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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Apr 30. 2024

톨스토이의 마지막 소설

<<부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자문했을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회에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좋은 가정을 꾸려서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좋은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그렇게 “모범적”이고 "좋은" 것에만 꽂혀서 내가 한치의 거짓도 없이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했고, 나의 안녕과 행복에만 집중해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두려움마저 있었다. 과연 범죄자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일까? 만약 극빈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톨스토이의 『부활』은 나처럼 한쪽 세상만 아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소설 같다.  


19살 대학생 드미트리 네크류도프(Dmitri Nekhludoff)는 여름 방학에 고모집에서 만난 16살 처녀 카투샤 매스로바(Katusha Maslova)와 사랑에 빠진다. 네크류도프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하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 정학(Social Statics)을 읽고 아버지가 물려준 만 에이커의 땅에 대한 재산권을 포기하고 농민 노동자에게 그 땅을 그냥 줬다. 여자에 관한 생각도 “결혼하게 될 아내만 빼고 다른 모든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모집에 와서도 한 달간 카투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예수 승천 대축일에 고렐키(gorelki)라는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 친해진다. 둘은 서로에 대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이 밝아 보일 정도로 마음이 맞지만 신분 차이로 결혼 상대로 생각하지 못한다. 


네크류도프는 부잣집 아들이고 카튜샤는 고모 집에서 일하는 하인이다. 카튜샤의 엄마는 드미트리의 고모네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로 결혼도 하지 않고 매년 아이를 낳아 5명의 아이가 있었지만 모두 굶어 죽고, 카투샤가 3살 때 사망한다. 미혼이었던 드미트리의 두 고모는 카투샤를 데려다 키웠다. 고모 중 한 명은 카투샤가 좋은 하인이 되는 엄한 교육을 시키고, 다른 한 명은 쓰기와 읽기 프랑스어까지 가르쳐서 카투샤는 “반은 하인, 반은 숙녀”가 된다. 나이가 차자 많은 사람이 구애했지만 노동자와 결혼해서 사는 삶은 너무 힘들 것 같아거절한다. 그리고 고모집에 놀러 온 네크류도프를 처음 만난다. 그러나 3년 후 군인이 된 네크류도프는 전에 알던 순수한 청년이 아니었다. 그에게 여자는 “이미 경험한 즐거움을 향한 최고의 수단이었다.” 네크류도프는 동물적인 본능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겁탈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100 루블을 주고 떠난다. 


그 후 매스로바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임신을 하고 네크류도프의 고모네서 나와서 아기를 낳지만 사망하고, 돈관리를 할 줄 몰라 100 루블은 온데간데없고, 가정부 일을 찾아 이 집 저 집에서 일했지만 매번 주인집 남자들이 그녀를 가만 두지 않는다. 세탁소를 하는 이모 밑에서 일해보려고도 했지만 이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의 몰골이 너무 힘든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부자 작가의 정부가 되어 그가 얻어준 방에 살다가 옆방에 사는 젊은 가게 점원과 정분이 나서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배신당하고, 술집에서 7년간 일하게 된다. 그리고 26살에 법정에서 네크류도프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매춘 고객이었던 상인을 독살하고 돈을 훔쳤다는 혐의로 법정에 섰다. 


드미트리는 매스로바의 타락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한다. 부활절 전날 저녁 교회 미사가 끝나고 파란 장식띠가 달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카투샤가 걸인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며 코에 빨간딱지가 앉은 걸인에게 전혀 거리낌 없이 축복의 입맞춤을 세 번 해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그렇게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활절 다음날 모든 사람이 잠들었을 때 드미트리는 카투샤의 방에 들어갔고 그녀는 변했다. 드미트리는 감옥에 있는 카투샤에게 면회 갔을 때 그녀가 예전의 “카투샤가 아니라 매스로바”여서 놀랐다. 젊은 가게 점원에게 버림을 받고 담배와 술이 더 늘었다. 그래야만 그녀는 자신이 겪는 비참함을 잊을 수 있었다. 


한편 카투샤를 만난 네크류도프는 “영적 정화”를 실행한다. 그건 그가 오랜 기간 참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느낄 때 자신이 따라야 할 몇 가지 행동 지침을 일기에 쓰고 실천하는 일종의 자기 계발 같은 거였다. 그러나 매번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전보다 더 못하게 됐다. 그러나 카투샤는 그를 변화시켰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청혼까지 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싫은 게 아니라 사랑해서 그런 거다. 처음에 그녀는 드미트리를 "이용할 수 있는 부유한 신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심원단의 실수로 시베리아로 가게 된 카투샤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바뀐다. 불안하고 우울할 때마다 마시던 술도 끊는다. 이제 드미트리는 카투샤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알게 된 사람들까지 도와준다. 심지어 최소한의 재산만 남겨두고 카투샤를 따라 시베리아까지 간다. 그런 과정에서 드미트리는 다양한 정치범을 알게 되고, 카투샤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정치범 사이먼슨과 살기로 한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카투샤는 드미트리가 자신과 결혼하면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마음이 편하고 싶었을 거다. 드미트리가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사는 걸 보는 게 불편했을 거다. 사실 드미트리가 시베리아에 있는 장군의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여주인이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연주하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즐거운을 느꼈다. 또, 장군의 딸이 그녀의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자 그런 순수하고 고상한 삶이 부럽다고 했다. 그러나 카투샤와 그런 삶이 가능할까? 재산을 다시 찾아 카투샤를 호강시켜 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그건 드미트리의 신조에 어긋난다. 땅의 소유로 얻은 불로소득에 의지한 삶을 살아야 하고 귀족과 어울리며 그들의 잣대로 세상을 보게 될 텐데… 그곳엔 카투샤의 자리가 없다. 카투샤는 그걸 안 거다. 무엇보다 이제 카투샤는 영적으로 거듭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이라는 걸 안다. 네크류도프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고 이야기는 끝난다.  


이상한 건 100명도 넘는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준 19세기말 러시아 사회가 낯설지 않다는 거다. 특히 귀족의 모습은 오늘날 연속극에 나올법하다. 차음에는 수사극처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교회 설교처럼 끝나서 뭔가 마무리가 붕 뜬 느낌이지만 여전히 “모범적”인 걸 좋아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한 내 취향에는 맞는 것 같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상황은 드미트리가 재산을 정리하면서도 편안한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던 건 그의 재산과 고관이나 귀족과의 친분관계 덕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톨스토이가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거다. 동시에 누구나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에 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에서 네크류도프는 이런 말을 한다. 사회 질서는 법이 있어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다섯 가지 법칙을 지키며 살기로 한다. 다투면 화해하고, 여자와 동거하면 배신하지 말고, 맹세로 자신을 구속하지 말고, 용서하고 겸손하고 도와주고, 원수를 사랑하라. 맹자의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생각나지 않나? 이렇게 좋은 말을 많이 읽었으면서도 실천이 더뎌서 부끄럽다. 


<참고자료>

Tostoy, L. Resurrection. Project Gutenberg, Publication 2016. https://www.gutenberg.org/files/1938/1938-h/1938-h.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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