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나타난 가족 서사와 상처의 기억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며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그 사람에게 결코 온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그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식이 부모를 기억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따뜻하고 원만하다면 좋겠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가 늘 그렇지 못하듯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오히려 타인이었다면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기에 넘길 수 있었을 일도, 부모이기 때문에 더 사무치고 오래도록 원망으로 남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차별받았다는 느낌은 상처가 되지만, 그 상대가 부모일 때 그 상처는 분노와 뒤섞여 애증의 시소를 타게 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에 등장하는 내레이터와 어머니의 관계 역시 그러한 경우처럼 보인다. 칠십이 된 작가는 소설 속에서 소녀 시절의 첫 성적 경험을 고백한다. 다소 노골적인 묘사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며,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만 열다섯에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을 성인의 감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어른이 어린 소녀와의 관계를 정당화할 여지도 생기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선정적인 내용보다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의 가족 이야기다. 설령 기억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뒤라스는 이 글을 씀으로써 자신이 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그녀의 가족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열여덟 살에 가족과 인연을 끊었지만, “젊은 날의 숨겨진 시기” (14)를 씀으로써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했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하고자 했던 듯하다. 그래야만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작은오빠의 이른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고, 그 죽음에 자신 또한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뒤라스는 이러한 가족사를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마치 노년에 이른 작가가 반세기 전의 일을 떠오르는 감정의 기억을 따라가며, 솟구칠 때마다 조금씩 기록해 나간 듯한 인상을 준다.
그녀는 메콩 강의 나룻배 위에서 만난 열두 살 연상의 중국인 부자가 “그녀의 마음을 끌었다는 것을”(47) 깨닫는다. 그것은 그가 리무진에서 내려 영국제 담배를 피우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애초에 미래를 상정할 수 없는 조건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베트남이라는 공간에서 그녀는 가난한 프랑스 백인 소녀이고, 그는 거부인 중국인 아버지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아들이다. 어쩌면 이 관계를 더 강하게 반대한 쪽은 뒤라스의 어머니가 아니라, 중국인 남자의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를 일 년 반이나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관계는 그녀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통로였고, 정서적 애정을 확인받는 자리였으며,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을 것이다.
뒤라스와 중국인 남자의 관계에서 더 많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오히려 그녀로 보인다. 중국인 남자는 잠자리를 함께할 때에도,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녀의 가족을 만날 때에도, 심지어 돈을 건넬 때에도 그녀의 뜻을 따른다. 사랑의 방식 또한 그녀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녀가 냉담하게 침묵할 때조차 그는 상처받을 뿐 관계를 거스르지 않는다.
이는 마치 고급 음식을 아무런 감사도 없이 탐욕스럽게 소비하는 그녀의 가족의 태도와 닮아 있으며, 그녀 역시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그에게 냉정해진다. 특히 큰오빠 앞에서 그는 “빈약한 육체”(66)를 지닌 초라한 존재로 인식되며, 그녀는 그와의 관계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시 그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큰오빠의 난폭한 행동은 … 우리 가족이 당하고 있는 모든 일들 때문 … 두려워하지 말라고 … 큰오빠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사람 … 나이기 때문이다”(68). 이 말은 가족 내부의 폭력 구조 속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미묘한 권력의 위치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어린 소녀는 왜 열여덟 살에 이미 늙었다고 말하는가? 그녀는 그 원인을 어머니 개인의 한계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폭력 모두에서 찾는다. “그토록 남을 쉽게 믿는 우리 어머니에게 사람들이 저지른 짓들 때문에, 우리는 삶을 증오하고, 우리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69)라는 진술은 개인적 비극이 식민지 현실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식민지 베트남에 남아 교사로 세 아이를 키운 어머니는, 개간지 투자 실패로 빚에 시달리며 점차 우울에 잠식된다. 그 결과 자녀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그 와중에도 방탕한 큰아들은 아편을 위해 돈을 훔치지만, 어머니는 그를 “내 아가”라 부르며 감싸고, 다른 아이들은 “밑의 애들”(75)로 호명한다. 이러한 편애는 가족 내부의 정서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소녀가 느끼는 소외와 조기 성숙의 감각을 더욱 가속화한다.
어머니는 친정 오빠들처럼 건장한 체격의 큰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나약한 남자를 멸시했다”(71). 뒤라스는 어머니가 난폭한 큰오빠로부터 작은오빠와 자신을 보호하거나 분리하지 않은 점을 무책임으로 받아들이며 깊이 원망한다. 큰오빠보다 한 살 어린 작은오빠는 연약한 인물이었으며, 어린 시절 두 형제는 서로 거의 죽일 듯이 싸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반면 큰오빠가 프랑스 후견인 집에 잠시 맡겨져 있던 시기, 두 살 터울의 뒤라스와 작은오빠는 비교적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가 향기 나는 비누로 집 안을 청소하고, 어린 남매가 밝게 웃던 기억은 폭력의 부재가 곧 행복이었던 가족 환경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큰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가족 전체가 침묵 속에 들어갔다.
작은오빠 폴로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큰오빠 역시 그 죽음을 “끔찍한 일”(96)이라 표현했지만, 뒤라스에게는 어린 시절 그가 동생을 위협하며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던 장면이 선명히 남아 있다. 큰오빠는 음식뿐 아니라 집안의 돈까지 독점적으로 소비했으며,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그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결국 그는 상속 재산을 탕진하고, 여동생의 집에서 식량과 숨겨 둔 오만 프랑을 훔쳐 달아난 뒤, 쉰이 넘어서야 “몸에 걸친 옷”(95)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고서야 처음으로 일을 구해 십오 년 반 동안 일하다 생을 마친다.
뒤라스의 시각에서 어머니의 가장 큰 문제는 신중함의 결여와 편애였다. 딸이 중국인 남성과 교제한다는 소문을 듣고 광적으로 매질했던 것과 달리, 큰아들의 폭력과 방탕에는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실제로 “어머니는 큰아들에 대해 불평을 해 본 적이 없다”(95). 오히려 아편과 도박 빚을 대신 갚아 주고, 땅까지 마련해 주었다. 어머니는 큰아들이 마음만 먹으면 세 아이 중 가장 총명하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이러한 애정이 한 아이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뒤라스가 작은오빠의 죽음에 대해 어머니와 큰오빠의 책임을 언급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 편애가 자리한다.
작가가 작은오빠의 죽음을 유독 애통해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과 달리 가족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큰오빠의 폭력과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소모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 역시 작은오빠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십 년 동안 단 한 통의 편지만 받았다는 회고는 이러한 죄책감을 드러낸다. 그는 총과 자동차의 모든 상표를 동생에게 가르쳐 주던 다정한 인물이었으며, 프랑스로 향하는 배 안에서 잠시 한 여인을 사랑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에 대해 “질투심에 가득 찼다”(134). 그러나 그는 결국 가족에게 돌아왔고, 1932년 뒤라스만 프랑스에 남은 채 가족이 베트남으로 돌아간 이후, 1942년에 사망한다. 폴로는 편지에서 아파트와 자동차를 소유하고 모두 잘 지내고 있다며, 여동생을 “무척 사랑하고 있으며 … 키스를 보낸다”(71)고 썼다. 이 편지는 물리적 거리와 정서적 단절이 교차하는 관계의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가만히 보면 뒤라스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가족을 사랑했다. 작은오빠를 “따라 죽고 싶을 만큼”(125)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은, 이 소설이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 애도의 글쓰기임을 시사한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큰오빠와 어머니가 유지해 온 침묵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렇게 증오했던 큰오빠와도 “얼굴이 서로 닮았다”(68)고 말하며 복잡한 동일시를 드러낸다. 도박으로 돈을 잃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을 때 “큰오빠가 나를 올렸”(39) 다는 회상은 그 관계가 단선적인 증오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결국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큰오빠는 어머니 곁에 묻힌다.
이 가족 서사에서 가장 큰 정서적 부담을 떠안은 인물은 역설적으로 뒤라스 자신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실패와 좌절을 목격하며 도와주고 싶어 했고, 어머니가 폭력적으로 딸을 통제하면서도 동시에 딸이 “창녀 같은 옷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을 허락”(33)했던 모순 역시 받아들여야 했다. 그 결과 그녀는 가족이 프랑스로 돌아갈 여비로 오백 피아스트르를 중국인 연인에게서 받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고, 중국인 연인을 욕망하면서도 부끄러워했다. 상반된 감정들이 공존하는 이러한 내적 분열이야말로, 그녀가 “열여덟 살에 이미 늙었다”라고 말하게 되는 정서적 조건이었을 것이다.
결국 『연인』은 한 여성의 초기 성 경험을 다룬 작품이라기보다, 식민지 현실과 가족 내부의 불균형한 권력 구조 속에서 형성된 한 주체의 정서적 기원을 추적하는 서사에 가깝다. 뒤라스에게 글쓰기는 과거를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견딜 수 없었던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감당 가능한 이야기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증오, 큰오빠에 대한 공포와 동일시, 작은오빠에 대한 애도와 죄책감, 그리고 중국인 연인에 대한 욕망과 수치심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분리되지 않은 채 그녀의 내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의 공존이 바로 그녀가 말하는 ‘조기 노화’의 정서적 실체일 것이다.
따라서 『연인』의 비선형적 서술과 파편화된 기억은 단순한 미학적 기법이 아니라, 상처 입은 기억이 스스로를 서사로 조직해 가는 방식의 형식적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은밀한 역사를 폭로하는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말해질 수 없었던 감정들을 언어 속에 붙잡아 두려는 애도의 기록이다. 결국 뒤라스의 글쓰기는 사랑과 증오가 분리되지 않는 자리, 기억과 해석이 뒤엉킨 자리에서 비로소 가능해진 자기 이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마르그리트 뒤라스, 김인환 역,『연인』2012, 민음사. (원서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