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목공 ⑨ 원목 스피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어회화 테이프와 ‘카세트 레코더’를 선물로 받았었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 옛날의 ‘카세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LG전자가 된 ‘금성사’의 ‘TCM 508’이라는 모델인데 근대사 인테리어 골동품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 싶긴 하다. 어학 전용이어서 그런지 포터블이라고는 하지만 도시락만 한 크기에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 사운드에다 건전지가 4개나 들어가는 제품이다.
사실 어학 학습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영어 회화 테이프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이 ‘카세트’는 늘 애용했었다. 서비스(?)로 제공된 ‘폴 모리아 악단’의 경음악 테이프가 하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파도소리가 배경처럼 깔리면서 느끼하게 흐르는 색소폰 소리 같은 게 왜 그렇게 좋았을까? 이후에도 이 카세트와 번들 이어폰으로 ‘가제보’나 'FR-David' 같은 팝송을 들었었다. 연신내 사거리의 미도파 슈퍼 1층에 있는 음악사에서는 원하는 음악을 적어내면 이걸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었는데 당시에는 금지곡이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난생처음 가져보는 이 음향기기에 한참 빠져있어 이게 최신식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는 걸 얼마 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이 ‘카세트’는 ‘저가 보급형 어학기’였고 이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고 스테레오 빵빵한 하이엔드 기기인 ‘소니 워크맨’을 가진 친구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학교에는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만 이어폰을 끼고 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작은 누나가 쓰던 ‘삼성 마이마이 8’을 물려받아 소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여러 오디오 기기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런 걸 구비할 처지도 아니었고 게다가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화했다. LP, 카세트테이프가 없어지고 CD가 최고인 듯싶더니 금방 MP3 플레이어가 대세가 되었다. 애플의 ‘아이포드’을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기기가 아닌가? 이제는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 모든 걸 대신하고 있지만 이도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문제다.
목공을 시작하고 다시 오디오에 관심을 가져볼까 했었다. 전자제품을 만들 수는 없으니 사실 오디오 기기가 아닌 스피커에 대한 관심이었다. 하지만 어느 전자제품이던지 소리가 나오는 제품은 제법 좋은 스피커들이 내장되어 있고 또 스피커라는 것을 따로 설치하는 일도 드물다. 추억의 물건일 뿐이지 실용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장 쓸만한 것이 블루투스 스피커였는데 스마트폰의 음악을 쉽게 연결해 크고 울림 좋은 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원목 스피커! 일반 스피커 몸체를 원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소리를 증폭시켜주는 스피커였다. 그래 이거다. 만들어 보자.
제작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직사각형 판재 네 장을 붙여서 스피커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맨 뒤의 판재는 따로 가공할 필요가 없다. 소리를 받아주고 스마트 폰이 잘 거치되면 된다. 중간판은 스마트 폰의 절반 정도가 쏙 들어가게 해 준다. 정확히는 스마트폰의 스피커 부분이 들어가게 판재를 잘라주면 된다. 눈에 가장 많이 보이게 되는 앞판이 문제인데 스피커와 같은 느낌으로 디자인해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작은 오디오 기기들을 검색해보며 디자인과 설계를 완성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전기에너지를 소리에너지로 바꿔주는 것이 아니고 소리를 모아서 앞으로 내보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복잡할 이유는 없다. 손을 모아 입에 대고 소리를 내는 입 나팔이나 종이를 동그랗게 말아 입에 대고 말하는 확성기를 상상하면 된다. 사방으로 퍼지는 소리를 막아서 앞으로만 나가게 하니 소리가 울리고 커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오래 애쓰지 않고 첫 무전원 원목 스피커를 완성했다. 스마트폰을 올리고 음악을 틀어보는 그냥 듣는 것 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소리가 조금 커지고 울림이 좋다. 게다가 저음이 강화된 듯하고 안정감이 있다. 스마트폰 거치대로도 쓸 수 있어 식탁이나 협탁 같은데 올려놓고 사용해도 좋다. 작은 소품이지만 최첨단의 하이엔드 오디오와는 다른 만족감이 있고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환경 친화적인 감성이다. 인생 스피커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 옛날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던 ‘뉴트롤스’의 음악을 내가 만든 원목 스피커로 들어본다.
여담 하나
처음 만든 원목 스피커는 기능면에서는 아쉬움이 없지만 크기와 디자인이 더 개선됐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목공 동호회 회원들이 여러 가지 변화를 주면서 안정감 있고 성능 좋은 모델이 완성됐다. 이제는 우리 목공방의 시그니쳐가 됐다.
여담 둘
어마어마한 가격의 ‘하이앤드’ 스피커나 빈티지 감성의 ‘로우앤드’ 제품과는 전혀 다른 만족감의 스피커다. ‘우드 앤드’ 쯤으로 이름 붙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