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_1

by 명희

동네 도서실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수업은 교수도 학생도 나이가 많았다. 더러 젊은 얼굴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쉰을 넘긴 이들이었다. 교수 또한 정년퇴직을 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낭랑했다. 그녀가 릴케의 시를 독일어로 읽으면, 그 독일어는 어쩐지 프랑스어처럼 들렸다.

수민은 첫 수업을 들은 날, 곧장 독일어 앱을 설치했다.
엔출디공(Entschuldigung), 아우프 비더젠(Auf Wiedersehen), 구텐 아벤트(Guten Abend), 그로스아르티히(Großartig)…
처음 일주일은 열심히 따라 했지만, 낯선 발음은 금세 입안에서 미끄러졌다. 결국 이 주 만에 포기했다.

이 나이에 무슨 독일어를 한대… 욕심이 과해. 조심해. 파우스트처럼 될 수도 있어.
그러나 이내 스스로 피식 웃었다. 내가 무슨 파우스트야. 바그너면 모를까.

교수의 목소리가 강의실을 가로질렀다.

“이 주 전이었나요? 마네의 그림 〈거울 앞에서〉, 기억나시죠? 그때 릴케의 시 〈거울 앞 여인〉 도 함께 봤었죠. 거울을 보고 있는 여인이 나르시시즘적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었죠?”

수민은 핸드폰을 켜 다시 그 그림을 찾아보았다. 여인은 거울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흐릿한 얼굴은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속옷의 어깨 끈이 팔에 내려앉은 모습은, 그녀가 옷을 벗으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보였다.

“거울에는 그녀만 보이고 남자는 없어요. 그런데 그녀는 한 남자를 상상하죠.”

교수는 시선을 들었다. 첫 줄에 앉은 학생이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생이 입을 열었지만, 그 소리는 강의실의 낮은 웅성거림에 묻혔다.
“아, 그때 안 나오셨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교수의 시선이 옆줄로 옮겨졌다. 수민이었다.
수민은 갑자기 공기 속에서 무게가 바뀐 것을 느꼈다. 교수의 눈빛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말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르시소스가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했으니까… 여인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걸까? 허영심? 그건 너무 단순하잖아. 교수는 도대체 어떤 답을 듣고 싶은 걸까?

수민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였다.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고, 입술은 닫힌 채로 굳어 있었다. 교수는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언의 신호처럼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르시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아니요.” 누군가 뒷자리에서 짧게 대답했다.

“그렇죠. 그는 그것이 자기 자신인 줄 모르고 사랑했어요. 다시 말해, 자신을 타자화해서,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을 사랑한 거죠.” 교수는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릴케의 “거울 앞 여인”도 그랬습니다. 거울 앞에 선 여인은 남자의 시선 속에 비친 자신을 상상했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교수는 스크린에 떠 있는 작자 미상의 태피스트리 《여인과 일각수》를 가리켰다. 수민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위키피디아 설명을 훑었다. 태피스트리는 모두 여섯 점. 1500년경 파리에서 그려진 도안을 바탕으로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작품이었다. ‘천 개의 꽃(Millefleurs)’이라 불리는 양모와 실키 직조 방식으로 짜였으며, 다섯 점은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의 오감을 묘사한다. 여섯 번째 작품에만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내 유일한 소망을 위하여(À Mon Seul Désir).”

교수는 다섯 번째 태피스트리를 확대하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각수가 거울을 보고 있어요.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작가의 이전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