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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an 01. 2024

42년 만에 눈이 가장 많이 내린 날

손자들이 놀러 왔다. 

토요일 아침 7시 30분.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눈이 오지 않아 다행이다. 딸네 가족이 온다고 하여 길이 미끄러우면 오지 말라고 할 작정이었다. 남편이 입원 환자를 보고 온다고 출근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손자들이 오니 구석에 있는 먼지를 더 세심히 닦았다. 손자들 덕분에 집이 깨끗해졌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뒷 베란다로 나가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좀 있다 그치려나?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눈이 점점 쌓여갔다. 


9시 20분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걱정이 되니 다음에 와도 괜찮다고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큰길 눈은 이미 다 치워졌고 날씨도 따뜻해서 괜찮을 거라고 했다. 딸도 천천히 올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 오지 않던 눈이 한꺼번에 다 내리는 것처럼 눈은 그칠 줄 몰랐다. 청소를 끝나고 아침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걱정되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과 후식으로 먹을 케이크를 사러 전철을 타고 백화점에 갔다.  


평소에는 집 가까이 있는 제과점에 가는데 그 집 빵이 예전 같지 않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맛이 좋아 몇 천 원 더 내도 가치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가격만 오르고 맛은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이 거짓말을 한 게 문제였다. "이거 무슨 맛이에요? 혹시 레몬 맛인가요?" "네." "그럼 주세요." 그런데 레몬 맛은 전혀 안 나고 일반 컵케이크보다 더 맛이 없었다. 이렇게 속고 나니 지난번 계산을 잘못한 게 생각났다. 딸네 집에 가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과 케이크를 주섬주섬 담다 보니 7만 원 이상이 되었는데 며칠 뒤에 영수증을 보니 2300원짜리 마들렌이 2600원으로 찍힌 걸 발견했다. 이미 지난 일이어서 제때 확인하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잊었는데 이번에 레몬맛 컵케이크가 아닌 걸 그렇다고 판 걸 보고 앞으로 이 가게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런 소비자다. 제대로 만든 상품이라면 돈을 더 내는 게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러나 유명한 브랜드를 앞장 세우며 이름에 걸맞지 않은 제품을 판다면 그건 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핸드백도 그렇고 핸드폰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다. 내게 거부당한 상표들은 좀처럼 신용을 회복하기가 힘들다. 적어도 3번 기회를 주고 삼진 아웃이다.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니 나 같은 사람에게 거부당한 상표가 아쉬울 건 없을 거다. 그러나 신뢰를 얻은 식당이나 물건은 가격과 상관없이 꾸준히 소비하는 편인데 그런 고객을 놓친 건 손해일 거다. 


아이들이 무사히 도착했다. 손자가 좋아하는 갈빗집에 갔다. 5년 넘게 다니는 단골집인데 맛이 한결같다. 고기를 구워주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도 늘 단정하고 친절하다. 사위는 아주머니가 불에 올려놓고 간 고기가 타지 않도록 적당한 시간에 뒤집고 딸은 손자에게 줄 고기를 잘게 썰어서 남편에게 건넸다. 첫째 손자는 남편이 맡고 둘째는 내가 맡았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고기를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둘째 손자는 내 팔에 안겨 젖병을 쪽쪽 빤다. 사위가 10분도 안 걸려 식사를 끝내고 나와 딸이 식사를 이어갔다. 손자는 후식으로 나온 오미자 차를 양손으로 감싸 들고 인상을 써가며 끝까지 마셨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손자가 고기 먹고 젖병 빠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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