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이방인"

기분 나쁜 부조리

by 명희

사람들은 이 소설을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묘하게 기분만 나쁠 뿐인데... 주인공 뫼르소뿐만 아니라 레몽 살라마노 영감 등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뫼르소가 싫은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사람을 죽이고도 후회를 하지 않고 “좀 귀찮다 싶은 느낌”(p. 89)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이코페스 아니야? 그러나 죄책감이 부족하다는 것 말고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는 사이코페스의 특징은 없다. 오히려 뫼르소는 관리인이 재판장에서 어머니 영안실에서 담배를 피운 걸 사과할 때 자기가 관리인에게 담배를 권했다고 그를 변호해 줬다.


처음부터 뫼르소에게 반감을 가진 건 아니다. 그가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할 때까지 그가 특별히 특이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비록 효자는 아니어도 어머니가 3년 전 양로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시고 살았다. 양로원에 들어간 것도 어머니가 요양사의 도움이 필요한데 뫼르소가 비용을 댈 수 없어서 기관에 위탁하게 된 거다. 다행히 어머니는 양로원 생활에 익숙해져서 친구도 사귀고 잘 지내서 뫼르소도 어머니에게 덜 신경을 쓰게 된 것 같다.


확실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는 변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가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느냐고 묻는 판사의 질문에 “네, 누구나 그렇듯이요.” (p. 86)라고 말한 걸 보면, 그도 가족에 대한 보편적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무심한 듯한 행동을 하고, 말수가 적은데 어쩌다 하는 말은 속마음이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게 건 적게 건 바랐던 적이 있는 법이다.” (p. 83)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던 거나 어머니 상중에 마리와 해수욕장에 가고 코미디 영화를 봤던 일련의 행동은 그의 부조리한 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사망으로 인한 복잡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부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한 게 아닌 가 싶다. 심한 죄책감이나 슬픔에 사로잡히면 일상에 지장을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살기 위해 어머니를 빨리 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볼 때 뫼르소는 이기적 일지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몽이 편지로 여자를 유인해 구타할 걸 알면서도 편지를 써주거나, 레몽에게 유리하게 거짓 증언해 주는 걸 보며 그의 도덕성에 의심이 갔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피해를 생각하지 못한 걸까? 어째서 뫼르소는 폭력에 무감각할까? 살라마노 영감의 개가 학대를 당할 때에도 그는 한 번도 말리지 않았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그가 왜 쓰러진 아랍인을 향해 권총 4발을 더 쏘았냐는 거다. 그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어째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그가 누구보다 솔직한 사람으로 관습이나 종교적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타인과 원만히 지내기 위해 내키지 않지만 예의를 지키고 친절을 베풀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거짓된 삶인가? 물론 예심 판사나 신부가 뫼르소에게 종교적 회개를 강요한 건 잘못이다.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억지로 주입하려는 태도도 일종의 폭력이다. 그래서 뫼르소가 신부에게 쏟아부은 폭발적인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확신하는 단 하나의 진리는 죽음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형 선고를 받을” (p.146) 거다. 그는 종교의 힘을 빌려 죽음의 두려움을 피하거나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 죽으면 끝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니 사랑도 결혼도 진급을 하고 파리에서 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저 살아 있는 동안 그때그때 자기가 좋아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 일에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p. 145). 이런 뫼르소의 철학을 공감하면서도 허무하고 우울하다.


뫼르소는 늘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았을까? 대학생 시절에는 야심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면서 모든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열심히 일하지만, 작은 아파트에 살고,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그는 불행하지 않다고 했다.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신문에 난 재미있는 것을 오려서 공책에 붙이고, 집 발코니에서 거리를 보며 소일하는 게 지겹지 않았다. 그가 솔직하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리라는 여자친구까지 있다. 그래서 마리와 마송의 별장에 놀러 가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겠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같은 장소에서 뫼르소는 견딜 수 없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중대한 죄지만, 동기나 상황에 따라 구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뫼르소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받았다. 살인의 구체적인 맥락보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큰 죄가 됐다. 사회적 규범에 의해 심판을 받은 것이다. 예심 판사는 뫼르소를 “반기독자 양반” (p.90)이라고 부르고, 검사는 냉담한 뫼르소가 범죄를 사전에 계획했다고 주장하고, 검사보다 말발이 약한 변호사는 패소했다. 뫼르소의 부조리한 사형 선고는 무능한 변호사, 교활한 검사와 정직한 뫼르소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비록 범죄 사실을 반성하지 않는 뫼르소의 태도는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우발적인 살인에 사형 선고는 가혹하다.


주인공도 결말도 모두 애매한 느낌이 드는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부조리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이야기다. 뫼르소가 감방에서 발견한 신문 조각에 실린 기사 말이다. 어떤 남자가 큰돈을 벌어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엄마와 누이가 경영하는 여관에 들어갔으나 그들이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자 장난 삼아 방을 잡고 돈을 보여준다. 모녀는 남자를 살해하고 돈을 훔친다. 다음날 남자의 아내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엄마와 누이는 자살한다. 남자가 곧바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거나, 돈이 많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어도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남자는 왜 엄마가 몰라볼 정도로 오랫동안 집에 들르지 않았을까? 엄마와 누이는 왜 사람을 죽일 만큼 돈에 눈이 멀었을까? 당사자가 모두 사망해서 이유는 알 수 없다. 뫼르소는 이 글을 읽고 절대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쓸데없는 짓을 해서 죽게 된 건 남자나 뫼르소나 매한가지다.


<참고문헌>

Camus, A. (1942). 『이방인』. 김화영 역. 서울: 민음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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