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971년, 아버지가 일본 대사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그 소년과는 작별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가야 했다.
그 시절 일본의 텔레비전은 놀라우리만큼 노골적이었다. 화면 속 남녀는 서로를 껴안았고, 누구도 그것을 가리려 하지 않았다. 수민은 그 장면들을 몰래 훔쳐보며 알 수 없는 열기를 느꼈다. 그 감정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가슴이 자라나는 것이 부끄러워, 수민은 브래지어 대신 끈으로 몸을 동여맸다. 신체의 변화는 낯설었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불안과 함께 찾아왔다.
그래서 그녀는 보다 안전한 세계로 도망쳤다. 사랑은 있지만 접촉은 없는 세계—종이 위의 세계였다. 그곳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언제나 멀리 있었다.
순정만화 속에서 수민은 사랑을 배웠다. 캔디와 테리우스. 질투와 오해 끝에 결국 사랑을 이루는 단순한 이야기. 그 단순함이 그녀에게는 안심이었다. 현실의 사랑은 더럽고, 불안했고, 무서웠다.
그 후로는 석간신문에 연재된 소설을 읽으며 어른들의 사랑을 엿보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낭만이 아닌, 타협과 후회의 공간이었다. 사랑은 늘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얻는 것이었고, 그 잃음은 대개 너무 컸다.
그즈음, 정란과 수민은 짝이 되었다. 정란은 수학을 잘했고, 수민은 영어를 잘했다. 서로의 약점을 채워주며,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공부를 마치고 잠시 쉬던 어느 날, 수민이 조심스럽게 연재소설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정란이 말했다. “그런 사람 얘기 좋아하니? 난 요즘 『더버빌가의 테스』를 읽고 있어.”
그 말이 두 사람의 세계를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그들은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그들의 대화 속을 자유롭게 오갔다.
시험 문제보다 문장 속 감정에 더 오래 머물렀고, 그 시간만큼은 자신들도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책 속 사랑은 여전히 아프고 불완전했지만, 그들은 그 아픔을 함께 읽고, 함께 이해했다.
수민에게 좋은 소설이란, 읽고 난 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햄릿』보다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유정』보다는 『무정』을 더 좋아했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실존의 고뇌도, 여성의 사회적 위치도 중요하지 않았다.
“햄릿 엄마는 어떻게 시동생이랑 결혼할 수 있지?” “그만큼 예뻤겠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는 예쁘면 80%는 성공이래.” “그렇지만 정절이 중요한 것 아냐?” “그렇지. 그래서 햄릿이 오필리어한테 그러잖아. 아름다움이 정숙한 여인을 매춘부로 만든다고.” “그러나 내 생각엔, 경제력도 중요한 것 같아. 우리 엄마 보니까 사범대학을 나왔는데도 경제력이 없으니까 우리 아버지가 무시하는 것 같아. 나는 경제적인 독립이 중요한 것 같아.”
그 시절, 그들은 사랑과 도덕을 그렇게 단순하게 믿었다. ‘결혼 전에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과 같은 무게로 새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런 수다를 떠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수민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해 입을 손으로 가렸다.
교수는 수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설명을 이어갔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이마고로써 관찰자의 상상을 장면 화한 겁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일각수는 귀부인이 상상하는 자신을 보고 있고, 귀부인에게 길들여졌다는 의미도 있겠죠.
중세 미술에서 거울은 자기 성찰과 진실을 상징할 수 있어요. 그래서 거울을 든 여인은 일각수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본성을 직면하도록 격려하는 것일 수도 있죠.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알레고리를 통해 보여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음미하는 거죠. 혹시 그림에 대해 질문 있나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교수는 말을 이었다. “그럼 잠깐 쉬었다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