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갑자기 큰돈이 생긴다면?

<태양 속에 건포도>가 불러일으킨 생각

by 명희

침실 두 개 밖에 없는 좁은 집에 5명이 산다. 화장실은 옆집과 공유한다. 어머니와 며느리는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아들은 개인 운전기사고, 딸은 대학에 다니고, 손자는 10살이다. 엄마는 꽃을 키울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아들은 술 판매 사업을 꿈꾼다. 며느리는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길 꿈꾼다. 딸은 의사가 되길 꿈꾼다. 손자는 버스 기사가 되길 꿈꾼다. 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는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이 도착한다. 평생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버지 보험금은 온전히 어머니 거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당장 집부터 산다. 그리고 나머지 돈을 아들과 딸에게 나눠준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너무 현실감이 없다. 그렇지 않나? 우리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늘 무언가 사건이 일어난다. 특히 뜻하지 않은 큰돈이 들어오면 그런 것 같다. 미국에 이민 간 어떤 한국 사람이 1993년에 로토에 당첨되어서 100만 달러 짜리 집을 산 뒤에 매년 62만 달러 (한화로 약 7억 4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마음을 바꿔 한꺼번에 큰돈을 받고 현재 60세에 파산 신청하고 빚이 250만 달러 란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로토에 당첨된 많은 사람이 불행한 결말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가족이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걸 넘어서 빨리 상속받기 위해 청부살인까지 시도했고 실제로 살해를 당한 사람도 있다. 게다가 로토에 당첨되기 전에 사업에 성공해서 이미 백만장자였던 사람조차 로토에 당첨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하니 갑자기 생긴 어마어마한 돈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라면 안 그럴 거야. 일단 집이나 빌딩을 사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어놓고. 아 물론 기부도 해야겠지."

그렇다. 우리는 모두 큰돈이 생긴 일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성적으로 상상할 거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생긴다면 누구도 위에 언급한 사람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나도 한때 로토에 당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로토를 몇 번 사본 적이 있다. 한 번은 로토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계속 당첨금이 높아졌을 때 동네 편의점마다 로토를 사려는 사람이 길게 줄을 섰었다. 그때 나도 동참했다. 그리고 한 번은 잡지를 구독하면 상당한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선전을 보고 잡지를 구독했었다. 당시 티브이만 틀면 잘 알려진 쇼 진행자가 구독자 집에 깜짝 방문하여 상당한 액수의 수표를 전해주는 선전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 근거도 없이 나도 그게 꼭 당첨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당첨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집을 사려고 모으고 있던 돈으로 남편과 9개월 된 딸을 데리고 호화 여객선을 탔다.


32년 전. 여객선에는 동양 사람이 우리 밖에 없었고 우리 딸이 가장 어려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우리 객실을 담당하던 분이 40대 후반의 한국 남자 승무원이었는데 우리에게 잘해주셨다.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한국인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만나서 반갑다고 했다. 또한 우리가 미국에서 전문직을 갖고 일한다는 걸 알고 자랑스러워했으며 저녁에는 무도회도 갔다 오라며 아기를 봐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6박 7일 여행에서 돌아오니 구독하기로 한 잡지와 함께 청구서만 날아오고 당첨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 후 몇 달 동안 외식은 하지 않고 집에서 된장국만 끓여 먹었다. 그러나 그때 그런 엉뚱한 믿음이 없었다면 아끼고 저축하는 게 소비하는 것보다 더 신났던 내가 호화 여객선 여행은 절대로 못했을 거다.


돈이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일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도대체 얼마나 돈이 있어야 만족할까? 조금만 더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조금 더 있어보니 갖고 있는 걸 더 늘리고 싶어졌다.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가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아니 좀 더 있어야 한다. 꼬마 빌딩이라도 하나 사고 아이들에게도 이것저것 해주고. 이렇게 돈이 내 마음을 끌고 간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갖고 있는 걸 즐기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게 된다. 그래서 2014년부터 여름 방학 겨울 방학에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해 여행을 다녔다. 그것도 2019년을 마지막으로 못하게 되니 그때라도 돌아다닌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 로토가 사고 싶을 때마다 이모 말을 떠올린다.

"명희야. 우리처럼 가족이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은 로토에 욕심을 내면 안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로토에 당첨되면 가족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중요하다. 특히 부모에게 자식은 그렇다. 그래서 이 글 첫 단락에 나온 이야기 속 어머니도 아버지 보험금으로 집을 사고 남은 돈을 아들과 딸에게 나눠준다. 그런데 아들은 동생 돈까지 모두 사기당한다. 동생은 너무 화가 나서 "넌 오빠도 아냐"라고 하자 어머니는 "오빠를 위해 울어줬니? 우리 가족이 돈을 잃어서가 아니라 오빠가 겪은 일 그것이 오빠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슬퍼했니? 사람을 가장 사랑해줘야 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니? 세상에서 채찍질받고 바닥을 쳤을 때 자기조차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사랑을 해줘야 한단다." 그리고 잃어버린 돈은 방황하던 아들이 중심을 잡게 된 대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런 표면적인 가족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흑인이란 이유로 백인 동네에서 쫓겨난 흑인 작가가 백인에게 저항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보라, 이 가족을. 이 사람들이 피부색이 다른 것 빼고 너희와 다를 게 뭐가 있나? 모두 꿈을 갖고 열심히 살려는 사람이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가족은 정직하게 일하고 다투면서도 용서하고 화해할 줄 알고 나이지리아에 가서 의료 봉사도 생각하는 원대한 꿈도 있다. 이런 사람이 왜 백인에게 차별받아야 하는가?


극작가 로레인 핸스베리(Lorraine Hansberry)는 29살이 되던 1959년에 "태양 속에 건포도(Raisin in the Sun)"를 브로드웨이에 올리고 일약 스타가 된다. 당시 인종차별 상황을 고려하면 흑인 여성이 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조명을 받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 속에 담긴 부드러운 저항이 백인 지식층에게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 사실 핸스베리는 부동산 사업을 한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러나 그녀가 8살 때 아버지가 백인만 살 수 있는 동네에 집을 사서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타툼이 있었다. 결국 로레인이 16살 때 아버지는 인종차별에 염증을 느끼고 멕시코에 살려고 갔다가 사망한다. 그 기억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민권 운동도 활발하게 한다. 그러다 34세에 최장암으로 사망한다. 유튜브에서 그녀가 생전 인터뷰했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인간에게 있는 최고의 재능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를 감히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최고의 인격을 통해 기쁨과 아름다움과 계몽과 교감이 이뤄집니다. 제가 원하는 건 세상에 좀 더 다가가서 우리가 함께 서로를 이해하는 계몽을 공유할 수 있는지 보는 겁니다." 그녀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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