리고 이 차이가
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결과 중심의 말은 상대를 방어하게 만들고,
경험 중심의 말은 상대를 참여하게 만든다.
앞에서 살펴본 두 상황을 관통하는 기준은 하나다.
말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나를 중심으로 시작된 말인가,
둘 사이의 공통된 상황에서 시작된 말인가.
내 중심의 말은 상대를 긴장시키고,
공유된 지점에서 출발한 말은 상대를 참여시킨다.
그래서 대화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태도에 가깝다.
내가 얼마나 준비된 말을 갖고 있느냐보다,
지금 이 사람과 무엇을 함께 공유하고 있느냐를 먼저 볼 수 있는 감각 말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버스 안에서
첫눈에 반한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가장 자연스러운 시작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혹시, 이 버스 어디까지 가나요?”
이 말이 좋은 이유는
특별해서가 아니다.
부담이 없고,
이상하지 않고,
무엇보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놓여 있는
같은 상황(같은 버스)에서 출발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나를 드러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말이다.
그래서 대화가 열린다.
대화는
좋은 말을 찾는 기술이 아니다.
같이 서 있는 지점을 발견하는 태도다.
그리고 첫마디는
그 지점을 향해 던져질 때
비로소 자연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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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