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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응원봉 없어서 직접 만든 탄핵 망치

원목 망치 제작기

by 황반장

당연히 아는 풍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깃발을 앞세우고 열을 맞춰 앉은 사람들. 단체복 조끼를 입고 팔뚝을 높이 들며 외치는 구호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아가자는 격정적인 노래가 높이 울려 퍼지는 것을. 평생 봐왔으니까. 집회나 시위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형식을 만들었다. 혼자서는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도 작고, 앞서는 것이 두렵기도 해서, 깃발을 띄우고 무리를 짓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주장을 실어주는 신문이나 방송국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스스로 요구를 써붙이고 자신의 목소리로 외쳐야만 한다. 그저 시늉이 아니라 간절하고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에 노래는 격정적이고 드높다.

윤슬이라 생각했다. 작은 물결들이 반짝이며 수평선 끝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다가가서 보니 아니었다. 사람의 물결이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반짝이고 있었다. 손에 손에 빛이 나는 물건을 들고 있었기 때문인데 ‘응원봉’이라고 했다. 빨갛고, 파랗고, 빛나고, 흔들리고, 반짝이고 일렁거렸다. 유명하다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나오니 일제히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윤슬인 줄 알았더니 파도가 되었다가 해일이 되었고 또 은하수로 흘렀다. 당연히 모르는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누군가 콘서트장 같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는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는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할 만한 비유는 아니라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춥고 낯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해본다. 두께가 있는 엠보싱 깔판, 가방에 들어가는 은박 돗자리, 대용량 핫팩도 여러 개, 뜨거운 커피와 차도 준비했다. 통곡물 에너지바도 몇 개 사놓았다. 체력소모도 꽤 많아 중간에 열량을 보충해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꺼운 옷은 기본이어서 롱패딩과 넥워머도 꺼내 확인해 두었다. 물러서지 않고 견뎌낼 만한 여러 가지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응원봉을 든 그들의 모습을 눈여겨봐 둔 덕이다.


문제는 응원봉이었다. 예전처럼 종이컵과 초를 나눠 줄 거라 생각했다가 낭패를 보았으니 무언가를 직접 준비해야 한다. 이왕이면 반짝반짝 응원봉을 준비하고 싶었다.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응원봉을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이 여럿 있었는데 모양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게다가 아이돌 가수별로 각각 모양, 색상, 문구가 다 달랐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아이돌의 아저씨팬도 아닌데 굳이 이걸 사야 할까 고심하다가 응원봉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 애지중지 아꼈다가 내 가수를 응원할 때만 들고 나오는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 그렇게 지나 온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라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만했고, 굳이 내가 집회용으로 장만할 필요는 없다 결론지었다.


춥고 두려웠던 밤을 견뎌냈으니 더 무리 짓고, 더 비장하고, 더 결연하리라 예상했지만, 이 예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데 일각이 걸리지 않았다. 응원봉의 물결은 자유롭게 일렁였다. 각자였으나 혼자가 아니었고 굳건하지만 경직되지 않았다. 비장하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고 형식이 없었지만 흩어지지 않았다. 나도 내 손에 익숙하고 내 생활이 묻어있는 원목망치를 만들어 들고 동참했다. 반짝이는 응원봉 무리들과 함께 노래에 맞춰 흔들어 본다. ‘소녀시대’를 모르진 않지만 ‘다시 만난 세계’를 쫓아하진 못한다. 망치만 냅다 흔들었다. 다음으로 ‘삐딱하게’가 나왔다. 이건 미리 공부해 두었다. ‘써! 써! 오늘밤은 삐딱하게!’ 정도의 후렴은 같이 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내가 완창 할 수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왔다. 목청껏 불러보았다. 옆에 선 청년은 노래를 모르는지, 아니면 어색한지 응원봉만 흔든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갈 때쯤. 이 청년도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부분만 아는 듯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울컥. 목이 메었다.



<작업 일지>


1. 뭐 탄핵 망치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나무를 끼우고 맞출 때 쇠망치를 사용하면 망치머리 자국이 찍히듯이 남는다. 그래서 자국이 남지 않는 나무로 망치를 만들어 사용한다.


2. 망치 머리는 무게감이 있는 것이 좋아 물푸레나무를 사용했다. 작업용 망치는 그저 사각이어도 충분하겠지만 이 망치는 다른 의미가 있으니 모서리들을 45도로 작업했다.


3. 손잡이로 딱 맞는 것이 없어서 사각 각재를 봉으로 가공했다. 부주의로 망치가 획! 날아가버리면 안 되니깐 구멍을 뚫고 손에 걸 수 있는 고리를 걸어 완성!


4. 레이저 각인기를 이용해 현재 하고 싶은 이야기 ‘탄핵’과 ‘구속’을 새겨 넣었다. 꼭!



<덧붙여진 이야기>


공방 회원 한분이 이 망치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딸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광화문에 갈 때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고. 기꺼이 사용하시라 드렸다. 나는 지난번 들고나갔던 캠핑용 무드등에 목봉을 달았다. 두꺼운 장갑에도 그립감이 좋도록 원뿔형으로 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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