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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Sep 12. 2023

뉴욕 시티 여행

1박 2일은 너무 짧다

보통 미국에 이민 가서 살게 되면 정착한 도시에서만 바쁘게 살고 여행을 하려면 숙박비 등 경비가 들어서 잘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조금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한국이 그립고 친척들 보는 게 좋아서 방학이 되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 관광객이 잘 찾는 뉴욕이나 라스베이거스 디즈니월드 등을 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나도 미국에서 처음 정착한 곳이 시카고 근교여서 인디애나 위시콘신 오하이오 등 주변 주에서 열리는 작은 시골 행사에 참석한 적은 많았지만 뉴욕 같은 큰 도시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6년 12월 2일 딸 덕분에 뉴욕에 갔다. 딸이 원하던 대학에 서류를 제출하고 모든 걸 혼자서  잘 진행한 딸을 위해 휴식 켬 보상 여행을 뉴욕으로 갔었다. 


딸은 중학교 때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뉴욕에 간 적이 있었지만 아들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이틀은 묵으며 천천히 구경하면 좋았겠지만 당시 나의 모토는 '크레디트 카드비는 제때 완납해서 절대로 은행에 이자를 내지 않는다'여서 예산을 초과하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 빼고 넣는 걸 잘해야 했다. 좋은 호텔에 묵는 대신 하루 밤만 자기로 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가는 대신 뮤지컬은 창구에 가서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고 뉴욕 투어는 자유의 여신상을 포함한 풀코스 패키지를 선택하는 대신 점심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오후 2시 정도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한 다인승 밴으로 호텔까지 이동했다. 호텔에 체크인해서 옷만 갈아입고 뉴욕 거리로 나갔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려고 했더니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 그냥 '하드 록크 카페'에 갔는데 아이들이 좋아했다. 실내는 여러 대의 기타와 비틀스 사진 등이 걸려 있었고 메뉴는 햄버거와 등갈비뼈(baby  back ribs) 등 미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외식 메뉴였다. 식사를 마치고 브로드웨이로 걸어갔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타임스퀘어만큼 많지 않았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극장 앞에 공연하는 뮤지컬의 대형 간판이 걸려있었다. "뭘 볼까?" 딸은 전에 한 번 봤던 '오페라의 유령'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고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여행을 오기 전에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창구에 남은 표가 있으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요행을 바라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만약 매진이 되면 딸이 뉴욕에서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줄 수 없었는데 그땐 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관광객이 많지 않았던 시기라 공연 티켓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읽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운 좋게 좋은 자리를 40% 저렴할게 살 수 있었다. 극장은 생각보다 작아서 무대가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샹들리에가 멀지 않은 곳에서 휙 지나가 떨어지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팝이나 랩만 좋아했던 아들이 오페라의 유령 시디를 사서 한동안 그것만 들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일어나 호텔 아침 뷔페를 든든히 들고 9시부터 시작하는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70세 정도로 보이는 백발의 가이드는 뉴욕 시티 고등학교에서 40년간 역사를 가르쳤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과 거리에 관한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19세기말 20세기 초 뉴욕 사교계의 험담도 간간이 들려줬다. 지역 사람들만 안다는 맛있는 베이커리와 작은 식당에도 데리고 갔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갈 때는 선장과 인사를 나누며 수십 명 떼 지어 오던 중국 관광객을 제치고 열댓 명 되던 우리부터 승선할 수 있도록  해줬다. 콜롬비아 대학교를 지나갈 때는 자신의 아들이 콜롬비아 대학교 의대 교수라고 슬쩍 흘려보내듯이 말하며 주름진 얼굴이 활짝 펴졌던 게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엠파이어 스태이트 빌딩을 구경하러 가는데 오후 3시가 넘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5시. 가이드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택시보다 전철과 버스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가르쳐줬다. 그래서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 탑승 시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무조건 앞에서 걷고 아이들은 뒤따라 오고. 지하철을 빠져나올 때 딸의 가방이 문에 걸려 당황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돌이켜보니 딸은 휴식이 아니라 극기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하루만 더 있다 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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