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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Sep 21. 2023

전체주의 전에 제국주의

사람은 무엇을 믿고 사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을 불편한 마음 없이 하며 사는 것 같다.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인은 어떻게 다른 민족을 죽이고 약탈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했을까? 제국주의는 1884년부터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시기다. 서유럽의 제국주의는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말처럼 "확장이 전부("Expansion is everyhing.")였다. 아프리카 이집트 등 다른 나라에 가서 싼 노동과 천연자원으로 돈이 돈을 버는 경험을 시작한 시기다. 국가는 무한히 해외로 정치를 증대하고 부르주아지는 무한히 자금을 증대했다. 


1870년 세계는 대공황을 겪고 일자리를 잃고 빈둥거리는 사람과 팔리지 않는 물건이 넘쳐났다. 자본가는 이미 많은 부를 축척했지만 그 돈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과잉 자본과 과잉 인력은 제국주의 시스템을 방패 삼아 해외로 진출했다. 정부 관리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혼동했다. 나라가 무력으로 확장하고 번성하는 일이 애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족 국가에서 싹트기 시작한 자유 평등 인권 같은 건 해외에서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부르주아지의 철학과도 연관이 있다. 


아렌트(Arendt)는 홉스(Hobbes)가 부르주아지의 도덕성을 가장 명확히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근본적인 열정은 권력이다. 모든 사람은 서로가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법도 권력에서 나온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는 돈으로 권력을 샀다. 정경유착.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국가는 단지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고 재산을 지켜주는 경찰이었다. 


제국주의 국가는 해외에서의 포악한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관료주의(bureaucracy)와 인종 차별주의(racism)를 발명했다. 물론 인종에 대한 생각은 인종차별주의가 있기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가 이념이 되었을 때 정치적 무기로 사용했다. 이념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만 진짜 과학이 아니다. 인종차별주의도 그랬다. 다윈주의(Darwinism)를 확장 해석해서 사회 다윈주의 (Social Darwinism)를 만들었다. 적자생존. 강대국이 미개발국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크로머 경(Lord Cromer)은 낙후된 나라의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원주민을 보호하는 백인의 책임이란 말까지 했다. 그러나 관료주의는 민주적으로 제정한 법을 따르는 게 아니었다. 강대국 구미에 맞게 규정을 선포하고 원주민은 그 규정을 따라야 했다. 


아렌트는 보어인(Boers, 남아프리카에 살던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시민)이 현대 인종차별의 첫 모델이었다고 말한다. 보어인은 자신들이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신격화해서 무력으로 흑인의 노동에 의존해 살았다. 다이아몬드와 금을 쫓아 아프리카에 모여든 백인도 그랬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에서 온 사람들은 투기꾼부터 소상공인 전직 군인 변호사 좋은 집안 출신 자제 등 다양한 사람이 한몫 챙기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싼 임금으로 현지인을 고용해서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 이렇게 번 돈은 유대인 금융가에 의해 유럽 경제로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 시대는 내가 로맨틱하게 생각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이기도 하다.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하고 가르니에(Garnier) 오페라 극장 에펠탑 등이 세워지고 패션이 유행하고 소비가 활발했다. 프랑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등 비슷한 시기에 돈과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전기 전화기부터 자동차까지 기술 발전을 후원하고 혜택을 누리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다. 소수 부자는 강아지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채워줄 만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저임금 노동자는 삶이 고단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때는 대저택에 살거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오페라를 보러 가는 문화를 동경했는데 그때 이룩한 경제적 과학적 성장 뒤에 숨겨진 후진국의 희생이나 서민의 고통을 상상하니 마음이 혼란스럽다. 


문득 과학의 발달이 정말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했는지 의문이 든다. 과학 덕분에 항해술이 발달하여 아메리카 대륙도 발견하고 이집트 아프리카 인도에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던 사람은 난데없는 방문자 덕분에 많이 희생됐다. 물론 식량 생산과 의료 과학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이 더 잘 먹고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와 핵폭탄도 역시 과학 발전의 결과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앞으로 과학은 무기를 만들거나 돈을 버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프리카 등 사막화된 땅이 비옥해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좋겠다. 


그러나 어제 뉴스를 보니 자본가의 자본 증식은 멈출 수 없는 생리인 것 같다. 기자는 미국 자동차 산업 노동자의 파업 소식을 전하며 다음과 같은 추측을 했다. “미국은 앞으로 사람 대신 로봇 자동화시스템에 더 투자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다면 경제 활동에서 소외된 계층이 정신적으로 괜찮을지 걱정이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경제 활동에서 소외된 독일인이 전체주의 운동에 참여했는데... 


<참고문헌>

 Arendt, H. (1951/2017).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Penguin Random House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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