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커리지와 그녀의 아이들

by 명희
이 글은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39년에 쓴 "마더 커리지와 그녀의 아이들(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이란 극을 바탕으로 쓴 글이어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거나 요약한 경우 글로브 프레스(Grove Press)에서 영어로 번역 출판한 책을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국어로는 둘 다 용기로 번역될 수 있는 커리지(courage)와 브래이버리(bravery)는 무엇이 다를까? 구글에 찾아보니 커리지는 어떤 일이 위험하거나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실행하는 거고 브래이버리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보고 생각하지 않고 즉시 용감하게 반응하는 거란다. 이 두 단어를 비교한 이유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쓴 "마더 커리지와 그녀의 아이들"이란 극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때는 1624년 유럽에서 30년 전쟁이 일어난 지 6년. 마더 커리지는 아버지가 모두 다른 2남 1녀를 데리고 이동 만물상을 운영한다. 엄마의 진짜 이름은 애나(Anna). 그러나 커리지라고 불리게 된 건 다 먹고살기 위해 폭격이 쏟아지는 리가(Riga)로 질주해서 얻게 된 별명이다. 빵 50덩어리가 곰팡이가 나기 전에 팔아야 했다. 전쟁이 나면 보통 사람은 그냥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 더구나 남편도 없이 세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엄마는 가족이 모두 목숨을 부지하는 게 인생의 목적이다. 그러려면 군대를 쫓아다니며 장사를 해야 했다. 그러려면 아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아야 하고 딸은 친절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1장부터 첫째 아들 에이리프(Eilif)가 징집된다. 엄마는 에이리프가 자기 아버지처럼 너무 브래이브(brave)하다고 한다.

"(징병관에게) 난 불행한 엄마예요. 슬픔만 풍성하죠. 그는 죽어요. 인생의 봄날에 그는 가야 해요. 그가 군인이 되면 전사해요. 틀림없어요.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너무 브래이브 해요. 그가 머리를 쓰지 않으면 다른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갈 거예요. 이 종이가 증거예요. (에이리프에게) 머리를 쓸래?"

"물론이죠."

"엄마에게 남아있는 게 머리를 쓰는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겁쟁이라고 놀리면 그냥 웃어."그러나 아들은 엄마가 벨트를 파는 동안 징집병과 함께 떠난다.


이상하다. 전쟁이 나면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엄마는 아이들을 보내고 싶지 않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이 서로 하느님의 뜻을 이룬다고 어머어마한 수의 사람을 희생시킨 전쟁 아닌가? 독일인은 무려 인구의 절반이 줄었단다. 마더 커리지는 프로테스탄트다. 그러나 살기 위해 마차에 가톨릭 깃발을 꽂기도 한다. 애매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종교를 위해 순교하는 게 숭고한 정신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하면 가장 많은 희생은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운 없게 그 나라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가 왕이 되든 그냥 그렇게 산다.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은 누가 정치를 하든 상관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나라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에겐 문제가 된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싸우게 하려면 보상을 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나라 때문에 먹고살게 되면 애국심도 절로 생길 거다. 무엇보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마더 커리지는 전쟁 덕분에 먹고사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 일을 열심히 한다. 그래서 그녀는 목적을 달성했을까?


정직한 성품을 가졌던 둘째 아들 스위스 치즈(Swiss Cheese). 형만큼 영리하지 못해서 정직하라고 가르쳤다. 덕분에 군대에서 군자금을 책임졌으나 소속된 군대가 전투에 지고 후퇴하면서 스위스 치즈는 군자금을 갖고 엄마에게 왔다. 엄마는 아들 때문에 모두가 죽게 되었다고 걱정한다. 스위스 치즈가 먹튀를 했다고 오해한 상사가 온다. 스위스 치즈는 겁이 나서 돈 상자를 강물에 버린다. 스위스 치즈도 엄마도 서로가 모르는 사람인척 한다. 엄마는 아들을 구하려고 이베트(Yvette)를 통해 외눈 병사와 몸값을 흥정한다. 그러나 전재산을 줄 경우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조금 깎아보려다 결국 아들은 11발이나 맞고 총살당한다. 막판에는 요구하는 돈을 다 주려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안타깝다. 빨리 돈을 다 준다고 하지. 그러나 마더 커리지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돈이 없다는 게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더구나 아들을 가슴에 묻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너무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장사를 계속하고 불행도 계속된다.


1631년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마을인 마그데부르크(Magdeburg)는 틸리(Tilly) 백작이 이끄는 가톨릭 군대가 마을을 방화하고 약탈하여 1900개 건물 중 1700개가 전소하고 2만 5천 명이 살던 마을에 겨우 5천 명만 생존했다. 이 극의 5장은 바로 이 마그데부르크에서 시작한다. 엄마와 딸은 두 명의 군인에게 술을 판다. 그러나 군인은 상사가 약탈할 시간을 한 시간밖에 주지 않아 돈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군인이 입고 있던 여자 모피 코트를 낚아챈다. 그런데 목사가 부상한 농부들을 위해 붕대가 필요하다고 하자 엄마는 없다고 한다. 세금도 내고 뇌물도 줘야 해서 부상자에게 나눠줄 물건이 없다고 했다. 목사는 엄마 마차에서 셔츠를 찾아 찢는다. 농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딸 캐트린(Kattrin)이 아기를 구한다. 캐트린은 언어 장애인이다. 전에 군인이 입에 무언가를 넣어서 말을 못 하게 됐다. 딸은 엄마가 부상자를 도와주지 않는 게 못마땅하다. 엄마는 아기에게 집착하는 딸을 보며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돌려주라고 말한다. 그런데 6장에서 딸은 엄마 심부름으로 마을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습격당하고 물건을 지키려다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남는다. 틸리 백작의 장례식이 치러지자 목사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딸이 상처를 입을 게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전쟁을 이끈 장군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만 마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은 가족 이외에 기억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 마더 커리지도 딸의 흉터만 기억할 거다. 흉터 때문에 결혼도 못할 거고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도 가질 수 없다. 스위스 치즈도 죽었고, 에이리프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엄마는 처음으로 전쟁을 저주한다.


그리고 일 년이 조금 넘어서 잠시 평화가 선언된다. 개신교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스웨덴의 왕 구스타브 아돌푸스(Gustavus Adophus)가 뤼첸 전투에서 이겼지만 사망했기 때문이다. 마더 커리지는 물건을 잔뜩 샀는데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불평한다. 그리고 물건을 팔러 마을로 간다. 그 사이 에이리프가 찾아온다. 그는 소를 훔치고 농부의 아내를 죽게 만들어 체포됐다. 전쟁 중에는 칭찬받았던 일이 평화시기에 범죄가 됐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러 온 건데... 목사가 에이리프를 따라가며 요리사에게 이 사실을 엄마에게 나중에 알리자고 한다. 대포 소리가 난다. 엄마가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돌아온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어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한다. 요리사는 에이리프가 왔다 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쁜 소식은 전하지 않는다. 엄마는 에이리프가 똑똑하기 때문에 살아남을 거라고 한다. 엄마의 만물상도 곧 군대와 합류하니 날이 저물기 전에 아들을 만날 거라고 한다. 에이리프가 처형당한 걸 모르는 게 좋은 걸까?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더구나 엄마에겐 곧 또 다른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


1636년 1월 마더 커리지의 마차는 할레(Halle)라는 도시 외곽 농가 근처에 정착해 있다. 엄마는 도시에 싸게 나온 물건을 사러 갔다. 숲에서 가톨릭 중위와 3명의 군인이 나타나 농부들을 인질로 잡는다. 누구든 소리를 내는 사람은 죽이라고 명령한다. 도시로 가는 길을 묻는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소를 죽인다고 하자 협조한다. 가톨릭 군대는 벌써 경비원을 죽이고 도시를 기습 공격하려 한다. 농부는 도시를 구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만 한다. 그러나 농부의 손주들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캐트린은 지붕에 올라가 북을 치기 시작한다. 농부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거라며 위협하고, 군인들은 모두 쏘아버릴 거라고 위협한다. 마차를 타격하자 잠시 북을 멈춘다. 그러나 마차를 타격했던 젊은 농부가 캐트린을 응원하자 북을 다시 두드린다. 병사가 울고 있는 캐트린을 쏜다. 마지막 북소리는 도시로부터 울리는 대포 소리와 뒤섞인다. 멀리서 경보음이 들린다. 그녀가 도시를 구했다. 아침에 엄마는 딸의 시체 옆에 앉아 있다. 딸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담요를 덮어준다. 농부들이 딸을 묻어주겠다고 하자 돈을 준다. 그리고 에이리프를 만나러 갈 거라고 한다. 마더 커리지는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며 연대를 따라간다.


마더 커리지는 비정한 엄마인가? 세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흥정을 하거나 물건을 사러 갔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도 할 말이 있다. 특히 언어 장애를 가진 막내딸을 위해 요리사의 청혼을 거절했었다. 1634년 겨울 모두가 굶주려서 장사 대신 동냥을 해야 할 처지였을 때 요리사는 유산으로 받은 주막을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캐트린은 함께 갈 수 없다고 한다. 엄마는 마차에서 요리사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딸과 함께 마차를 끌고 간다. 그녀는 인정 많은 엄마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책임 있는 엄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녀는 커리지라는 별명과 달리 살아남기 위해서 비겁했다. 4장에서 "가장 위대한 항복" (The Song of the Great Capitulation)이란 노래를 부르며 부당한 대우로 억울해하는 병사에게 권력에 맞서기보다 복종하라고 가르치며 자신도 불만을 철회한다. 또, 스위스 치즈와 엮이면 죽게 될까 봐 죽은 아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거기에 비해 이 극에서 가장 커리지가 있던 사람은 캐트린이다. 그녀는 또한 브래이브 하기도 하다. 부상자를 보살피고, 불이난 집에서 아기를 구하고, 북을 쳐서 도시에 있는 아이들을 구했다. 캐트린의 희생이 많은 사람을 살렸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살아남은 엄마가 가엾고 아이들의 죽음이 그녀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아이들의 죽음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그건 바로 전쟁을 일으킨 사람일 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범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