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의 아메리칸드림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로 흔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꼽지만 작품의 내용만 놓고 보면 개인적인 취향에 그다지 맞지 않다. 개츠비가 부를 축적한 동기와 방식도 수상하고, 비극적인 결말 역시 씁쓸하다. 이건 대중 서사가 지향하는 구조가 아니다. 우리는 보통 결핍을 지닌 주인공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에 끌린다. 아메리칸드림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열심히 일하면 이민자도 부자가 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명문대학에 진학하여 전문직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그렇게 미국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그 공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소설의 화자 닉은 “인생이란 결국 단 하나의 창으로 바라볼 때 훨씬 더 성공적으로 볼 수 있게 마련이다”(p.14)라고 말한다. 여기서 ‘단 하나의 창’이란 복잡한 현실을 여러 각도에서 성찰하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가치·욕망에 집중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삶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단순화하면 그 기준에 부합하는 목표에만 시선을 집중할 수 있고, 그로써 자신의 꿈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성공적이다’가 아니라 ‘성공적으로 볼 수 있다’라고 표현한 걸 보면, 하나의 기준으로 목표를 설정할 때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속이거나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개츠비가 그랬다. 그는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대궐 같은 저택을 소유하면 데이지와 행복한 미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데이지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그는 “열일곱 살의 청년이 그릴 법한 제이 개츠비라는 인물을 만들어… 그 모습에 끝까지 충실”(p. 142) 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제임스 캐츠는 백만장자 댄 코디를 만나 5년간 미 대륙을 세 번이나 횡단하며 제이 개츠비로 환골탈태하고, “거창한 일” (p.212)을 할 거라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상류층 사람들과 만나긴 했지만…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철조망이 가로놓여 있었다” (p.209). 그래서 데이지가 필요했을 거다. "돈으로 가득 차 있" (p. 171)는 데이지의 목소리가 지닌 권위라면 기득권의 철조망을 무너뜨리고 상류사회로 진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거다.
하나, 데이지는 과연 개츠비의 출신을 알고도 그와 결혼했을까? 설령 그가 갑부였을지라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는 감언이설로 자신이 데이지와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p.210) 사람인 것처럼 기만했다. 거짓말로 시작된 관계의 결말이 좋을 리가 없다. 더욱이 데이지는 결핍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성공을 향한 고통스러운 인내의 과정을 알지 못한다. 세습 자본에 의지해 안락한 삶을 영위하면서 개츠비의 성공 동력이 불법 밀주업이라는 사실에 도덕적 혐오를 드러낸다. 그러나 정작 그런 술을 즐기는 톰의 범법 행위에는 무감각하다. 이런 모순은 데이지의 도덕성이 보편적 가치가 아닌, 오직 자신의 안락함과 감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사실 데이지는 이미 오래전에 개츠비를 잊은 상태다. 조던은 데이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남편에게 그렇게 미쳐 있는 여자는 처음 보았" (p.111)다고 말했다. 이는 그녀가 확실히 톰의 세계를 선택했고 개츠비는 과거로 밀어냈음을 시사한다. 개츠비 역시 데이지와 처음 재회했을 때 그녀가 "멀게만 느껴졌"고 "이해시키기 무척 어렵"(p. 158)다고 토로했는데 이는 이미 벌어진 계급과 시간의 간극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일 거다. 따라서 이후 그녀가 개츠비에게 보인 일시적인 호감은 사랑의 회복이라기보다는 톰의 외도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을 보상받으려는 반사적 반응에 불과할 거다.
그렇다면 개츠비는 왜 그토록 상류사회에 집착했을까? 아메리칸드림이 문제일 수 있다. 아메리칸드림은 누구나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고취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성공의 형태를 단일하게 규정한다. 여기서 성공은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도달해야 할 규범적 목표로 군림한다. 이 과정에서 부와 상류 문화, 사회적 인정은 보편적 가치로 격상되고, 그 외의 삶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자율적으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조형된 기준을 내면화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 욕망' 이론은 개츠비의 집착을 더욱 선명하게 설명해 준다.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대상 그 자체에서 솟아나기보다 타자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형성된다고 한다.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매료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많은 남자들이 이미 데이지를 사랑했다는 사실"(p. 209)이었다. 타자들의 욕망이 개입됨으로써 그녀의 가치는 개츠비 안에서 비약적으로 증폭된다. 이처럼 개츠비는 데이지를 욕망함으로써 그녀가 상징하는 상류층의 정체성을 한꺼번에 획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열망이 사회적으로 조성된 모방의 결과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생에 단 한 번뿐인 운명적 사랑으로 오인한다.
흥미로운 점은 개츠비의 비극이 성공 이후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비록 밀주 판매라는 불법적인 방식이기는 했지만, 개츠비 역시 다른 아메리칸드림 추종자들처럼 부지런히 일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상류층 사회로부터 정당한 승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올드 머니’와 ‘뉴 머니’ 사이의 계급적 경계는 끝내 허물어지지 않았다. 이는 성공의 기준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 끊임없이 재설정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올드 머니의 소유자는 뺑소니 사고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개츠비는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p.227). 이래도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은가?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할 거다. 그것은 개츠비의 실패가 아니라,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도전 자체를 위대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거다.
적어도 개츠비가 톰이나 닉보다는 낫지 않나? 톰과 닉은 모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헝그리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위대한 존재가 되려는 야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닉은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문의 이름이 주소를 대신하는 도시의 캐러웨이 가에서 자란 것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p.248)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는 인물로 보인다. 톰 역시 너무 이른 시기에 풋볼 선수로 명성을 얻은 탓에 이후의 삶은 “모든 것이 내리막길처럼 보이는”(p.16) 허무한 삶을 살아간다. 그가 데이지 앞에서 개츠비의 비밀을 폭로하며 공격했던 것은, 사실 자신의 정체된 삶을 위협하는 개츠비의 거대한 열정에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반면 개츠비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수성가의 화신이다. 어린 시절 스스로 생활표를 작성하며 엄격히 자기를 훈련했고, 댄 코디의 유산을 받지 못했을 때조차 결코 좌절하거나 연연하지 않았다. 군 시절에는 탁월한 능력으로 지휘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설령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겠다"(p. 159)는 그의 희망이 무모한 집착으로 보이고, 데이지에게 모든 것을 건 선택이 어리석었을지라도, 그의 삶은 충분히 위대했다.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p. 255)하는 그 치열한 과정 자체가 이미 숭고한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F. 스콧 피츠제럴드, 김욱동 역, 『위대한 개츠비』, 2004, 민음사. (원서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