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_5

by 명희

교수가 교실을 나가자, 수민 앞에 앉아 있던 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지난주 수업 들으셨어요? 혹시 필기한 거나 자료화면 찍은 사진 있으시면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수민은 스마트폰을 꺼내 지난주에 찍어둔 사진을 공유했다. 여인은 사진을 확인한 뒤 고맙다며 가방을 뒤적였다. 잠시 후, 작은 과자 봉지 두 개를 꺼내 하나를 수민에게 내밀었다.

버터코코넛. 평소 과자를 잘 먹지 않지만, 수민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그 과자는 외할머니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일요일 오후, 절에 다녀온 할머니는 인스턴트커피 한 잔과 버터코코넛을 곁들여 앉곤 했다. 수민이 한동안 커피와 과자를 함께 먹는 버릇도 그때 생겼을 것이다.

이제 수민은 어느새 외할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 수민은 대학교 3학년이었고, 지금 그녀의 손녀는 겨우 네 살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시기를 보면, 그들의 자녀가 대학생이 될 즈음엔 수민보다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수민의 딸만 해도 수민보다 다섯 살이나 늦게 첫 아이를 낳았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예전보다 철이 늦게 드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몸으로 고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는데, 의술은 발달했고, 생활은 편리해졌고, 그럴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인간의 발명은 대부분 노동을 줄이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머리마저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도 모든 걸 챗GPT에게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다 가르쳐주지 않나?

오늘 수업에서 배운 것만 해도 그렇다. 일각수가 거울을 보고 있는 의미를 물었더니, 요점을 간추려 주고, 인문학적 수필 형식이나 학술적 해석 문체로 명료한 에세이를 써줬다. 읽어보니, 수민이 쓴 것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교수의 설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세 상징주의적 해석에다 다른 관점까지 덧붙여 비교 분석해 줬다. 이런 도구에 계속 의지하고,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두뇌를 쓰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벌써 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하기가 귀찮아졌다. 나이 탓인지, 스마트폰 탓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새로운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점점 머릿속에 오래 담아두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손녀가 대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까?

“어떻게 이 수업을 듣게 되셨어요?” 과자를 준 여인의 질문에 수민의 생각이 끊겼다.

“아, 제가 올해 정년퇴직을 해서요. 무료해서 도서실에서 인문학 강의 공고를 보고 신청했어요.”

“벌써 퇴직을 하셨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아, 네, 뭐…” 수민은 웃으며 말을 흐렸다.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오셨어요?”

“저는 선생님 아니에요. 그냥 아이들이 학교가 있는 시간에 교양도 쌓고, 시간도 때우려고 온 거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정년퇴직 이야기를 왜 했을까? 수민은 내적 갈등을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녀는 30년 교직 생활 동안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학생과 동료 교수에게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나니, 그녀도 그냥 동네 아주머니였다. 그래서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굳이 내놓았던 걸까? 그녀는 버터코코넛 봉지를 손에 쥔 채, 잠시 과거와 현재 사이에 머물렀다.

나는 그냥 나일뿐이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정년퇴직 이야기를 꺼낸 것도, 결국은 자신의 일부였으니까. 남에게 말했다고 해서 잘난 척을 한 건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덜어낸 말들이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수민은 진솔하게 행동하고,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학교에서는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 본래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성격이었지만, 체면이나 사회적 규범을 의식하는 순간, 말을 아끼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년을 하고 나니,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왜 정년퇴직 이야기를 했을까? 그냥 “독일문학이 궁금해서 신청했어요”라고 했으면 될걸. 왜 묻지도 않은 정보를 덧붙였을까? 정작 대답해야 할 때는 망설이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은 먼저 꺼내고. 나는 왜 이렇게 나를 알리고 싶은 걸까?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언제쯤 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상대가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아니다. 난 그냥 나답게 행동하면 된다.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모르는 사람에게 사적인 정보를 흘릴 수도 있지. 그러나, 말은 줄여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말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흐려지니까.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교수는 릴케의 『말테의 수기』와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 II, 4」를 읽으며, 여인과 일각수가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분석했다.

“말테는 태피스트리를 바라보며 아펠로네에게 말을 건넵니다. 실제로 그녀를 만난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거죠. 그렇다면 말테는 정말 아펠로네를 사랑한 걸까요?”

교수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수민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릴케는 시에서 일각수를 ‘존재하지 않는 짐승’이라 표현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가요? 처녀들이 그 짐승을 사랑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던 짐승이 순수한 존재로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 짐승은 ‘은거울 속에,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 존재했다’고 하죠.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떤 사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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