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무너진 도덕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한 참가자가 말했다.
“지금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병원 등 민간 시설을 공격하고 피난민에게 구조물품조차 반입하지 못하게 하여, 이런 책이 사람에게 공명을 주지 못한다고 해요. 그때 독일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나치가 생겼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유대인이 세계에서 경제를 장악하고 가자에서 하는 만행을 보면, 독일이 유대인에 대해 염려했던 부분이 맞지 않나요?”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은 나치가 퍼트린 “유대인의 세계 지배 계획”을 믿는다는 건가? 프리모 레비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현재 가자에서 살상하는 것을 반대했을 거다. 이 책의 결말에 부분에 “유대인들은… 아랍세계의 내부에… 경이로운 부흥을 만들어냈고… 또 다른 증오의 구실을 만들어냈다."(p. 250)라고 쓴 걸 보면, 그는 팔레스타인 점령으로 야기된 또 다른 폭력을 우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나치에게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는 책이라기보다 계속되는 폭력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도덕성을 상실하고 권력과 타협하고 비인간화가 되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회색 지대(Gray Zone)에는 나치에게 협력하여 특권을 받은 수감자의 종류가 나온다. “죽 0.5리터를 더 받기 위해” 야간 경비나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부터 수용소의 행정 사무실이나 처벌 감방에서 일하는 카포, 가스실과 화장터 관리와 시체 처리 업무를 맡은 특수부대. 이들은 냉혹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처벌받거나 쫓겨났다. 카포는 특히 잔혹했다. 수많은 포로가 그들에게 맞아 죽었다. 반면 이런 특권을 받은 소수의 포로는 영양 상태가 좋아 다수가 전쟁 후 생존했다.
그러나 이 모든 조직을 계획한 건 국가사회주의 나치 정부다. 레비는 나치가 저지른 가장 사악한 작품 중 하나가 특수부대라고 했다. 특수부대는 유대인이 유대인을 감시하고 화장터로 시체를 운반한다. 나치스 친위대는 이들 특수부대 유대인을 공범으로 만들어 동료처럼 대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시체 사이에서 죽지 않은 소녀가 발견됐다. 소녀를 숨기고 고깃국을 먹였다. 그러나 나치스 친위대는 그녀가 모든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부하를 시켜 죽였다. 이런 끔찍한 일을 목격하며 특수부대원은 왜 반항하지 않았을까?
반항하기는 했다. 비록 나치 친위대 3명을 죽이기 위해 수감자 450명이 희생되었지만… 어쩌다 생존한 특수부대원은 독일군이 동료를 산채로 화로에 넣었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레비는 회색지대에 있던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갑자기 집과 직장을 잃고 게토로 쫓겨나 배고픔과 굴욕감에 시달리며 가족이 죽어가는 걸 목격했다. 어느 날 화물열차에 실려 알지 못하는 곳에 도착하여 임무가 부과되고, 불응하면 죽는다. 레비는 이들이 “베펠노트슈탄트(Befehlnotstand), 즉 ‘명령에 따른 강제 상태’”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레비가 권력에 현혹되어 나치 폭력에 합세했던 사람을 두둔했던 건 아니다. 그는 ‘룸코프스키’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의 “도덕적 뼈대”를 고민하게 한다. 룸코프스키는 우치 게토의 위원장이었다. 독일은 그가 게토를 잘 유지해 줘서 그에게 여러 특혜를 줬다. 그는 마치 왕처럼 화폐도 만들고 자신의 초상화를 넣은 우표도 만들고 자신을 찬양하는 찬가도 작곡하게 했다. 경찰도 조직하고 히틀러의 웅변술을 모방하여 자신과 영웅을 동일시했다. 실제로 그는 용감한 행동도 했다. 게슈타포가 예고도 없이 찾아와 그의 부하를 체포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구한다. 그러나 게토의 굶주린 신민이 반항하자 가혹하게 탄압했다. 결국 독일이 게토를 해산하며 그도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제거됐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룸코프스키는 복잡한 인물이다. 내편은 목숨을 걸고 지켰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냉정했다. 만약 그가 게토 주민과 함께 봉기를 일으켰다면 어땠을까? 그가 그토록 바랬던 진짜 영웅이 됐을 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무시무시한 체제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웅보다 생존자가 됐을 거다. 화장실도 없는 화물칸에 수십 명을 짐짝처럼 쑤셔 넣어 수일을 이동했다. 수용소에 도착하면 모두 옷을 벗기고 털을 깎았다. 이유도 없이 수시로 구타당했지만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은 더 맞았다. 저녁에 화장실 출입이 금지되어 낮에 죽을 담았던 그릇을 저녁에 요강으로 쓰고 물이 나오는 날에만 씻을 수 있었다.
차라리 자살을 하든지 가스실로 가겠다고 자청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p.88)여서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포로들은 강제 수용소에서 죽지 못했다. 허기지고 허탈한 상태에서 기계적인 노동만 하며 도덕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제정신이 들었을 때 동물처럼 살았던 기억이 악몽이 되어 자살했다. 레비는 그들이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추측했다.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왜 동료 포로에게 도움을 베풀지 않았을까?
오히려 구타했던 사람들은 기억을 지웠단다. 그러나 일반 포로들은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 기억나서 괴로웠다. 레비도 그랬다. 그는 우연히 밥만큼 귀했던 물이 든 파이프를 발견했다. 몰래 친한 동료와 둘이서만 마셨다. 그러나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다른 동료가 알아차렸다. 해방 후 만난 그 동료는 왜 자기에게 물을 나눠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레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거운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리고 자문한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p.95)
친구는 그가 “최대한으로 증언하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 말을 믿어보지만 최고의 사람은 모두 사망했고, 회색지대의 협력자나 이기주의자만 구조됐다고 했다. 더불어 세상에 대한 수치심에 대해서도 말했다. 히틀러 정부가 집권했던 12년 동안 독일인은 대부분 침묵했다. 그래서 인간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p.102)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과 공범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뜨끔하다. 그래서 계속 이런 책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뼈대에 골다공증이 생길 거다. 가자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와는 무관하며 이스라엘만 나쁘다고 탓하면 된다. 그러나 하마스가 먼저 시민을 납치했으니까 그들이 나쁜 건가? 아니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으니까 그렇게 된 건가? 어찌 됐든 폭력은 멈춰야 한다. 레비가 인용했던 존 던의 문구처럼 “어느 누구도 섬은 아니다 (No man is an Island).” 그렇다면 타인의 핍박과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범죄도 나와 무관한 게 아니다. 나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다. 지금 전쟁이 일고 있는 모든 지역에 하루빨리 폭력이 멈추길...
<참고문헌>
Levi, P. (1986).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소영, 역). 경기: 들베개. (원서출판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