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나름이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생각한다. 어제 청소를 했건만 청소기를 돌리니 또 먼지가 나온다. 샤워를 하고 나서 타일 바닥을 솔질한다. 내일 샤워를 하면 또 닦아야 할 거다. 매일 반복하는 일은 가사 일만이 아니다. 먹고 씻고 화장실 가고 직장에 가고... 산다는 게 별 의미도 없는 일의 반복이다. 도대체 인간은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 살짝 부조리 주의적인 생각을 해본다. 카뮈가 뭐라고 했더라? 우주의 일부인 인간은 질서와 명료함을 만들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강한 욕망을 가진 합리적인 존재지만 우주는무관심하고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물어도 대답이 없다. 이게 부조리다. 다시 말해서 우주는 인간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착한 사람도 어이없이 죽을 수 있고 나쁜 짓을 한 사람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인간은 이런 부조리에 맞닥뜨리면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죽든지 믿든지 받아들인다.
절대적 가치가 없는 세상은 절망적이다. 그래서 자살을 하기도 하고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카뮈는 자살은 부조리에 항복하는 거고 종교에 의지하는 건 스스로 의미 찾기를 포기한 철학적 자살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조리는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있는 게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은 부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의미를 찾아 열심히 사는 거다. 뭐 이런 거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푸스처럼 다시 내려올 바위를 계속 산 위로 올리는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에 무슨 좋은 결과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현재 그 일을 하는 동안 거기에 온전히 몰두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거다. 시시푸스가 매번 바위를 올리며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올릴 수 있을까 아니면 덜 힘들게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실천하는 걸 상상해 보라. 아무리 올려놔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줄 알면서도 여전히 열심히 올리며 보람을 느낀다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다. 이런 태도가 부조리에 반항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일 거다.
주말이면 영화만 보던 때가 있었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듯한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눈만 껌뻑이며 티브이를 응시했다. 특별히 관심 있는 영화도 없어서 채널만 돌렸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우주선에 사람들이 갇혀 있었고 그들은 지구로 돌아올 수 없었다. 우주선에 산소가 떨어질 때까지 살 수 있지만 얼마나 남았는지 확실히 모른다. 지구에서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남은 시간 좋아하는 걸 하라"고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목도 모르고 전체 이야기도 모르는 그 영화가 20년이 넘게 기억나는 건 영화를 보며 문득 내 시간도 한정되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맞게 될 죽음. 그때까지 어떻게 살 건가?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철학적 사고를 하든지, 종교를 믿든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는 게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에 나온 인상 좋은 중년의 여인이 그랬다. 그녀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흰 봉투를 접어서 한 묶음을 만들었다. 누런 봉투에 양면테이프도 일정한 길이로 리드미컬하게 잘라서 붙였다. 어떻게 자르나 했더니 면도칼을 쥐고 있었다. 손을 펴서 보여주기 전까지 면도칼이 있는지 몰랐다. 얼마나 오래 하면 손이 기계가 되었을까? 자그마치 50년. 처음에는 하기 싫어서 대충 했단다. 그런데 늦게 얻은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아져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100장에 700원. 그런데 월수입이 300만 원이라니 도대체 몇 장을 붙인단 말인가? 활짝 웃으며 재빠르게 봉투를 붙이는 그녀가 행복해 보였다.
사람은 저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한다. 홈쇼핑을 진행하는 사람은 물건 파는 일에 혼신을 다한다. 음식을 반복해서 시식하고, 머리 염색을 직접 시범하고, 얼굴이 번들거릴 때까지 크림을 바른다. 기자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멀리서 총성이 들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방탄복을 입은 프랑스 여기자가 뉴스를 전한다.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은 모두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노래 부르고, 집을 가꾸고, 아기 키우고, 요리하고...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 사는 것에 너무 관심이 많으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다.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내게 주어진 시간에 내가 정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면 더 의미가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집안 청소도 의미 있는 일이다. 가족 모두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