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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Aug 31. 2023

<<전체주의의 기원>>

소감 3: 폭도와 집단적 폭군

정부에서 후원하고 의회에서 인정한 사업에 투자했는데 사기였다. 그러면 정부나 의회를 탓할까? 사람을 탓할까?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프랑스는 유대인을 꼭 집어 죄인으로 낙인찍었다. “유대인 사형!” 어쩌면 나치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가 먼저 유대인을 학살할 수도 있었다. 걷잡을 수 없던 반유대주의 소용돌이는 파나마 스캔들에서 시작해서 드레퓌스 사건으로 옮겨갔다.


파나마 스캔들. 회사는 분식 회계, 정부는 배임 행위, 의회는 뇌물 수수, 투자자는 한탕주의. 1880년에서 1888년 파나마회사는 파나마 운하 건설에 나섰지만 기술적 재정적 문제가 생겼다. 이를 숨기고 의회의 지원으로 공공 대출도 받고 개인 투자금도 받았는데 파산했다. 국가도 승인하고 의회도 지원해서 50만 명이나 되는 프랑스 중산층도 투자했단다. 그러나 모든 자금을 잃고 의회와 정부를 불신하며 분노했다. 다수의 의원이 뇌물을 받았다. 유대인은 없었다. 그러나 정부 직원으로 뇌물 지급과 재무 상담사로 일했던 사람들이 유대인이었다. 이들과 연관된 소규모 유대인 사업가도 많았다. 재무 상담사는 자살하기 전에 비리와 연관된 사람의 명단을 반유대주의 언론에 보냈다. 유대인 명단만 보냈다. 마침내 반유대주의 운동은 제3공화국에서 위험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파나마 스캔들은 두 가지를 폭로했다. 첫째, 국회의원과 공무원이 사업가로 변신했다. 둘째, 민간 기업과 국가 기관 사이의 중개자는 거의 전적으로 유대인이었다.(p. 125)


사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의회는 파행 일로를 치닫았다. 돈을 잃은 많은 사람들은 파벌이 나뉘어 정부에 대항하며 공통의 적을 지목했다. 유대인. 아렌트가 말하는 반유대주의는 19세기에 등장한 사상이다. 단순히 유대교나 유대인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생기면 유대인 탓으로 돌리는 사상이다. 결국 파나마 스캔들도 유대인이 원흉이란다. 그러나 이미 프랑스 제3공화국 “정책은 기득권을 수호하는 것이고, 1881년 이후에는 사기만이 유일한 법이었다.” (p.127)


이렇게 파나마 후폭풍이 여전히 건재할 때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이 터졌다. 1894년. 충직한 장교가 뜬금없이 체포됐다. 독일 스파이라고 했다. 증거는 편지 한 장. 그의 필체라고 했다. 평생 외딴섬에 감금되는 유죄 판결. 그러나 모든 건 조작이었다. 새로 부임한 수사 요원이 사건을 다시 보고 진짜 범인을 찾아냈다. 범인도 자신이 했다고 언론사에 알렸다. 상사가 시켰단다. 그러나 사실을 밝힌 수사 요원은 먼 곳으로 발령 나고 장교는 오랫동안 무죄 판결을 받지 못했다. 저명한 작가도 장교를 위해 글을 썼다. “나는 비난한다. (J’accuse)” 정부 군대가 가짜 유죄판결을 하고 사건을 은폐한다고 했다. 작가도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받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드디어 사건 발생 12년 만에 장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1908년 드레퓌스가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공격을 당했는데 파리 법원은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스파이라고 의심했다. 왜 그랬을까?


군대는 보수적인 조직이다. “프랑스 전통과 사상은 우리가 지킨다.” 그런데 정부에서 유대인이 사기를 쳐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는 말을 듣고 유대인을 경계했다. 그리고 스파이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유대인 드레퓌스를 잡아넣었다. "그들은 원래 반역자 기질이 있잖아." 만장일치로 유배했다. 딱하게도 드레퓌스 가족은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다. 드레퓌스를 빼내기 위해 몰래 권력자에게 뇌물을 줬던 거다. 사람들은 수군댄다. “거봐, 유대인이 비밀리 조직 만들고, 반역자고 예수살인 자잖아.” 아무리 에스테르하지 (Esterhazy)가 자신이 스파이였다고 자백해도 아무리 헨리 대령이 서류를 조작했다고 자백해도 소용없었다. 자칭 ‘민족주의자’라는 반유대주의자만 신났다. 반의회 반정부 노선의 모든 계층 사람이 군대, 가톨릭 교회, 경찰과 같은 정부 보수 조직과 합세해서 폭도가 됐다. 심지어 동화한 유대인마저 반유대주의에 동참했다. 재심을 반대하던 가톨릭 진영은 “드레퓌스가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누가 승리할 것인가, 즉 군대의 아군이냐 적군이냐가 문제”(p. 146)라고 했다.


아렌트는 당시 "유대인 사형!"(p. 144)을 외치며 “국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p.138)라고 주장했던 이들은 폭도(mob)라고 했다. 폭도(mob)는 모든 계층에서 온 사람이라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집단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문제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강한 사람, 위대한 지도자”(p.138)를 외치며 의회 밖에서 유대인을 공격하고 유대인 상점을 습격하며 세력을 키워가는 “집단 폭군”이었다. 그리고 당시 바레(Barrès) 모라(Maurras), 도데(Daudet) 같은 젊은 지식인은 이런 집단의 리더 에두아르 드루몽(Edouard Drumont) 같은 사람을 영웅처럼 숭배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모든 사람이 폭도는 아니었다. “정의, 자유, 시민의 미덕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p. 142)에 근거하여 반유대주의에 대항한 클레망소(Clemenceau). 모든 사람이 유대인이 범인이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한 졸라(Zola).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성실히 했던 피카르(Picquart) 같은 소수의 시민 덕분에 프랑스는 드레퓌스 사건 이후 전체주의 정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톨릭과 군대가 권력을 잃었다.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고 교구 교육이 금지됐다. 군대도 정보부가 내각 밑으로 들어가 자치적으로 경찰 조사를 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유대인은 유럽인이 얼마나 자신들을 싫어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우리도 나라가 필요하다.” 시온주의 운동이 탄생했다.


<<전체주의의 기원>> 제4장 “드레퓌스 사건”을 읽으며 한탕주의 경험이 생각났다. 적금한 돈을 찾았는데 은행에서 펀드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그래요 500만 원만 해볼게요.” 아버지가 증권을 하다가 많은 돈을 잃어서 증권 투자는 절대 안 한다는 철칙이 있었는데… 그러나 바로 전날 투자해서 돈 벌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친구도 벌었으니 나도 벌 수 있지 않을까?” 전혀 근거 없는 전제로 펀드에 투자했다. 삼 개월 동안 매번 투자금 손실 문자만 받았다. 왜 내가 내 돈 내고 기분 나빠야 하나? 100만 원을 잃고 펀드를 끊었다. 이렇게 적은 돈을 잃어도 속상한데 전재산을 날리면 제정신이 아닐 거다. 누구를 원망할까? 은행 직원? 펀드 매니저? 물론 파나마 사건은 사기여서 분명히 잘못한 조직이 있었다. 설사 투자자들이 한탕주의였다고 해도 나무랄 수 없다. 자그마치 50만 명이나 투자했으니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다 한 것 같다. 재산 좀 불려보겠다는 게 뭐가 잘못인가? 화났을 거다. 반정부 반의회 시위 할 수 있다. 다만 한 민족을 겨냥해서 폭력을 가했다는 게 문제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집단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폭력이 가해지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더구나 드레퓌스는 무죄였는데도 폭도의 수와 힘에 밀려 많은 사람이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았을 거다. 어쩌면 한 명의 폭군보다 집단적 폭군이 더 두려운 순간이다.


<참고문헌>

Arendt, H. (1951/2017).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Penguin Random House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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