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희 Sep 12. 2023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02층에서 든 생각

 1931년 5월 1일에 문을 연 엠파이어 스테이드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은 가히 뉴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매번 뉴욕시를 들릴 때마다 올라가지 못했는데 드디어 이번 여름에 102층에 올라가서 본 전경은 길을 돌아다니며 보던 뉴욕보다 훨씬 더 장관이었다. 물론 86층에서도 뉴욕의 모든 마천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층 전체가 통유리로 된 102층은 86층 보다 좁지만 높은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센추럴 파크(Central Park)도 보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여유 있게 파노라마로 펼쳐진 뉴욕의 빌딩 숲을 더 멀리까지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65억 달러를 들여 4년간 개조한 2층 전시실과 102층 전망대는 2019년 10월 12일에 개장했단다. 


사실 이번에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갈 계획은 없었다. 아들이 정해놓은 일정대로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고 예약한 음식점에 들리고 아들 직장이 있는 동네와 사는 동네를 돌아다니고 박물관에 들리고...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점심 식사 시간에 만나자고 하여 아침에 시간이 비었다. 남편과 허드슨 강(Hudson River) 쪽으로 산책을 가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가 우연히 한 무리의 관광객을 관찰한 덕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갈 수 있었다. 5번가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서쪽 34번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약 50미터 정도 갔을 때 앞에 가던 한 무리의 서양인 가족과 스페인어로 떠들던 다른 무리의 젊은이들이 빌딩 앞에 서 있던 경비원에게 뭔가를 묻고 다시 길을 되돌아갔다. 가까이서 들으니 두 그룹 모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가는 길을 묻고 있었다. 왜 여기서 그걸 묻지? 키가 큰 경비원 오른쪽 어깨너머로 약 30 포인트 크기의 필기체 금속활자가 보였다. 엠파이어 스태이트 빌딩. 


"여보, 우리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요. 날씨도 더워지는데 너무 많이 걷는 건 힘들잖아요." 앞서 가던 가족을 쫓아 코너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니  여러 무리의 관광객이 보였고 문 앞에 전망대 (Observatory)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 막 문을 열어서 줄은 길지 않았다. “표를 어디서 사나요?” “위층에 키오스크가 있어요.” 86층 전망대는 44불이었고 102층 전망대는 35불 더 내야 했지만 경로 우대가 적용되어 둘이 150불 주고 102층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표를 끊고 한 층 올라가서 표를 스캔하고 들어가려는데 내 표는 통과했는데 남편 표가 인식되지 않았다. 출입구에 서 있던 흑인 여성 경비원이 우리 표를 확인하더니 남편이 갖고 있던 건 표가 아니라 영수증이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한쪽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영수증을 갖고 아래층에 내려갔다. "표가 키오스크에 있더군요." 직원은 남편에게 표와 영수증을 건네줬다. 경비원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해 우왕좌왕했을 텐데 예상보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 줘서 고마웠다. 


무사히 안으로 들어가자 빌딩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전시한 공간이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었다. 1920-30년 뉴욕의 모습과 빌딩을 짓게 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리에는 원래 왈돌프 아스토리아(Waldorf–Astoria30) 호텔이 있었다. 그걸 엠파이어 스테이트 주식회사가 사서 50층 짜리 빌딩을 지으려다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 보다 더 높게 짓기 위해 102층까지 올렸단다. 어떻게 보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기적 같은 건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1929년 10월 1일 호텔이 해체되고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1929년 10월 24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바로 월스트리트 주식 시장이 붕괴되어 대공황이 시작됐다. 뉴욕시 근로자의 1/3이 일자리를 잃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주식회사에 속했던 투자자도 주식으로 돈을 날렸다. 건물을 지어도 들어올 회사가 없었다. 그러나 공사를 중단할 경우 더 큰 손실이 예상됐다. 결국 보험회사에서 대출받아 13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여전히 경제 불황으로 많은 사무실이 수년간 비어 있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아니라 엠프티(Empty) 스테이트 빌딩이라고 불렸단다. 경제적 이윤만 따졌다면 결코 짓지 못했을 건물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없었을 거다. 투자자 건축가 엔지니어 등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창조한 건물이지만 그중 으뜸은 노동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2층 전시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 노동자가 일하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움직이는 그림이어서 마치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 같았다. 노동자의 얼굴도 낯익었다. 옛날 미국 영화에 나오는 행인들 같았다. 복장 때문이었다. 멜빵 청바지에 베레모. 안정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림 앞에 리벳공(Riveters)이라고 적혀 있었다. 리벳은 철근을 연결할 때 쓰는 대갈못이니 리벳공은 그런 일을 하는 기술자다. 이들은 마치 곡예를 하듯 한 팀으로 일했다. 한 사람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 대갈못을 가열해서 던지면 한 사람은 약 2미터 거리에서 통으로 대갈못을 받아 철근에 붙이고, 그곳에 있는 사람은 대갈못을 철근에 두들겨 고정시킨다. 무더운 여름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변변한 기구도 없이 서커스 하듯 102층까지 건물을 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뉴욕 잡지는 철강 노동자들이 마치 작은 거미처럼 하늘에서 강철 천을 뽑아내는 수고를 한다고 적었다. 3500명 이상의 노동자의 땀으로 세워진 빌딩. 대부분 아일랜드와 이태리 이민자였다. 공식적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5명. 그러나 신문은 14명이라고 했고 사회주의 잡지는 42명이라고 했으니 5명보다는 많았던 것 같다.


과연 10만 원 가까이 내고 102층에 올라가서 뉴욕 도시를 보는 게 가치 있을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개인적으로 10만 원짜리 뷔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의 마천루. 가만히 보고 있으면 미래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요즈음 돈이 엄청 많은 부자 중의 부자들은 뉴욕시 좁은 땅에 높은 건물을 올리고 실제로 살지 않아 비어있는 집이 많단다. 그래도 그들은 더 부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멈추지 못할 거다. 그들이 조금만 생각을 바꿔서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시설을 경쟁적으로 지으면 좋을 텐데... 2023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가 미국 전체 부의 약 40%를 소유한 반면 하위 90%는 25%를 갖고 있다. 대대손손 부를 축척한 사람이 소유한 부는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몫보다 많단다. 그러니 이들은 현대판 로열패밀리다. 결국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이 로열패밀리에게서 많은 세금을 걷어서 저소득층이 좀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위로만 멋진 건물을 지을 게 아니라 뉴욕 시민이 많이 타는 전철이 하루빨리 깨끗해지길 기대해 본다. 


<참고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Empire_State_Building

https://equitablegrowth.org/wp-content/uploads/2019/03/032119-wealth-tax-ib.pdf

작가의 이전글 <<전체주의의 기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