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The Crucible)』이 던지는 도덕적 질문
국민학생 시절, 반공 교육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 공산주의 사회의 규칙 중 가장 두렵게 인식되었던 내용은 이웃이 나의 반동적 행동을 고발하면 강제 수용소로 보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끊임없이 이웃의 감시를 받는 환경에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친한 친구와 그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우리는 우선 법규를 철저히 지키고 이웃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모두 공모해 거짓으로 누명을 씌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럴 경우 친구를 감싸다 함께 처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사고가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인간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독립을 성취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옳다고 믿는 일을 시도했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처한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살아남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 역시 예외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만약 그 거짓말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거짓말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면, 과연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자신의 원칙을 어겨서 정체성에 위협을 느낀다면 과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아서 밀러의 『시련(The Crucible)』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극적으로 형상화했다. 주요 인물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거짓을 선택해야 한다. 레베카 너스나 존 프록터처럼 거짓 자백을 거부한 사람들은 처형당한다. 반면 애비게일과 그녀를 따르던 소녀들은 거짓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푸트남이나 댄포스처럼 진실을 외면한 권력자들 역시 벌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정의인가? 이러한 결말은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동시에 한 집단이 공포에 사로잡힐 때 얼마나 쉽게 사회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마녀사냥의 발단은 한 소녀의 거짓말과 어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패리스 목사는 마을 숲에서 딸과 조카를 비롯한 소녀들, 하녀 티튜바가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한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놀란 베티가 기절해 깨어나지 않자, 패리스는 조카 애비게일과 티튜바를 추궁한다. 처음에 애비게일은 그냥 춤을 추며 놀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다가 궁지에 몰리자, 티튜바가 마법을 부렸다고 거짓말한다. 티튜바 역시 마법을 고백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자, 마을 사람들이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거짓 증언을 한다.
소녀들의 ‘숲 속에서의’ 일탈 행동은 청교도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초기 이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강한 공동체 규율과 종교적 절제를 유지하며 오락과 개인적 욕망은 억제했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안정되면서 예배를 보지 않거나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을 법원에 고발해 벌을 주는 것 같은 강압적 규율은 구성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거다. 특히 소녀들은 그런 억압을 더욱 크게 체감하며 몰래 잡담도 하고 춤도 추고 싶었을 거다.
애비게일은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자신이 특별한 힘 덕분에 생존했다는 식의 서사를 구축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티튜바가 들려주는 이국적인 바베이도스의 이야기는 춤과 노래라는 유혹적인 형식을 빌려 소녀들의 억눌린 욕망을 자극했을 거다. 그 결과 메르시는 나체로 춤을 추고, 베티는 죽은 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며 울부짖었으며, 애비게일은 존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죽이는 주술을 완성하기 위해, 짐승의 피까지 마시게 된다.
그러나 패리스 목사는 딸의 위태로운 내면을 살피기보다 이를 ‘악령에 들린 상태’로 단정 지으며 사태를 왜곡한다. 이러한 해석은 밀러가 극 중 해설적 지문에서 언급한 유럽의 젊은 여성들의 ‘밤의 일탈’ 사건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교회는 젊은 여성들의 일탈을 성적 타락, 죄, 그리고 악마와 연결 지어 해석하곤 했다. 이런 사고방식 속에서 패리스 역시 '춤 파티'에 참여한 베티가 마녀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게 되고, 조카와 하녀의 거짓말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애비게일과 무리들은 자신들의 거짓이 법정에서 수용되자, 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대담하고 광기 어린 집단 히스테리를 연기하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마녀로 몰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존에게 있다. 그가 애비게일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애비게일이 그처럼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거다. 뒤늦게 존은 메리 워렌을 내세워 애비게일의 기만을 폭로하려 하지만, 애비게일과 소녀들이 마치 메리의 마법에 걸린 듯 일제히 발작하는 연기를 하자 메리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진실을 저버린다. 다급해진 존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 애비게일과의 간통 사실을 자백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그의 외도를 부정한다. 안타깝게도 이 하얀 거짓말은 존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게다가 애비게일에게로 돌아선 메리는 존을 “악마의 하수인”(104)이라는 거짓말까지 한다.
셀럼 법정의 댄포스 판사는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유죄를 전제로 한다. 증거를 요구하는 대신 고발 자체를 증거로 간주한다. 그는 마녀사냥을 “보이지 않는 범죄”(90)라고 주장하며, 유일한 증인은 “마녀와 희생자”뿐이기 때문에 법정은 고발자의 증언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논리는 정의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뒤집는 거다. “누가 목격자일 수 있겠는가?” “변호사가 밝혀낼 것이 무엇이 남았겠는가?”(90)와 같은 그의 수사적 질문은 피고인을 변호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밀러는 이 장면을 통해 권력자들이 공포를 이용해 불공정한 제도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법정이 소녀들의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은 1950년대 매카시즘(McCarthyism)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만으로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피고발자는 직장을 잃거나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댄포스의 논리는 사회가 이성과 적법 절차보다 이념과 공포를 앞세울 때 정의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런 사회에선 레베카 너스처럼 현명하고 인자한 신앙인도 마녀가 될 수 있다. 루스 푸트남이 레베카를 마녀로 지목한 건 특별히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그녀의 아버지는 레베카의 남편과 토지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두 가문은 모두 지역의 유력 가문이었으나, 원래 푸트남의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던 너스가 번창하여 토지를 확장하자 시기와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러한 이해관계는 집단적 광기와 결합해 무고한 인물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레베카와 존이 마녀라고 자백했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거부한다. 레베카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존은 잠시 흔들리지만 자녀를 떠올리며 진실 편에 선다. 그는 “제게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 어떻게 친구를 팔아넘기고 그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124)라고 반문하며 “내 이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라고 절규한다. 이는 ‘이름’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양심과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내 영혼은 너희에게 주었으니, 내 이름만은 남겨다오!”(124)라는 외침에선 생존보다 인간적 존엄을 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작품은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넘어,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도덕성과 정의가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조명한다. 인물들은 생존과 양심 사이에서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으며,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윤리적 기반은 무너져 내린다. 이는 권력이 독점된 체제가 지닌 위험성을 시사한다.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희생이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는 이견을 내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며, 개인은 생존을 위해 침묵하거나 끊임없이 타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거짓을 고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존 프록터의 선택은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일지라도 개인의 양심이 최후까지 수호해야 할 고귀한 보루임을 일깨워 준다.
<참고문헌>
Miller, A. (2000). The Crucible. Penguin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