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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레매거진 Feb 07. 2021

[서울씬기행] 카레우동 먹으러 카페 갈래?

서울씬이란? 서울은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하철을 통해 서울 구석구석을 오간다. 어떤 학자는 경기도와 의정부 인근을 합쳐 ‘대서울’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 주변의 위성 도시들이 서울 생활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점을 감안한 제안이다. 


서울은 한국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때로는 한국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서울씬이란 ‘서울’이란 지명과 장소, 순간을 의미하는 ‘씬scene’을 합쳐서 만들어낸 조어이다. 서울에서 무너지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공연장, 펍, 카페, 전시장, 영화관 등을 이 서울씬이라는 의미 구조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잔의 룰루랄라
사진 출처 : 한잔의 룰루랄라 SNS


그 첫번째 타자는 홍대에 존재했던 만화책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다. 이 카페를 설명하기 전에 카페가 사라지기 직전에 있었던 ‘45일간의 인디여행’이라는 이벤트의 한 장면을 보고자 한다. 


때는 새벽 2시 정도이고 만화책 수천권이 쌓인 ‘한잔의 룰루랄라’는 인디밴드를 위한 공연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기타를 들고 있는 것은 인디 밴드 듀오 위댄스의 ‘위기’이고,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은 ‘위보’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곡을 ‘언픽스드’라는 가내 수공업 앨범을 통해 공연장에서 팔아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냈던 모든 곡을, 100곡에 가까운 곡을 쉬지 않고 연주하기로 했다.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벌써 4시간이 넘어가는 공연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춤을 추고 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서 위댄스가 전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다 지켜봤다. 


위보는 “이 카페가 사라질까요? 믿기지가 않아요. 정말 사라질지 알 수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결국 ‘한잔의 룰루랄라’는 사라졌다. 홍대앞 소식을 전하는 스트리트 매거진 ‘스트리트 h’의 기사에서 ‘내가 홍대앞을 떠난 이유’라는 제목 아래 카페 주인 이성민씨가 적은 바에 따르면 “’45일간의 인디여행'은 한잔의 룰루랄라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동시에 룰루랄라가 건네는 작별인사 같은 거다”고 했다.

인디씬이 ‘한잔의 룰루랄라’에게 보내는 송가였던 45일간의 공연은 52일까지 늘어나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사라진 또다른 공연장인 ‘살롱 바다비’가 월세를 내지 못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비를 살리기 위한 릴레이 공연이 펼쳐졌던 적이 있다. ‘한잔의 룰루랄라’도 그런 방식의 ‘살아남기 위한 아우성’을 쳐보아도 좋으련만 연속 공연이 끝나고 카페는 예정대로 문을 닫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편중된 자영업자 비중과 매일 같이 사라졌다 또 생겨나는 카페의 생명을 볼 때 ‘한잔의 룰루랄라’가 사라진 것은 매일처럼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룰루랄라는 단순한 카페이기를 넘어서 인디밴드들이 연주하는 장이었고, 만화가들이 찾아와 계절마다 바뀌는 그림 메뉴판을 그려주기도 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소중했던 공간임에도 왜 룰루랄라는 맥없이 사라졌던 걸까. 홍대 앞 칼국수집이자 대형 건설사에 맞서 싸웠던 공간인 ‘두리반’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한겨레21에서도 ‘한잔의 룰루랄라’의 폐업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서 운영자 이성민씨의 고민을 읽어볼 수 있다. 


“3월 이후 인테리어 공사를 하겠다고 건물주가 통보했고, 2월은 설날도 있고 월세 내기 버거우니 1월까지만 장사하자, 그렇게 생각했죠. 월세가 많이 밀려서 건물주한테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명도소송 해서 쫓아낼 수도 있는 상황이죠.”

한잔의 룰루랄라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월세 내기가 버거울 정도로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카페의 마지막은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안녕히 가세요’가 되었다.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공연하던 인디 음악가들은 이렇게 회상하곤 한다. 밤 12시 넘어서 카페에 앉아있으면 누가 대체 이 구석진 곳까지 찾아올까 싶었다고. 그런데 한 명이 오고, 두 명이 오고, 날이 샐 때까지 누군가는 찾아오곤 했다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면서 카페임에도 매상을 위해서 팔았던 카레 우동, 깻잎 소바, 열무국수를 먹곤 했다. 


월요일에는 ‘먼데이 서울’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어서 월요병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인디밴드끼리 상대의 곡을 커버하는 공연인 ‘불우의 명곡’도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인디밴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귀중한 기회였다.

어쩌면 한잔의 룰루랄라도 ‘아는 사람만 아는’ 힙스터의 성지였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면 가치가 떨어지지만, 손님이 적으면 장사가 안되어서 결국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아버리는 곳.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힙스터 성지’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네이버 블로거 ‘민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잔의 룰루랄라를 기억하며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사장님과 직원들은 불친절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 공간에서의 추억이 모두 아름다워서 사랑에 빠졌다”고 썼다.


사람들이 룰루랄라에 기대했던 것은 얄팍한 것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를 만나고, 그들의 온기를 느끼고, 새로운 음악을 얻고, 룰루랄라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먹곤 했다. 참고로 내가 국내 수제 맥주 브랜드인 세븐브로이 IPA를 처음 알게 된 곳도 이곳이었다. 룰루랄라에서 먹는 맥주맛은 항상 좋았고 공연을 볼 때마다 내 손에는 맥주 한잔이 쥐어져 있었다. 

룰루랄라는 불규칙적으로 문을 열고 닫아서 항상 SNS를 확인해봐야 하는 곳이었다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인디 뮤지션 김사월이 알바를 했던 곳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룰루랄라에 대해 어떤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있든지 이곳이 특별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룰루랄라에서 제각기 행복했다.


카페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남아 있다. 한잔의 룰루랄라의 주인이었던 이성민씨는 지금도 홍대 주변에서 여러가지 공연과 팝업샵을 기획, 실행하며 그 명맥을 잊고 있다. 장소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룰루랄라 카레 우동을 먹고 싶다면 이성민씨의 SNS를 확인해보면 된다. 가끔씩 어디선가 나타나 음식을 팔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게의 SNS를 그대로 쓰고 있으니 검색해보면 된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1년 이상 휴업 상태로 지낸 공연장이 많아지면서 홍대의 인디씬이 흔들리고 있다. 홍대의 대표적인 공연장이었던 브이홀도 영업을 접었고, 드럭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역사를 종료한 DGBD의 사례도 있다. 내한 공연이 자주 열렸던 무브홀, 소규모 공연장 퀸 라이브 홀도 문을 닫았다. 이 글은 이미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질지도 모를 공연장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작업이다. 

이 글을 통해서 새로 알게 된 공간이 있거나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던 곳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면 이 글이 제 목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제이슨

*who am i?

제이슨(rnfmaql@gmail.com)

시민단체에서 간사를 하다가 현재는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일본 인디 걸즈밴드의 음악을 좋아하고 SF를 즐겨 읽는다.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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