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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Apr 23. 2024

이름도 없었던

데지레의 아기

사람은 대체로 밝은 피부색을 선호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미백 크림이 많이 팔린다. 그렇다고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게 나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모든 인종의 어린이에게 예쁘거나 똑똑한 캐릭터를 고르게 했더니 모두 흰 피부색의 캐릭터를 가리켰단다. 반면 어두운 피부색의 캐릭터는 부정적인 성향과 연관했다. 이렇게 내재된 편견은 그냥 생긴 게 아닐 거다. 식민지 시대에 지배 인종과 피지배 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른 피지배 인종에 비해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되고 농사보다 집안일을 하는 혜택을 누렸단다. 그런 답습이 내려와서 그러지 않을까? 2018년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피부색이 밝은 흑인이 그렇지 않은 동족에 비해 더 높은 교육, 더 좋은 직업,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나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목격됐다. 그러나 19세기 미국 루이지애나 주 프랑스인이 모여 살던 마을에서는 아무리 피부색이 밝아도 조금이라도 흑인의 특징이 엿보이면 백인 가문에 이름을 올릴 수 없고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케이트 쇼팽(Kate Chopin)의『데지레의 아기(Désirée’s Baby』는 그런 슬픈 상황에 처한 엄마와 아기 이야기다. 처음 아기 엄마와 아기 아빠는 동화처럼 만난다. 유복하고 가문 좋은 집안의 아르망이 아름다운 처녀 데지레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한다. 아르망은 데지레가 너무 좋아 그녀가 업둥이라는 사실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모인 바르몽드 부인이 딸과 손자를 보러 가는 장면에서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날씨는 화창한데 딸네로 가는 길이 음침하다. “크고 근엄한 떡갈나무가 지붕 가까운 곳에서 자라나 우거진 잎과 길게 뻗은 가지들이 관 뚜껑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딸을 만난 엄마의 행동도 이상하다. 아기를 자세히 보며 “그 아기가 아니다!”라고 한다. 보통 할머니 같으면 아기를 보며 “우리 강아지 많이 컸네!”라고 할 텐데… 게다가 아기는 태어난 지 한 달이 넘도록 이름도 없다. 아무리 19세기 중반 미국이 배경이지만 손자를 보며 저렇게 말할 것 같진 않다.


결국 3개월 후 데지레는 아르망에게 쫓겨난다. 처음 데지레를 봤을 때 느꼈던 열정, “모든 장애물을 넘어가는 눈사태나 초원의 불 같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아들이 완전한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데지레가 아들의 상태를 깨닫게 되는 것도 조마조마하다. 한 달 만에 아기를 본 양모가 “그 아기가 아니다!”라고 하자 데지레는 아기가 젖을 잘 먹어서 몰라보게 컸을 거라고 하지만 벌써 뭔가 다른 점을 느끼지 않았을까? 날이 갈수록 하인들이 수군거리고 남편이 달라지고 드디어 아들 옆에서 부채질하는 꼬마 하인을 보고 경악한다. 쿠아두른(quadroon: 흑인의 피가 4분의 1 섞인 흑백 혼혈아)인 꼬마 하인과 아들이 겹쳐졌다. 양모는 딸에게 친정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딸은 “강둑을 따라 무성하게 자라는 갈대와 버드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인종차별 성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태어난 한 여인의 비참한 현실이라고만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결말에 반전은 신의 한 수다.


그래도 데지레가 죽음을 선택한 게 화가 난다. 양모에게 돌아가서 살지. 결혼 전 데지레는 바르몽드 집안의 아이돌이지 않았던가! 그렇게 살다보면 아르망의 비밀도 알게 됐을 텐데... 왜 아기를 죽였나? 정말! 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부모가 이해가 안 간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겠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모든 사람이 야속하다. 가장 나쁜 사람은 남편이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와 자기 자식에게 그럴 수 있나? 그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데지레는 "당신이 떠나길 원해."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희망을 잃었나? 나 같으면 아기를 잘 키워서 아르망보다 더 똑똑하고 부자가 되게 했을 거다. 그러나 데지레 시대 여성은 경제권도 참정권도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남자 없이 독립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거다. 어디 여성뿐이랴? 흑인은 여성보다 더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데지레가 그런 선택을 했나?


남북전쟁이 끝나자마자 처음에는 수정된 민권법 덕분에 흑인 남성이 투표도 하고 정치에도 참여하고 토지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인들은 클로 클러스 클랜 (Klu Klux Klan), 레드셔츠(Redshirts), 와이트 리그( White League) 같은 단체를 만들어 흑인에게 잔인한 폭력을 가했다. 동시에 1870년대부터 미국 남부 지방에서 짐 크로우 법 (Jim Crow Law: 참고로 Jim Crow는 흑인을 경멸하는 용어)을 만들어 학교, 거주지, 병원, 직장, 교통시설 등 공공시설 이용에 대한 인종 분리를 법적으로 강요했다. 1892년 혼혈인 호머 플래시가 일부러 백인 전용 열차에 탔다가 기소되자 그의 변호사는 차량 분리법이 위법이라고 주장했지만 1896년 대법원은 인종 분리법이 "별도지만 동등하다(separate but equal)"면 미국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쯤 되면 1890년부터 1908년까지 미시시피를 시작으로 남부 주들이 흑인 대부분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그들을 정치 체제에서 배제하는 새로운 헌법과 법률을 통과시킨 게 이상하지 않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흑인의 피가 단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부끄러운 과거다. 아니 과거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노예로 만든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수치다. 미국에 사는 흑인이 수십 년 동안 제도적 차별로 인해 교육도 못 받고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는데 흑인이 게으르거나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편견을 가지면 편견이 표준이 되나? 뭐, 같은 민족끼리도 지역에 따라 서로 차별하는 경향이 있으니 다른 민족은 말할 것도 없을 거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땐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과 결혼하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문도 갖지 않고, 주변에서 그러니까 그게 맞나 보다 했다. 어른들 말씀만 따를 줄 알았지 비판적 사고를 배우지 못해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합리적 의심을 품지 못했다. 지금은 겉으로 대놓고 차별하지 않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피부 색깔로 사람을 차별하는 인식은 남아 있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다 국제결혼을 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까? 차별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참고자료>

https://www.pbs.org/katechopin/library/desireesbaby.html

https://litreading.com/stories/2022/1/24/desirees-baby

https://en.wikipedia.org/wiki/Reconstruction_era

 https://www.weforum.org/agenda/2020/08/racial-equality-skin-tone-bias-colou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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