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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May 21. 2024

성경을 다시 읽게 만든 책

『신: 해부(God: An Anatomy)』

 

가자 지구의 전쟁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인을 납치하고 죽여서 복수한다는 건 알겠는데 계속 전쟁을 하면 하마스를 모두 없애고 인질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쩌다 이들은 이렇게 이성을 잃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은 같은 민족이 아닌가? 실제로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유전학자 마이클 해머에 따르면 중동 아랍인의 Y 염색체가 유대인의 Y 염색채와 거의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앙숙으로 만들었을까? 아마도 수천 년 전에 나라를 잃은 기억이 성경을 통해 끊질기게 학습되고 복습되며 복수의 유전자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과연 고대 레반트 (오늘날 우리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지역 사람들이 믿는 하느님의 뜻이었을까? 


영국 엑서터대학교에서 히브리어 성경과 고대종교를 가르치는 프란체스카 스타브라코풀로(Francesca Stavrakopoulou) 교수가 쓴 『신: 해부(God: An Anatomy)』을 읽으면 성경의 하느님은 원래 인간이 지혜롭고 평화롭게 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서 집필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념적 관심의 변화를 성경에 반영했고 오늘날 신성한 저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한다. 책은 제목이 시사하듯이 하느님의 발, 다리, 생식기, 몸통, 팔, 손, 머리와 연관된 이야기를 제공한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메소포타미아와 레반트와 이집트 지역에서 믿었던 신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기록, 종교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나 조각 등을 소개하며 그런 자료가 어떻게 성경과 연관되었는지 풀이했다. 어떤 학문이든 연구하는 대상이 있고 종교는 무엇이 됐든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믿음의 문화이므로 이런 문화 현상을 연구하는 종교학자가 쓴 “신”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자는 기독교 문화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경이 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이 특정 시기에 특정인에 의해 특정 목적으로 정리됐다는 얘기부터 시작한다. 이를 위해 시리아 해안에 있는 우가리트(Ugarit)라는 고대 도시 국가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기원전 14세기와 13세기 문헌에 나온 최고의 신 엘(El)과 신성한 의화를 소개한다. 엘은 온유한 신의 아버지로 아내 아티라트(Athirat)와 함께 70명의 아들을 뒀다. 자녀들은 폭풍, 바다, 햇빛부터 탄생, 전쟁,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관리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신부터 건축, 디자인, 치유, 음악, 마술 등 기술과 문화 예술을 담당하는 신까지 순위가 매겨졌다. 이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신성한 의회에 모여 엘의 지도 아래 신과 인간의 문제를 결정했단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유일신 여호와는 이런 엘의 많은 자녀 중 한 명으로 사나운 폭풍의 신이었다. 여호와는 남부 레반트에서 ‘광야’의 신으로 알려진 샤다이(Shadday) 신들과 유사하며 이 신들은 엘에게 종속됐다. 기원전 800년경 지진으로 파괴된 동부 요르단 계곡의 고대 도시 데이르 알라(Deir 'Alla) 건물에서 발견된 비문에도 엘이 샤다이 신들의 대군주로 묘사됐다. 하여 학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여호와가 아니라 엘이라고 의심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에도, 야곱이 세겜의 고대 도시에 건축했던 엘-엘로히-이스라엘(El-Elohe-Isarael) 성전에도 엘이 내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엘에서 여호와로 바뀌었는데, 이는 왕국의 출현과 사회정치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했다. 즉 폭풍과 번개로 무장한 전쟁의 신 여호와가 왕권을 수호한다고 믿어서 왕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여호와를 승격했고 급기야 기원전 9세기에 엘 대신 판테온의 수장이 됐다. 


여호와는 엘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 아쉬라(Asherah)가 있었다. 그러나 후에 성서 작가들은 여신을 배제했는데 이는 국가가 더 이상 다신교를 후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비록 여호와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침략을 막아내어 이스라엘과 유다를 수호하지 못했지만 여호와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망명 중이던 고위층 집단과 사제들은 히브리어 성경의 전통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이미지의 신을 만들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멸망은 여호와가 지켜주지 못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다른 신들을 숭배해서 벌을 받은 거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기원전 8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고대 레반트의 작은 남부 정치국인 유다에서 히브리어 성경 타나크(Tanakh)가 구성됐고 이는 기독교의 구약성서가 됐다. 그러나 이 텍스트 중 어느 것도 원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된 건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경 이야기의 후반부 에피소드만 현실과 들어맞고 많은 부분이 역사적 기록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열왕기에는 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 왕국의 통치자 오므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웃 모압 왕 메사가 세운 비석과 기원전 9세기와 8세기 아시리아 문헌을 보면 이스라엘 왕국을 오므리 땅으로 지정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독교 문화에서 산 사람으로서 책의 일정 부분은 하느님을 의인화하여 신체의 민망한 부분을 너무 자세하게 설명한 게 지나쳐 보였다. 그러나 구약 문체가 어려워 잘 읽지 않았는데 이 책 덕분에 다시 찾아 읽게 됐다. 역시 내가 알던 대로 신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성경에는 스타브라코풀로 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느낌은 없다. 예를 들어, 신의 코를 설명하며 신이 진노했을 때 나타나는 생리현상을 이사야 30:27-33을 바탕으로 설명했는데, 막상 성경을 찾아보니 무슨 말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스타브라코풀로 교수는 마치 인디애나 존스 영화에서 인간 제물을 바치는 장면을 연출하듯이 아시리아 왕을 묘사했다. 아시리아 왕은 멀리서 코에 불을 뿜고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다가오는 신을 본다. 신의 숭배자들은 불타는 것을 목격하기 위해 음악과 노래를 부르며 모였다. 그들이 춤을 추는 동안 신의 유황 숨결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여호와는 잔치를 준비한다. 


주석을 포함해 500페이지가 넘는 책에는 시리아에 있는 아인 다라(Ain Dara) 사원의 신의 발자국, 미켈란젤로의 ‘부활한 그리스도’, 여신 아쉬라 조각상 등 저자가 언급한 유물과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해가 증진된다. 특히 마지막 장에 나오는 이탈리아 아퀼레이아의 총 대주교 대성당에 있는 모자이크 그림은 바다 괴물이 요나를 삼켰다가 3일 만에 뱉는 장면인데, 이걸 보며 어릴 때 읽었던 디즈니 버전 피노키오가 생각났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거기서 피노키오가 고래에게 잡아 먹힌 아버지를 구해주기 위해 고래 배속에 들어가지 않나? 학교 가라는 아빠 말을 안 듣고, 책 살 돈으로 서커스 구경하다 나쁜 사람 만나서 당나귀가 될 뻔했는데, 정신 차리고 아빠를 구하며 “용감하고, 진실되고, 이타적인” 면모를 보여줘서 진짜 사람이 되는 이야기 말이다. 여기서 파란 요정이 요술봉으로 피노키오를 완전한 사람으로 만든 건 마치 하느님이 영적 숨을 불어넣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요한복음 5:21) 같은 걸 거다. 내가 이해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로 태어나는 거다. 성경의 어떤 부분이 성경을 믿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었을까? 부디 하루속히 하느님의 선한 영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마음에 깃들어 전쟁이 멈추길 기도한다. 


<참고자료>

Stavrakopoulou, F. (2022). God: An Anatomy. London, England: Picador.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jews-and-arabs-share-recent-ance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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