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추억

따지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by 명희

1966년 9월 프랑스에서 일 학년에 입학했다. 알파벳은 물론이고 프랑스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한 1년이 지나서 의사 표현도 하고 동화책도 읽게 되었고 1968년 한국으로 돌아오기 6개월 전부터 간간이 삽화만 들어간 어린이 소설까지 읽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 어린이 소설은 첫 장에 구독 연령이 기입되어 있었다. 동화책을 큰 소리로 읽는 걸 보고 아버지 친구분이 7세에서 9세용 책을 선물해 주셨다. 잘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삽화를 보며 내 마음대로 상상해서 내용을 끼워 맞췄던 것 같다. 배경이 19세기였던 이야기는 삽화에 판탈레트(pantalettes)를 입은 여자 아이가 창문을 안을 들여가 봤던 게 생각난다. 엄마 아빠는 내가 책을 잘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잘 몰라도 아는 척했다.


책 읽기에 비해 말은 제법 잘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니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우선 아이들이 짓궂게 장난치면 대응할 수 있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아이들이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 가장자리를 위로 올리면서 일본인이라고 했고 아래로 내리면 중국인 옆으로 늘리면 한국인이라는 약 올렸다. 그래서 나도 걔네들은 파란 눈의 귀신이라고 쏘아붙였다. 순하다고만 생각한 내가 화를 내자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다.


하루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동생과 놀고 있는데 독일에서 이사 온 남자 형제가 동생과 내 등에 모래를 뿌리고 갔다. 사실 다른 프랑스 친구들이 그 형제와 놀지 말라고 했다. 독일인은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않고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사람을 죽인 나치니까. 마침 나도 그때 티브이에서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무더기로 죽는 영화를 봤고 <<안네의 일기>>도 읽어서 독일에 대해 편파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프랑스 아이들이 떠나고 우리 남매와 그들 형제만 남았을 때 걔네들이 그런 짓을 한 거다. 그리고 자기네 아파트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나는 가만있지 않았다. 프랑스 친구에게 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어디인지 알아냈다. 다음날 그 집에 찾아갔다.


아파트 문을 두드리자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금발의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옆에는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소녀도 있었다.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당신 아들이 나와 내 동생에게 아무 이유 없이 모래를 뿌렸어요.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혼내 주세요." 아주머니는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 집보다 넓고 멋진 가구가 많았다. 형제는 집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막 구운 쿠키와 우유를 줬다. 아주머니와 소녀는 인자한 얼굴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나는 쿠키를 먹으며 대답했다. 쿠키를 다 먹고 일어서는데 형제가 들어왔다.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주머니가 형제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뭐라고 항변하려다 엄마 말을 따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도 화날만했다. 프랑스 아이들이 우리 보고 그들과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그러나 프랑스 아이들에게 따지지 못하고 나와 동생에게 그런 짓을 한 건 비열하다. 그들은 그 일을 기억할까?


프랑스어를 잘하게 되니 거짓말도 하게 됐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내가 한국에 언니와 오빠가 많다고 허풍을 떨었다. 그리고 이모와 삼촌을 생각하며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른 아이들은 큰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나는 4살 어린 동생만 있어서 왠지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내 말은 믿건 말건 내 상상의 언니와 오빠는 이모와 삼촌을 넘어 더 이상적인 인물로 발전했다. 한국에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또래보다 자전거를 잘 탔다. 다른 아이들은 평지에서만 타는데 나는 다른 아이들 언니 오빠를 따라서 제법 경사진 비탈길을 빠르게 내려왔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오빠는 그보다 더 경사진 언덕에서 자전거를 탄다고 뻥을 쳤다. 아마도 친척들이 그립고 마음이 많이 허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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