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이지(Osage) 부족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

by 명희

어릴 때 서부 영화를 좋아했다.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 화면만 봐도 대충 내용을 알 수 있는 서부 영화를 자주 봤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매번 아메리카 원주민이 쳐들어 오면 백인 지휘관이 나타나 그들을 쫓아내고 영화가 끝났다. 그래서일까? 아메리카 원주민은 말도 못 하고 백인을 못살게 구는 미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넓고 비옥한 땅을 백인에게 빼앗긴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힘이 없으면 뺏긴다. 그래서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았던가?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아무런 자원이 없으니 힘을 키울 수 있는 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재가 되는 거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메리카 원주민이 얼마나 많은 핍박과 박해를 당했는지 알게 되었다.


미국에 온 백인은 인디언과 함께 사는 게 불편하고 땅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두 가지 정책을 폈다. 처음에는 원주민을 한 곳에 모여 살도록 격리시켰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격리시켜 기숙학교에서 백인 문화를 교육시켰다. 원래 원주민 땅인데 백인이 와서 경계를 긋고 원주민에게 땅을 나눠준다는 게 말도 안 되지만 당시 사람들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던 시절이라 그렇게 한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1830년대 초 조지아, 테네시,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및 플로리다에 살고 있던 125,000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은 오클라호마 "인디언 영토"까지 수백 마일을 걸어가야 했다. 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법은 대통령이나 다른 누구도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조상의 땅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잭슨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법을 무시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수 세대 동안 살았던 땅을 비우도록 강요했다. 먼 길을 걸어서 이주하며 약 15,000명이 사망했다. 촉타오(Choctaw)부족의 지도자는 “눈물과 죽음의 길( a trail of tears and death)"이었다고 말했다.


시작은 이랬다. 17세기와 18세기에 미국 인디언과 식민지 강국 사이에 협정이 맺어졌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는 원주민 부족과 미국 관리 사이에 조약이 맺어졌다. 조약이 체결될 때마다 원주민 땅이 줄어들고 이주까지 해야 했다. 1803년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 (동쪽의 미시시피 강에서 서쪽의 로키 산맥까지, 남쪽의 멕시코만에서 북쪽의 캐나다 국경까지)를 단돈 1500만 달러에 사고 15개 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 사는 오세이지(Osage) 추장과 만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조상들이 저 너머에서 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저 너머의 기억을 잃어버렸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자랐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셔서 당신 사람들에게 말하세요. 내가 그들의 손을 잡고 이제부터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그들은 우리나라를 친구이자 은인으로만 알게 될 겁니다.” 그러나 4년도 안 되어 제퍼슨은 오세이지 부족에게 알칸사스와 미주리 강 사이의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오세이지 추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적이 되어 싸워야 했다. 결국 일억 에이커 가까이 되는 땅을 내어주고 캔자스 남동부에 6,250 에이커 땅에 정착했다.


그러나 오세이지는 여기서도 오래 살지 못했다. 백인 정착민들이 그 땅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훗날 <<작은 집 (Little House on the Prairie)>>를 썼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가족도 있었다. 로라는 인디언을 싫어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인디언 나라가 아닌가요? 인디언을 싫어하면서 여기에 왜 살러 왔어요?" 엄마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빨지 말라고 나무란다. "정부에서 인디언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그곳에 먼저 온 정착민이 가장 좋은 땅을 먼저 가질 수 있다고 해서 온 거야."라고 로라 아빠가 말했다. 결국 오세이지 부족은 백인 정착민에게 1 에이커에 $1.25를 받고 땅을 판다. 그러나 어떤 정착민은 오세이지 부족을 학살하고 신체를 절단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땅을 빼앗았다. 그러니 누가 더 야만인인가? 나는 가짜 뉴스를 보고 자란 거다. 1870년대 초 오세이지 부족은 바위가 많고 메마르고 경작하기 부적합한 캔자스 남부 지역 150만 에이커를 구입하고 이주했다. 오세이지 추장은 그곳이 백인이 싫어하는 척박한 땅이라고 안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척박한 땅에서 갑자기 석유가 솟아올랐다. 사실 원주민은 이곳에 석유가 매장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예측하지 못했다. 1890년대부터 석유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운송 문제와 석유 값 하락으로 사업이 지체되다가 1903년에 첫 유전개발이 성공하고 1904년에 수송관이 설치되면서 1907년에는 오세이지에서 500만 배럴 이상의 석유가 생산됐다. 그리고 1916년부터 일반인도 경매를 통해 땅을 빌려서 석유를 채굴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의회 건물 옆 거대한 느릅나무 그늘에서 수백만 달러의 임대 경매가 이뤄졌다. 나무는 백만 달러 느릅나무(Million dollar Elm)가 되었다. 오세이지 부족은 세계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되었다. 신문은 오세이지 원주민이 보석으로 장식하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백인 가사 도우미가 있는 대저택에서 산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을 듣고 오세이지 마을로 어중이떠중이가 다 몰려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굴지의 석유 회사를 창립한 조지 게티(George Getty) 프랭크 필립스(Frank Phillips) 같은 기업가부터 원주민 마을에서 한탕하려는 도둑과 강도까지 오세이지 마을은 더 이상 원주민에게 안전한 보호구역이 아니었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바로 이 오세이지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 이야기로 사직한다. 미국 저너리스트인 데이비드 그랜 (David Grann)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을 쫓아서 오세이지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후손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여 2017년 논픽션을 발표했다. 4월이면 오세이지 구역은 제비꽃 노랑 데이지 같은 작은 꽃들로 뒤덮였다가 보름달 아래 늑대가 하울링 하는 5월이면 꽃받침 위에 꽃잎이 떨어져 땅에 묻혔다. 그래서 오세이지 원주민은 5월이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moon)의 시기라고 했다. 그런 5월에 부유한 오세이지 원주민 애나(Anna)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협곡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맏딸 애나를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는 망연자실한다. 애나의 모든 재산은 어머니에게 상속됐다. 그러나 어머니도 두 달 후 돌아가신다. 애나에게는 3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몰리(Mollie), 리타(Rita), 미니(Minnie). 자매는 모두 백인과 결혼했다. 애나는 백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몰리는 백인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고 살고 있고, 미니의 백인 남편은 미니가 죽자 리타와 재혼했다. 그런데 이 가족에게 석연치 않은 죽음이 찾아온 건 애나가 처음이 아니었다.


1918년 건강했던 27살 미니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다. 그리고 3년 후 애나가 사망한 거다. 그런데 자매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미니의 전 남편이자 리타의 남편인 빌(Bill)이 장모가 천천히 독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애나의 죽음을 캐고 다녔다. 빌은 오세이지 자매와 결혼하기 전에 말 도둑이었다. 리타에게 손지검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나 살인 사건을 풀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래서 무슨 단서를 잡은 것 같았는데 집이 폭파하여 죽고 만다. 이 가족뿐만 아니라 오세이지 마을에 인디언이 여기저기서 죽었다. 두려운 원주민들은 저녁에 전등을 켰다. 백인들은 원주민이 돈이 많아 전기도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했다. 그러나 범인은 가까운데 있었다. 오세이지 부족이 석유로 돈을 벌기 전부터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 몰리는 절망 했다. 그녀가 굳게 믿었던 사람이 범인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애나의 죽음을 계기로 오세이지 마을에 일어난 미해결 살인 사건을 풀기 위해 개인이 고용한 사설탐정과 정부에서 파견한 수사관이 한 일을 알 수 있다. 피해자의 편은 많지 않았다. 사리사욕이 난무한 사회에서 가해자끼리 서로의 비리를 덮어주는 것 같았다. 사설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주지사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사업가 은행가 등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이 모두 한통속으로 오세이지 원주민을 등쳐먹었다. 마치 부패 사회에서 누가누가 더 나쁜가를 경쟁하는 것 같았다. 정부도 나을 게 없었다. 오세이지 원주민이 돈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며 후견인 제도를 실시해서 원주민은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했다. 반면 다수의 후견인은 원주민의 돈을 갈취하고 도주하여 원주민이 길거리에 내몰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이 몇 세대 후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물론 아주 드물긴 했지만 정의로운 백인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암살당했다. 그러나 오세이지 부족이 가장 고마워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애나의 살인 사건을 풀고 범인을 감옥에 보낸 와이트(White) 다. 내가 서부영화에서 봤던 정의로운 백인은 바로 이런 사람을 모델로 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 한 건 와이트 덕분에 에프비아이(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의 수장이 된 후버 (J. Edgar Hoover)는 끝까지 와이트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와이트는 끝까지 후버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범인이 처음부터 원주민을 속이려 했을까?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진 않다. 범인은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목동이었다. 다른 사람의 소를 몰고 수십만 마일을 돌아다니며 원주민 정착촌에서 풀을 먹였다. 옷은 늘 소의 배설물과 비로 젖었고 소 때가 우르르 도망치는 걸 잡느라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그렇게 고생해서 소도 사고 땅도 사고 원주민과 친해졌다. 부를 축척하자 행색이 달라졌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고 시를 외웠다. 교사와 결혼하여 아버지를 무척 따르는 딸도 얻었다.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 식량과 의료비도 지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오세이지 언덕의 왕(King of the Osage Hills)이라고 존경했다. 정치인들은 오세이지 지역에서 당선되려면 그의 추천을 받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를 만나려면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했다. 그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왜 원주민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는 범죄를 계획하고 지휘했을까? 돈이 사람을 사악하게 만든 것 같았다. 원주민을 속이고 보험 사기를 치고 급기야 살인까지... 벌써 재산이 많았을 텐데 더 갖고 싶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했다. 뻔뻔하게 유족을 위로하며 자기가 죽인 사람의 관을 운구하고 가다니! 정말 나쁜 이중 인격자다.


이상하게도 이런 마음은 어떤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닌 것 같다. 당시 미국 전체가 돈에 눈이 뒤집힌 것 같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정책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그나마 그들의 땅을 돈을 주고 사고 이주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연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한 땅값을 옷과 식량 배급으로 대치하겠다고 했다. 말이 되는가? 백인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속셈이 있었을 거다. 돈도 굳고 동화도 시키고. 원주민에게 백인 옷을 입으라고 했다. 이런 문화 변화는 교육을 통해 이뤄졌다.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수십 마일 멀리 떨어진 가톨릭 기숙학교에 가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연금을 안 준다고 했다. 몰리도 그런 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인디언 담요 대신 드레스를 입었고 오세이지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성경에 나온 천지 창조를 배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도망치면 잡혀왔다. 그리고 점차 머리도 자르고 백인의 옷을 입고 말도 달라졌다.


원주민의 식생활도 바꾸려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오랫동안 버펄로를 사냥했고 버펄로는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버펄로 사냥이 끝나면 캠프 파이어에 둘러앉아 과거의 전쟁과 사냥에 대한 용감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러나 1877년 미국 버펄로는 씨가 말랐다. 버펄로가 있는 곳에 인디언이 있다고 백인 정착민이 버펄로를 모두 죽였다. 버펄로 사냥도 못하고 백인의 농사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원주민은 곧 기아로 허덕이다 죽었다. 오세이지 추장은 사절단을 이끌고 행정장관을 만나러 워싱턴 디 씨(Washington, D.C.)에 갔다. 사절단은 가장 좋은 담요와 양말을 신었고 추장은 온몸을 담요로 꽁꽁 덮었다. 그러나 행정장관은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급히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추장은 길을 막고 담요를 벗었다. 그는 허리에 두르는 천으로 주요 부위만 가리고 있었다. "저는 제 몸이 부끄럽지 않아요. 우리는 먼 길을 왔어요. 앉으세요. 할 말이 있어요" 그리고 오랜 설득 끝에 식량 배급 정책을 중단하고 연금을 받아냈다. 그러나 오세이지 마을에 백인이 들어오면서 동화는 더 빨라졌다. 마을에 첫 무역 상회가 생기고 백인들은 그곳을 들리는 원주민에게 미국 이름을 지어줬다. 백인이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면 함부로 남의 이름을 고쳐 부르지 않고 강제로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격리시키지 않았을 텐데... 이제 사람의 인식이 많이 진화해서 다행이다. 적어도 겉으로나마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나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의지가 전보다 높아졌다. 비록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구조나 욕망과 과욕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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