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엄마

올리나 이야기

by 명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폭격을 받고 전쟁에 돌입한 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처음에는 걱정도 되고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하루빨리 러시아가 물러나길 기도했는데 전쟁이 길어지고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나라이다 보니 어느새 잊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CNN 방송에서 한 엄마의 비디오 일기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한국도 우크라이나를 돕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전쟁이 커지는 것도 두렵다.


올리나 기네스 (Olena Gnes)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관광 가이드였고 유튜브에 정기적으로 가족과 우크라이나에 대해 올렸다. 그래서 그녀의 유튜브 영상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2일 전 키이브(Kyiv)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리나는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막내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전쟁이 나면 지하실로 들어가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방공호가 어떻게 생겼어?

책상이 많고 먼지가 쌓여고 쓰레기가 있었어요. 방 한 개만 보여줬는데 긴 통로가 있었어요.

구급 통도 있고 물도 있고 음식도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왜 거기에 가야 한다고 했어?

몰라요. 밖이 위험하면 거기 들어간다고 했어요. 누가 핵폭탄 같은 걸 쏘면 거기 가는 거겠죠.


올리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갔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단다. 아직 두툼한 겨울 패딩을 입고 있지만 모자는 벗었다며 빡빡 짧게 자른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테니스를 치는 사람도 있고 축구를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저녁이 되자 고층 아파트 곳곳에 불이 켜졌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모두 피난 간 지 않고 평소처럼 지낸단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은 아마도 퇴근을 하지 않았을 거란다. 아파트 앞 야외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도 보여준다. 방송국 뉴스 보도부에서 일하는 올리나의 남편도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슈퍼마켓에 가서 빵 한 봉지를 산다. 이마트 식품부 같다. 자동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핸드폰으로 결제한다. 올리나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소련 시대에 지어졌단다. 출입구엔 그라피티가 즐비하다. 자동키로 두꺼운 철문을 연다.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5살 아들이 문을 잡아준다. 낡은 층계를 한 층 올라가 유모차를 겨우 넣고 나머지 가족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탈 때마다 멈추지 않길 기도한단다. 아파트 공동 공간은 낡고 페인트칠도 여기저기 벗겨졌지만 집안은 깨끗하고 밝다. 한 30평도 안 되는 것 같았지만 키이브에서는 넓은 아파트에 속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부츠를 벗고 외투도 옷걸이에 걸었다. 올리나는 좁은 현관에 놓인 유모차를 곧바로 접어서 베란다에 내어놓고 대걸레로 현관을 닦았다.


현관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고 좁은 부엌엔 냉장고 앞에 식탁이 있었다. 부엌 옆에 있는 통로를 지나 거실이 나왔다. 빨간 소파 옆에는 피아노가 있고 맞은편에는 인형 집이 있었고 그 옆에는 나무로 만든 정글짐이 보였다. 거실 창문 앞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래 건조대에 빨래가 빽빽이 널려 있다. 추운 나라일 텐데 거실 온도는 19도다. 특이한 건 거실 중앙에 천정에서 내려오는 요가 해먹이 있다는 거다. 티브이는 없었다. 아이 셋에다 고양이까지 한 마리 있어서 거실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 방문을 열자 양쪽에 침대가 하나씩 보였고 그 앞에 각자의 옷장과 책상이 각각 놓여 있다. 남매가 함께 쓰는 방인데 3개월짜리도 크면 그 방을 공유할 거라고 했다. 안방은 퀸사이즈 침대 옆에 아기 침대가 있고 작은 옷장이 있었다. 방 앞에 있는 베란다에는 각종 플라스틱 병이 종류별로 깨끗하게 분리가 되었고 병뚜껑도 따로 분리해서 모여져 있었다. 일정 기간에 재활용 센터에서 가져간다고 했다. 장면이 바뀌어 올리나의 딸이 하늘색 공주옷을 입고 머리에 파란색과 노란색 장미가 번갈아가며 꽂혀있는 헤어밴드를 하고 있다. 창문에는 하늘색과 노란색 색종이를 붙인다. 우크라이나 국기다.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 딸의 선생님이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했단다. 아들은 카 레이싱을 보러 가고 싶다고 했고, 딸은 비밀이라고 했고, 올리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라고 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올린 몇 개의 동영상을 보니 올리나와 아이들은 방공호에서 지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떠났고 자신도 아이들 안전이 걱정되지만 자기마저 떠나면 우크라이나를 누가 지키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키이브에 남아 계속 비디오를 올릴 거라고 했다. 군사훈련을 받아보지 않는 남편도 자원입대하여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잠깐 가족에게 들렸을 때 마침 막내딸의 첫 이유식을 아빠가 먹이고 있었다. 그것이 이 가족의 전통이란다. 아빠가 다시 부대로 돌아간다. 올리나가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킨다. 아이들은 아빠가 죽을 거라며 운다.


지금 우크라이나에는 얼마나 많은 올리나가 있을까? 올리나가 그랬다. 전쟁이 일어나도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이제는 총을 주면 러시아 군인을 죽일 수 있다고 했다. 전쟁은 이런 거다. 가족을 해체하고 아이들의 꿈을 빼앗고 사람을 죽인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올리나는 부르짖는다. "약속한 무기를 보내주세요. 전쟁을 끝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러시아를 이겨야 해요. 그래야 러시아가 앞으로 절대로 우리를 넘보지 않을 거예요. 그 후손들도 앞으로 우리를 절대로 공격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하고 싶어요." 올리나의 막내딸이 그동안 많이 컸다. 언니 오빠의 장난감을 만지작 거린다.


눈을 감고 기도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물러나길. 그래서 올리나 가족 또 그와 같은 가족이 모두 전처럼 평화롭게 살길. 기적처럼 이 전쟁이 빨리 종식되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멋진 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