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야

나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by 명희

당신은 자신의 잠재력을 찾았나? 아직 찾지 못했다면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말하는 "개체화"를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개체화"한다는 것은 부모나 사회와는 다른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되는 거다. 그래야 진정한 자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참된 소명을 알게 된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자신의 잠재성도 모르는 거다. 인간은 모름지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인간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카를 융의 인용문과 그에 관한 동영상 내용을 상기하며 내 생각을 적어본다.


“세상은 당신이 누구인지 물을 건데 대답하지 못하면 세상이 당신이 누구라고 말해줄 거다."

당신은 자신 있게 자신이 누구인지 대답할 수 있나?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중이다. 어릴 때는 부모의 말이 법이었다. 부모가 정해준 테두리에서 친구마저 내 마음대로 사귈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나 선생님의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지만 무서워서 그냥 받아들였다. 그러다 40이 넘어 어느 날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른 사람만 쫓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갖고 있던 가치를 재점검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건 맞다. 그러나 나만 잘 사는 건 의미가 없다. 좋은 학교를 간 사람이 나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그토록 오랫동안 공부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공부는 왜 했나? 나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재미있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복잡한 사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모르는 게 많아서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세상이 살만하다.


“자신의 강렬한 감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융은 억누른 욕구를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무섭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이걸 알려면 일기를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이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자신을 용서하고 좋아하는 것을 위한 시간을 내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조금 헷갈린다.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 괜찮다고? 그건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듣고 싶은 말에만 꽂힌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을 주관적으로만 해석하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웃집 아내를 좋아하게 됐다고 치자.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용서하라는 건 그런 행동이 괜찮다는 건가? 이래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한다. 물론 융이 의도한 건 이런 게 아닐 거다. 설사 머릿속에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서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하라는 걸 거다. 돌이켜보니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감정이 꿈에서 나타났던 것 같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 당시 실제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은 불량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많은 편견을 갖고 살았다. 아마도 집에서 엄한 교육을 받고 친구 따라 간 교회에서도 하지 말라는 행동이 많아서 잠시 강한 감정이 들어도 곧바로 억제해서 내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겉으로 편견이 없는 발언을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편견이 남아있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로 인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되고자 선택한 사람이다.”

융은 우리 의지가 우리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지만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집단적 무의식”의 힘을 알고 있었다. 인간 역사가 주는 메시지... 그래서 더더욱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온전히 잘 기능하는 인격을 가지려면 자신의 미성숙한 부분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통합의 과정도 "개체화"다. 그리고 희망하는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지 모른다면 그저 흐름에 따라갈 거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래서 학생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수업을 하고 싶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고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가르치는 일은 얼추 계획했던 대로 이룬 것 같은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카를 융은 우리가 "개체화" 과정을 통해 자기실현을 할 수 있고 자신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점검하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어두운 마음이 무엇인지 다시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종합체가 자신이라는 걸 인지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라 미래에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BTS의 리더 김남준이 유엔에서 연설한 대목이 생각난다. "이러한 결점과 실수가 저 자신이고 제 인생의 성좌에서 가장 밝은 별들입니다. 저는 지금의 저, 과거의 저, 미래에 되고 싶은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말인데 왠지 자신을 사랑하고 그대로 머무르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이 든 나는 아무래도 다음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 이래서 젊은 사람들이 어른을 부담스러워 하나보다.



<참고자료>

https://youtu.be/-8WekZ6D-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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