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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un 10. 2024

추억을 부르는 단편 소설

<후남아 밥 먹어라>

대학을 졸업한 다음날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이해인 수녀의 시집, 이렇게 3권의 책을 들고 42년 전 부모님과 동생이 있는 미국에 처음 도착했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피천득 선생님의 책 제목만 생각나고 나머지 두 작가님의 책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박완서 작가의 산문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국이 그리웠던 건 기억난다. 그래서 30대 후반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 때도 종종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곤 했었다. 그러나 40대 이후 거의 20년 가까이 그녀의 소설을 읽지 못했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박 작가님의 소설이 보여서 한 편 들어봤더니 옛날의 그 따뜻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지난 3일간 9편의 소설을 듣고 말았다. 그중 <후남아 밥 먹어라>는 미국에 사는 몇몇 지인을 생각나게 했다. 


소설을 들으며 여러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를 들어 후남이 가 미국에 처음 가서 가장 놀란 건 화장지가 흔한 거였다. 한국에 있는 언니들이 호텔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핸드백 속에 숨겨 와서 화장을 지울 때만 아껴가며 쓰던 게 생각나서 “부의 상징”인 크리넥스를 부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1970년대만 해도 학교 화장실이 재래식이어서 되도록이면 학교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고 꼭 참고 있다 집에 오자마자 볼 일을 봤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참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후남이 가 미국에 온 지 20년 만에 부모님을 초대해서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 나눠 먹으라고 LA갈비를 꽁꽁 얼려 보내는 이야기는 1980년대 말 미국에 유학 갔던 학생들도 흔히 했던 일이다. 


유학생이란 말을 하고 보니 떠오른 웃지 못할 일이 생각난다. 남편이 레지던트를 하던 병원 가까이 있는 아파트에 살 때 병원 가까이 있던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걸 알게 됐다. 오며 가며 한국말을 하는 걸 듣고 인사를 나누고 나이도 비슷해서 왕래하게 됐다. 미국에 거주한 지 6년 정도 됐을 때지만 여전히 한국이 그리워서 그들에게 한국 소식을 듣고 점심에는 한국 음식을 해 먹고 한국 비디오를 돌려보는 게 재미있었다. 주로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20대 말 30대 초반 학생들은 대학 연구실에서 나오는 연구비로 생활을 했지만 한 두 살 아기를 키우고 있어서 본가나 처가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는 눈치였다. 게다가 연구비가 많지 않아 미국에서 극빈자에게 주는 사회보장 제도를 이용해 아기 분유와 식품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레지던트 월급도 많지 않았지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액수여서 왠지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 걸 부러워하다니… 다시 ‘풋’하고 웃음이 나오지만 사람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따라 하고 비교하며 사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후남이 가 자신에게 “비교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닫는 대목이 나온다. 후남이는 아버지가 언니 둘의 대학교 등록금을 대는 게 빠듯한 걸 보고 언니들이 간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부러 가장 들어가기 힘든 대학에 시험을 보고 낙방한다. 그리고 미국 교포에게 시집가서 큰 집에 크리넥스도 많고 모든 게 풍성하지만 부모님이 봤으면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언니들이 봤으면 부러워했을 텐데 아무도 없으니 무의미하다. 그렇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그들보다 잘하고 싶은 경쟁의식이 있다. 경쟁의식은 형제가 없어도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면 생긴다고 한다. 배가 고픈데 큰 소리로 울어야만 배를 채울 수 있다면 아이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울 거다. 


결국 경쟁의식은 사랑이 부족하면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경쟁의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배려해 줄 여유가 없다. 내가 부모에게 선생에게 더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다른 형제보다 다른 아이보다 잘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1등급을 받는 학생보다 나머지 등급을 받는 학생이 더 많듯이 우리는 대부분 경쟁에서 밀려난다. 그래도 다른 학생보다 한 등급이라도 높다면 만족할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한 등급이 낮은 상대방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발전한 것에 대한 인정을 스스로에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만하다.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경쟁의식은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짧은 기간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일 수 있지만 경쟁적 우위를 갖지 못한 사람에겐 심리적인 불안과 한을 남겼을 거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후남이 남편의 경쟁 상대는 한국이었다. 후남 남편은 한국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보며 “한국 땅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왜 그렇지 않겠나? 아마 후남 남편 자신도 한국을 그리워해서 그랬을 거다. 비록 모든 형제가 미국에 이민 와서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어도 한국을 그리워했을 거다. 비슷한 모습의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며 사는 고향은 바로 그런 존재다. 미국에 이민 간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미국에서의 성공으로 보상하려 한다. “한국에 있는 사람이 다 부러워할 만큼 잘 살 거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을 거다”. 적어도 한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 후남이 처럼 한국에 부모 형제가 있는 사람은 오죽하겠나! 그래서 후남이 남편은 결혼하지 20년 만에 장인 장모를 미국으로 초청해서 여행을 데리고 다니지만, 아내가 한국에 갈 빌미를 주지 않았다. 혹시 한국에게 아내를 뺏길까 두려워서. 결국 후남은 친정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 나서야 3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간다. 잘 살게 된 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온 아내는 남편의 우려대로 전처럼 미국에 사는 게 즐겁지 않다. 그리고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시골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또 한국에 나간다. 엄마는 “딸 막내”를 알아보고 손수 밥까지 짓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런데 나는 좀 더 상상해 본다. 후남이 가 한국에서 살겠다고 할까? 


아마도 아닐 거다. 후남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마중 나왔지만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조카며느리 혼자 나왔다. 언니들도 모두 나이 들어 며느리가 있고 다른 형제들도 각자 살기 바쁘다. 멀리 떨어져 지내며 그리워하던 것과 막상 만나서 함께 살면 다른 감정이 들 수 있다. 설사 남편이 한국에 나와 함께 살겠다고 해도 미국에 있는 자식들 생각은 안 날까? 언니들이 자식과 사는 게 부럽게 될 거다. 그러니 이제 후남은 미국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웃과 형제처럼 사는 게 더 좋을 거다. 한국이 그리우면 자주 방문하면 된다. 어쩌면 후남은 치매 걸린 노모가 처음으로 오롯이 자기만을 위해 지은 밥을 먹으며 자라면서 형제에게 치여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났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는 남편이 한국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도록 남편에게 잘하면 좋겠다. 나는 왠지 남편이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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