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이성과 감성>>을 읽고

by 명희

딸!

네가 대학교 다닐 때 우리가 함께 읽고 영화까지 봤던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다시 읽었어. 벌써 16년 전 일이니, 우리가 그때 이 책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제 너도 결혼하여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엄마도 너와 네 동생이 짝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이 책을 읽는 느낌도 다른 것 같아. 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의 끈끈한 자매애가 느껴지지 뭐니. 이들은 평소에 사소한 대화 속에서 행복이나 사랑, 이상적인 인간상에 관해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배려하고 성장하지. 엄마 생각엔, 대부분의 사람은 젊을 때는 메리앤처럼 감성이 풍성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엘리너처럼 의연해지는 게 아닌가 싶어.


너 엄마가 왜 제인 오스틴 소설 좋아하는지 알지? 사랑과 결혼 사이에 돈이라는 접착제가 있다는 걸 솔직하고 재치 있게 드러내면서도 고상하게 나무라는 글 솜씨 때문이지. 이 책에서도 첫 장부터 돈 이야기가 나오잖아. 아버지가 사망하며 엘리너 가족은 급격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하지. 큰할아버지가 놀랜드 저택을 예정 대로 아버지에게 물려줬어도 이들이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부인과 딸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남겼을 텐데... 죽음은 종종 사람의 계획을 무산시키지. 아버지는 아들 존에게 새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부탁하고 떠나지만, 존이 아내 패니의 말을 듣고 원래 주려고 했던 삼천 파운드 대신 가끔 고기나 주기로 하지.


그러나 엄마는 경제적 어려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물론 너무 궁핍해서 끼니를 굶을 정도라면 다른 이야기지만, 결핍을 통해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게 분명히 있거든. 예를 들어, 엄마가 처음부터 돈이 많아 집을 살 수 있었다면, 절약해서 저축하고 내 힘으로 집을 사는 성취감을 못 느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원래 돈을 아끼는 편이잖아. 그런데도 부모에게 용돈 받을 때는 잘 썼던 것 같아. 기댈 때가 없어지자 일을 찾고 절약을 하게 되더라. 대시우드 모녀도 비슷했던 것 같아. 그러나 그들이 살던 1811년 젠트리 계층의 여성은 일을 하지 않아 있는 돈으로 살아야 했지. 대시우드 모녀는 일 년에 500파운드로 살았는데 당시 그 계층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비였대.


물론 당시 제인 에어처럼 남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거나, 하인이나 빈곤층을 생각하면 대시우드의 형편을 동정할 수 없겠지만, 사람은 자신과 사회 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과 비교하기 마련이니, 이들이 존이나 패니를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섭섭했을 거야. 존은 저택도 상속받고, 일 년에 4,000파운드도 받고, 수입도 있고, 모친의 재산도 받고, 결혼할 때 아내에게 받은 재산도 있어서 여동생들에게 3000 파운드를 주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패니가 아들의 재산을 줄이는 일이라고 하자 곧바로 없던 일로 하지. 오히려 먼 친척 장모였던 제닝스 부인이 자매에게 너그러웠지. 엘리너와 메리앤은 제닝스 부인 덕분에 런던에 갈 수 있었어. 부친이 살아있었다면 놀랜드 저택이 런던에서 멀지 않으니 더 자주 갈 수 있었겠지만 시골로 이사 가서 제닝스 부인이 아니었다면 구경 가기가 어려웠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너는 처음에 제닝스 부인의 호의를 그렇게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 겨울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런던에 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수다스러운 제닝스 부인과 함께 지내는 것도 부담스러웠지. 비록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져서 작은 시골집에 살지만, 누구보다 지성미를 갖춘 대시우드 자매는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은근히 비판했지. 그래서 존 미들턴의 친인척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가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어. 적어도 엘리너는 예의를 지키며 그들과 교류했지만 메리앤은 피아노를 치거나 자리를 피하거나 윌로비하고만 놀았지. 그랬던 메리앤이 런던 집에 몇 달 와서 지내라는 제닝스 부인의 제안에 “감사합니다, 부인. 정말 감사합니다”(p. 145)라고 한 거야. 엘리너는 곧바로 동생이 런던에서 윌로비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채지. 어머니도 딸들이 런던에 가서 “예절과 놀이”(p. 146)를 배우고 즐겁게 지내기를 희망하고, 천방지축인 동생을 제닝스 부인에게 맡기는 게 불안하여 동생과 동행하지.


기억나지? 왜 메리앤이 그토록 윌로비를 애타게 만나고 싶었는지. 그는 메리앤의 이상형이었어. 잘생긴 외모, 건강한 체력, 춤, 노래, 좋아하는 책까지 취미도 기가 막힐 정도로 일치했지. 심지어 “생각나는 모든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버릇까지” (p. 48) 메리앤과 닮아 있었어. 엘리너는 윌로비가 괜찮은 사람 같으면서도 제닝 부인이나 브랜든 대령을 은근히 폄하해서 우려하지. 그 후 그는 기약도 없이 훌쩍 떠나고 메리앤은 울고불고하다가 우울해지지. 막상 런던에서 윌로비를 만났는데 놀랍게도 그는 다른 사람과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지. 윌로비는 돈을 선택했어. 자기 자신을 잘 안 거지. 메리앤을 사랑했지만, 돈 없이는 못 산다는 걸 알았겠지. 혼자서 일 년에 육 칠백 파운드를 쓰면서도 빚을 지는 사람이었으니까… 엘리너는 식욕을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비참하다”라고 소리치는 메리앤을 정성스럽게 보살피지.


사실 엘리너도 에드워드가 19살 때 루시와 비밀 약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메리앤만큼 괴로웠지. 그러나 엘리너의 반응은 동생과 완전히 달랐어. 처음에는 에드워드가 비밀을 말하지 않은 게 화가 났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에드워드가 자기를 사랑한 게 확실했어. 대시우드 부인과 메리앤은 말할 것도 없고 패니까지 눈치채고 떼어놓으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에드원드는 지난 4년 동안 루시를 보며 그녀가 “문맹이며 교활하고 이기적”(p. 132)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물릴 수 없었을 거라고 상상하지. 여기서 “문맹(illiterate)은 기본적인 문해력은 있지만 신사 숙녀에게 기대되는 세련됨이나 지적 호기심이 없다는 거야. 반면 에드워드는 정직하고 섬세하고 지적이니 루시 같은 사람과 평생 살 수도 있다는 게 오히려 불쌍했어. 에드워드를 잃는 건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며 어쨌든 지금은 자기가 에드워드보다 덜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꿋꿋하게 버틴 거야. 정말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나중에 언니의 시련을 알게 된 메리앤이 하도 흥분하는 바람에 엘리너가 오히려 동생을 달래야 했지. 메리앤은 자신이 윌로비 문제로 넉 달 동안 언니에게 충동적인 감정을 쏟아내며 “행복한 언니”는 자신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반성했어. “그렇게 침착하게! 그렇게 명랑하게! 어떻게 견뎠어?”. “…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어.” (p. 249) 엘리너는 가족과 에드워드를 배려해서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지.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된 게 아니었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고통스러운 노력” (p. 250)을 했다고 했지. 그 후 메리앤의 태도는 엘리너와 비슷해지지. 제닝스 부인이 루시와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할 때 약간 목의 경련을 일으킬 뿐 안색이 변하거나 반박을 하지 않지.


책 초반에 이 자매가 에드워드에 대해 나눴던 대화나 돈과 행복을 논하는 장면을 보면 메리앤이 얼마나 언니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는지 알 수 있어. 물론 전에도 언니를 무척 사랑했지만, 언니가 에드워드에 대한 사랑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은근히 비난했는데, 지금은 언니의 이성적 태도를 닮고 있는 것 같아. 언니의 상황이 드러나기 전까지 메리앤은 언니가 답답했어. 지나치게 분별력이 있고 열정이 부족하여 자신이 윌로비를 사랑하는 것만큼 에드워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언니의 이성적 관찰과 판단이 표출하는 조용한 인내도 다른 형태의 사랑이란 걸 깨닫게 되지.


엄마는 엘리너가 에드워드를 좋아하는 이유와 메리앤이 장차 브랜든 대령과 결혼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17장에 나오는 한 장면에서 발견했어. 에드워드가 자기는 엄마와 누나의 뜻에 따라 위대한 사람이 되어 부를 누리는 것보다 자기 방식대로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한 거라고 하잖아. 아마도 엘리너는 에드워드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했을 거야. 선량하고 분별력 있는 에드워드는 분명히 이기적이고 교활한 누나와 달랐지. 그런데 이런 에드워드의 답변을 들은 메리앤이 “부나 위대함이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자 엘리너는 “위대함은 조금밖에 상관없겠지만, 부는 상당히 관계가 있어” (p. 89)라고 해. 그게 과연 무슨 뜻일까? 메리앤은 언니를 오해하며 “다른 무엇도 행복을 주지 못할 때 돈은 행복을 줄 수 있을 거야. 사람이 능력(competence: 19세기에서 이 단어는 편안하게 살 수 있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돈)을 갖게 되면, 그 이상의 부는 개인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해”(p. 89)라고 하지.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니니? 요즘도 이런 말 하잖아.


문제는 메리앤이 말한 ‘능력’과 엘리너가 말한 ‘부’의 액수지. 메리앤의 “능력”은 일 년에 2천 파운드를 말하는데 그건 엄청나게 큰돈인가 봐. 요새 환율로 정확히 계산할 수 없지만 대시우드 모녀의 일 년 생활비가 500파운드임을 감안하면 요새 시세로 적어도 일 년에 3-4억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 그래야 하인과 두 대의 마차와 말을 유지할 수 있겠지. 그때 엘리너는 “일 년에 이 천 파운드! 난 일천 파운드인데!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네.”이라고 하지. 이게 또 무슨 말일까? 메리앤은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 액수가 적지 않다는 걸 엘리너가 꼬집은 거지. 동시에 엘리너는 메리앤이 생각하는 액수의 반으로 살 수 있다고도 하잖아. 다시 말해 엘리너는 메리앤의 낭만적인 이상이 행복한 결혼 생활에 필수적인 재정적 안정과 충돌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 그래서 이때 이미 엘리너는 동생이 앞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과 꼭 맞지 않아도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걸 예견한 것 같아.


딸아, 넌 돈에 대한 생각이 어느 자매와 비슷하니? 돌이켜보니 너희 남매를 키울 때는 늘 돈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비교적 여유롭게 사는 걸 보면 되도록 아끼고 산 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아. 너와 네 동생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너희에게 사교육을 받게 하는 대신 미국에 데리고 가서 엄마가 학위를 받은 것도, 아빠와 떨어져서 살게 한 건 미안했지만, 너희들이 잘 자라줘서 좋은 선택이 됐지.


할 말이 더 많지만 이만 줄일 게. 넌 어릴 때부터 엘리너처럼 신중한 아이였지. 그래서 엄마는 네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그러다 어느 날 네가 “엄마 말에 모두 동의해서 듣는 게 아니에요.”이라고 했을 때 뜨끔했지. 맞아. 사람은 대부분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도 전보다 말이 줄어든 것 같아. 뭐,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아무튼 여전히 엄마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맙고, 엄마가 한 말이 혹시 섭섭하게 들렸다면 미안하고… 우리 딸 사랑해.


<참고 문헌>

Austen, J. (2025). "Sense and Sensibility". Peter Pauper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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