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게 뭘까?

by 명희

“어느 날 악마가 당신의 가장 외로운 외로움 안에 몰래 와서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지금 이 삶을 살고 또 살아왔으니 한 번 더, 아니 무수히 많이 똑같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엎드려 이를 갈며 이처럼 말한 마귀를 저주하지 않겠는가?”


니체(Nietzsche)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그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수없이 반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 자신의 가치를 형성하지 않았고 여전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노예, 자신의 노예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니체는 복잡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불행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24세에 바젤 대학에서 고전 문헌학 석좌교수가 될 만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Lou Salomé 에게 세 번이나 구혼을 거절당하고 성병에 걸려 오래 앓다가 45세에 쓰러져 몸은 마비되고 정신은 온전치 못한 상태로 10년 이상 지내다 사망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반복해서 살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는 서구 합리주의 전통에 대한 비판을 피력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고대 그리스 비극에 대한 독창적이고 통찰력 있는 이론 중 하나를 창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새로울 게 없는데도 그가 말해서 새롭게 들렸다. 비록 니체 스스로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종교가 떠난 자리에 허무주의가 자리 잡은 사회를 우려하며 초인을 대안으로 제시한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어차피 답도 없는 세상 될 대로 돼라 Que sera sera"가 아니라 신을 죽였으니 인간이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스스로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극기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사회의 신념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깨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 종교 사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그냥 사회적 신념에 복종하며 산다. 모두 "아니다"라고 하는데 나만 "그렇다"라고 할 용기가 있나? 남과 다르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두려워 그냥 흐름에 맞춘다. 자기 생각이 맞는지도 확실치 않다. 나는 내가 속한 사회의 노예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사회가 형성한 가치를 비판 없이 수용하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했다. 되돌아보니 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 의존형 아이였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엄마 말대로 살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대학교도 엄마가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서 정했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지만 원하는 과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게 확실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곧바로 취직이 가능한 간호학과에 가라고 했을 때 순순히 따랐다. 그러나 친척들이 "간호사는 의사 심부름이나 하는데 왜 간호학과에 갔어? 학교 보고 간 거니?"라고 했을 때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뭔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사색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기준에 휘둘렸다. 간호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날 일기에 앞으로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썼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 놀이를 하며 공부하는 걸 좋아했으니 무슨 과목이든 가르치는 일이 내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난 간호학 덕분에 어른이 됐다. 아무리 사회에서 부와 명성을 얻어도 늙고 병들면 누구나 예외 없이 세상을 떠나서 잊힌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만 25세에 처음으로 환자의 임종을 목격하며 삶이 길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다른 사람을 돕고 주위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자.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 겸손하고 성실하고 선한 게 뭔지 남편을 보며 배웠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가진 게 없었다. 결혼할 때 엄마가 사준 식탁이 월세 아파트 안에 있던 유일한 가구였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에 살았다. 1986년 미국은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 있었다. 남편은 암을 고치는 신약을 개발하고 나는 정신과 간호학 박사가 되어 대학 교수가 되는... 그러나 당장 먹고살아야 해서 곧바로 공부할 수 없었다. 세브란스에서 인턴을 마치고 미국에 온 남편은 아직 미국 의사 면허가 없어서 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간호사로 일하며 신혼을 시작했다. 남편은 임상의 훈련을 받을지 대학교 연구직으로 갈지 고민했다. 대학교로 가면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선배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련의를 하기로 했다. 당시 외국 의대 출신이 미국에서 의사가 되려면 일단 미국에서 인정하는 의대를 나와야 했다. 그리고 하루에 8시간씩 이틀 동안 시험을 봐야 했다. 시험 준비를 위해 Kaplan학원에 등록하고 6개월간 다녔다. 남편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동네에 있던 모든 패스트푸드 점에 원서를 냈지만 경험도 없고 영어도 못하고 너무 고학력이라고 뽑아주지 않았다. 남편은 매일 내가 싸주는 똑같은 샌드위치를 6개월이나 먹었다. 한 개 사면 한 개 더 주는 저렴한 식빵에 볼로냐 (bologna), 달걀, 레터스, 토마토를 넣은 샌드위치였다. 그리고 드디어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 전날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 갔다.


"안녕하십니까? 로스앤젤레스 5시 25분 항공편 United 2095편으로 여행하시는 모든 승객을 위한 공지사항입니다. 이 비행은 악천후로 인해 취소되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럽고 허탈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면서 말했다. "내일 시험을 보지 못하면 1년을 기다려야 해요. 우리는 꼭 비행기를 타야 해요." 동생도 항공사에 전화해서 어떻게든 우리가 캘리포니아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내가 시험을 보러 가는 줄 알고 다른 비행기에 자리가 나면 탈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다. 남편은 대기실 한쪽에서 묵묵히 공부했다. "하나님 제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3시간이 지났다.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게다가 지인을 통해 저렴하게 구입한 이코노믹 좌석이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승무원은 우리가 시험 보러 가는 걸 알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랜트카를 대여하여 시험장소까지 운전했다. 남편은 옆에서 지도를 보고 나는 규정 속도보다 느리게 운전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시험장소를 확인하고 미리 예약한 모텔에 도착했다. 새벽 3시 20분. 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7시에 시험장에 데려다줬다. 하루에 8시간씩 이틀간 시험을 보고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디즈니랜드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입장료를 낸 본전을 뽑아야 한다며 추러스 한 개만 먹고 8시간 동안 놀이동산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저녁에 한인타운에 가서 갈비탕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한 달 후 만족한 점수를 받고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었다.


되돌아보니 남편과 나는 운이 좋았다. 비록 10년이 넘도록 집도 없고 은행에 잔고도 많지 않았지만 철마다 미국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행도 하고 일주일 간 카리브해의 나라를 도는 호화 여객선도 타봤다. 그때나 지금도 내 경제 원칙은 딱 하나다. "이자를 물지 말자." 그래서 한 달 동안 쓴 카드 값은 늘 정해진 날짜에 갚아서 한 번도 이자를 낸 적이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외식을 자주 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난 후에는 전업주부가 되어 주로 집밥만 먹었다. 나는 가끔 백화점 세일에서 옷을 구입했지만 남편은 옷을 산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는 무엇이 부족하거나 갖고 싶다고 느낀 적이 없다. 오히려 주변에 다른 이민자보다 혜택을 받고 산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전문직 공부를 하고 있어서 미국인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줬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마음의 여유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잠시 추억에 잠겼다 다시 니체의 말을 되새겨 보니 나의 가치는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스스로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을 다해 산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이나 무신론자나 각자 믿는 대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잘 살면 된다. 그래서 전통 종교 사회적 신념을 갖고 사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남에게 강요하는 거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나 생각이라도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걸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국가와 국민 사이에도 이 원칙은 마찬가지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만 움직인다. 강요된 변화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걸려도 온유하게 설득하며 기다려야 한다. 부모도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 자기에게 좋은지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삶에서 보여주면 된다. 우리는 때대로 아이 스스로 경험하고 실패하고 깨닫기 전에 어려운 일을 대신해준다. 내가 그랬다. 자식을 바보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되돌아보니 부모님이 나에게 가장 잘한 일은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았던 거다.


나는 환갑이 넘어서야 나를 믿게 됐다.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좋은 학벌에 필요 이상 가치를 뒀다. "하버드 나왔어? 대단한데..." 분명 좋은 학교에서 공부했다면 우수한 인재일 거다.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노력도 했을 거다. 인간은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나 매우 명석한 사람에게 끌리고 감탄한다. 그러나 영원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닐 수 없고 명석함도 어느 시점부터 퇴보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하버드를 나와도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 폐를 끼치고 하버드를 나오지 않았어도 아니 대학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어도 지혜로운 사람은 남에게 모범이 된다. 난 그런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함은 봉사로 결정된다"라고 한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나 "선행은 분명 당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라고 한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말이 그런 지혜를 담은 말이 아닌가 싶다. 니체의 말이 맞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말보다 선행을 하라는 오프라의 말이 마음에 더 와닿는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다시 이 생을 반복해서 사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는 좀 더 선하게...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선행을 하며 사는 많은 이웃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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