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옹알이

떠오른 추억

by 명희

WJ가 옹알이를 하는 걸 보니까 내가 미국 마켓에 갔을 때 생각나더라. 모두 영어를 빨리 말하는데 나만 못하는 게 답답해서 어느 날 점원에게 한국 어순대로 영어 단어를 이어서 빨리 말했더니 점원이 당황해서 나를 쳐다보더라고. 아마 WJ도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걸 흉내 내고 싶어서 저렇게 입술을 움직여서 옹알옹알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남편이 처음 미국 갔을 때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걸 처음 들었다. 생각해보니 미국에 있을 때 남편과 나가면 늘 말하는 역할은 내 몫이었다. 장을 볼 때도 음식점에서도 이웃과 이야기를 해야 할 때에도 심지어 남편 학회에 쫓아가서도 남편은 한쪽에 앉아 다과를 들고 나는 거기 온 사람과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이 한국말도 잘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라 영어도 잘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영어를 빨리 하지 못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상에서 남편이 영어 할 기회를 더 주지 않은 게 후회되고 미안하다.


여보 저번에 닥터 민즈 왔을 때 영어 잘하던데. 역시 매일 교육 방송 보는 게 효과가 있네.

그래?

응 또박또박 잘했어요. 처음 미국에서 레지던트 인터뷰 생각나요? 당신이 질문을 이해 못 하면 준비한 답을 다 말하라고 미리 연습했잖아요.

그땐 정말 안 들리더라고.

정말 당신 대단해.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닌데 영어 때문에 마음 상하는 상황이 많았겠지. 그래도 한 번도 내색 안 하고. 항상 한 시간 이상 일찍 출근하고… 당신 성실함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감동받았겠지.

당신 덕분에 나도 영어 교육 방송 듣고 우리 학생에게도 보게 했잖아요. 당신을 보면 외국어는 조금이라도 매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확실해.

WJ 엄마가 4살 때 처음 어린이집에 갔을 때 생각나요? 명성 있는 곳이어서 새벽에 가야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해서 6시도 안 돼서 갔는데 벌써 부모들이 줄을 서 있었지. 그때 미국 사람도 교육열이 있다는 걸 처음 느꼈는데. 어떤 사람은 아빠가 서 있다가 출근 시간이 되었는지 엄마와 교대하고. 그렇게 2시간 이상 기다려서 원장과 인터뷰하고 자리를 확보하고 마치 대학에 합격했던 것처럼 좋았는데…그리고 당신 <아빠 날>에 참석하려고 처음으로 병원에 반차 냈잖아요. 기억나요?

기억하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DH만 못 알아듣고 혼자 오르 쪽으로 가서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런데 지금 아기 엄마가 되었으니 시간이 참 빨리 지난 것 같아요.


이렇게 손자 덕분에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을 일이 많아졌다. 요새 우리 부부에겐 손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손자가 새로운 행동을 할 때마다 마치 우리 손자만 뒤집고 옹알이를 하고 배밀이를 한 것 마냥 뿌듯하다. 손자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가 이렇게 손자의 찐 팬이 될 줄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일주일에 한두 번 안부를 물었는데 백일이 지나고 옹알이를 시작하며 손자가 말을 시작한 것 같아 매일 목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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