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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문과적인, 원목테이블 만들기

레드파인 소나무 테이블 제작기

by 황반장

모퉁이 돌아 몇 걸음. 문을 열고 계단을 돌아 내려간다. 익숙한 기계소리를 배경으로, 믹스커피 봉지를 뜯고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나니 “오늘도 텀블러를 안 챙겨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후후 불어 마시는 달달커피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가방에서 스프링 노트와 연필을 꺼내 도면 비슷한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러니깐 컴퓨터 운영체계가 ‘DOS’ 였던 때, 자세히 말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군부가 우리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시절에, 플로피 디스크 10장이 넘는 분량의 설계 프로그램인 ‘CAD를’ 깔아 썼으며 독일제 ‘로트링’ 제도 펜으로 도면을 그렸던 나의 과거는 그때 경력이 단절된 채 이어지지 못했다. 이제라도 최신식 장비에 최신형 앱을 설치해 뭔가를 배워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모눈종이 위에 연필로 그렸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그 도면 비슷한 그림 옆에 곱하기 빼기를 적어나가는 작업방식을 고수한다. 아니 그 정도에 머물기로 했다.


오늘 작업은 여성 단체의 상담실에 놓일 원목 테이블. 작업의 시작은 나무의 종류를 결정하는 일이다. 나뭇결이 유려하고 중간중간 옹이가 있어 원목을 그대로 켜낸 느낌의 레드파인 집성목으로 하기로 했다. 다음에는 테이블 상판의 두께, 그리고 테이블 다리의 나무 종류 및 두께를 정하면 된다. 너비와 높이는 정해진 크기가 있으니 그대로 하고, 구조적인 설계와 재단할 나무의 치수를 곱하기 빼기로 계산하고 나면 도면 비슷한 그림이 완성된다. 물론 이대로 잘 재단내고 착착 맞게 제작해 나가는 과정이 남아있다.


이번에 선택한 나무는 목공인들이 보통 ‘레드파인(redfine)’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소나무’다. 뾰족한 바늘 같은 잎, 두껍게 갈라진 껍질, 험한 벼랑에서도 구불구불 굳건히 서있는 모습으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모양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나무다. 그래서인지 소나무는 덥고, 춥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잘 자라는 환경, 선호하는 자리가 따로 있다. 그중 하나는 햇빛을 아주아주 좋아한다는 것. 소나무는 참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측백나무와 함께 햇빛을 좋아하는 대표적 나무로 꼽힌다. (참고로 그늘을 좋아하는 나무로는 단풍나무 사철나무, 가문비나무가 있다. 표현상 그늘을 좋아하는 나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그늘에서 잘 견디는 나무다. 이 나무들도 성장하는데 햇빛은 꼭 필요하다)


소나무는 햇빛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늘이 지는 아래쪽 가지의 이파리를 떨구어 내기도 한다. 더 잘 자라기 위해서다. 당연히 아래쪽 가지들은 크게 자라지 못하고 옹이만 남긴 채 도태되어 버린다. 또 잘 자란 소나무 숲은 거의 다 비슷비슷한 나이를 가진 군락인데 큰 나무의 그늘 아래서는 작은 묘목이 자라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해서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나무 묘목 군락을 따로 만들어 간벌을 하면서 키워야 한다. 이런 사람의 노력과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의 특성 덕에 간격이 비교적 일정한 나이테 무늬와 작은 옹이가 알맞은 박힌, 가구나 소품의 소재로 좋은 목재를 쉽게 구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할 목재를 한참 보고 있을 때가 있다. 옅고 붉지만 맑은 색감, 봄날 강물 흐르듯 밀려가는 나이테, 그 시간이 흔적으로 남은 듯한 옹이를 보며 ‘햇빛을 잘 머금었구나’ 생각한다. 물론 아주 문과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좋지 아니한가? 상담실에 놓일 레드파인-소나무 테이블이 햇빛을 머금은 듯 포근한 온도를 전달해 주길 기대해 보면 작업에 더 기운이 생기니 말이다.



<작업 일지>


1. 레드파인은 색상과 나이테 무늬만으로도 안정감 있지만 좀 더 무게감을 주기 위해 상판에는 24mm 두께의 집성목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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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이프런’이라 부르는 상판 아랫부분과 다리의 연결은 단차를 두지 않고 평평하게 설계해 작업했다. 시선을 분리시키지 않는 단순함이 의도인데,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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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에 보이지 않는 밑면도 꼼꼼하게 마감했다. 우리 아들이 어릴 적 코딱지를 붙이기 위해 손을 자꾸 상판 아래로 넣는 것을 보고 이 부분에도 무심결에 손이 닿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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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햇빛 머금은 상담테이블이라 이름 붙여 배송까지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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