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전문가입니까?

생산업체 선정기

by Benjamin

재 점검하기


첫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직장에서 꾸준하게 작성하던 레시피 노트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이나 건강 관련 일반 식품들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꾸준하게 소비자들에게 소비되는 스테디셀러 제품과 새로운 원료의 등장으로 반짝 유행하는 제품들 작게는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반짝 유행하다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게 되면 여러 브랜드 업체에서 유사한 콘셉트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같은 제조사 출신들 (특히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 노트에는 스테디셀러 제품군의 레시피도 있고, 박람회등에서 얻은 새로운 기능성 원료 정보 등을 활용한 신제품 레시피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반짝 히트만 치고 없어진 제품들도 상당합니다. 어떻게 만들면 효과가 좋은지, 어떻게 배합하면 먹기가 편한지, 그리고 맛이 좋은지 마치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노트 같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개발 제품마다의 그동안의 실험 결과와 효과, 그리고 아쉽게도 고객사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이유들이 적혀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중에서 우리 브랜드의 색깔과 가장 적합한 제품들을 골라서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라인업에서 제품의 특성 및 특징 등을 고려하여 출시 순서를 정했습니다.


첫 제품으로 어떤 제품을 만들지 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레시피를 재점검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제품이 브랜드의 첫인상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신경이 더 많이 쓰였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다시 실험할 수 있는 것들은 재 실험을 해가면서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노트에 적혀있는 레시피는 이미 효능에 대해 검증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제품의 주원료 함량과 성분에는 큰 변화 없이, 소비자들이 섭취하기 편한 제형을 만들고 맛있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부원료를 다시 점검하는 것에 더욱 집중을 했습니다.


까다롭게 본 생산업체 평가


레시피 재 점검과 동시에 생산업체를 선정해야 했기 때문에 관련 유사 제품의 시장 조사를 통하여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제품들의 생산업체를 추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추려낸 업체와의 미팅과 방문을 통하여 최적의 생산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를 선별해 갔습니다.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기본적으로 GMP 인증이나 HACCP 인증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산업체 방문을 통하여 실제 생산 환경과 공정을 검토해 갔습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바로 전 직장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수없이 평가를 받아왔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가장 키포인트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 직장에서 고객사들에게 평가받던 항목을 토대로 하여 생산업체를 방문하여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그동안 수험생 신분이었다면 이제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선생님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식품 생산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항목은 위생 부분입니다. 우리는 경험에 의해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리 잘하고 있는 업체를 선정해 나갔고, 생산 과정의 품질보증이나 이후의 품질관리 부분까지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까다롭게 평가해 나갔습니다.


물론 생산업체에 있을 때 우리도 그래왔기는 했지만, 고객사의 방문 및 평가는 생산업체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생산업체는 평소에도 잘 관리하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을 내비치지는 않지만, 방문 평가 자체를 거부하거나 혹시나 평가를 허락한다고 해도 약식으로 하는 업체는 우선 선정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생산업체를 선정할 때 이미 몇몇 업체에서는 우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준비를 잘해주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단점이 보이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쓴 흔적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체 선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간혹 사업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노력에 비하면 저희는 조금 수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산업체의 두 번째 능력 평가


생산업체의 생산능력 다음으로 관심 있게 본 부분은 개발 부서의 능력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레시피는 우리가 제시하고 생산 공정의 설계도 우리가 했지만, 생산업체 개발 부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맛을 조금 더 좋게 만들거나, 제형의 품질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발 인력들의 능력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희가 공정을 설계했다고 하더라도 저희도 모든 생산 설비를 다뤄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자사의 생산 설비를 잘 알고 있는 인력들의 협조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레시피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생산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원료 중에 우리 제품을 조금 더 좋게 만들어주는 원료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로 다시 한번 추려냈고, 그중에서 가장 많은 협조와 제품력에 대한 의견을 많이 준 업체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연주자와 지휘자가 호흡을 맞춰가는 것처럼, 우리의 비전과 그들의 기술력이 조화를 이루는 업체를 찾아나간 결과로 첫 제품의 생산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


하지만 이렇게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제품의 원가가 상당히 높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업체 선정이 끝나고 본격적인 가격 협상을 시작하게 되면서 가장 많은 의견 차이가 났던 부분이 바로 원가 부분입니다.


우리는 건강식품이기 때문에 효과 효능에 가장 중점을 두었고, 원료 및 부원료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좋은 원료를 선택하려고 했었습니다. 우리는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고, 우리의 제품은 그래야 한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될수록 "과연 이것이 맞는 기준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효능을 보이는 제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지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비자가 처음 마주하는 첫인상은 바로 가격이라는 얼굴인데 그 부분을 외면하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효과가 좋은 제품이라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 좋은 효과도 선보일 수 없습니다.


원가가 높아지니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판매금액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유사 제품과의 가격 경쟁에서는 우리가 밀리게 되는 결과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왜 전 직장에서 고객사들이 그동안 효능보다는 원가를 가장 중요시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 업체를 선정할 때 입장의 변화가 있었듯이 이 부분에서도 분명한 입장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라고 별 다를 게 없었습니다. 시장 경제 속에서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은 우리와 같은 소규모 브랜드에서는 너무 큰 모험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그렇다고 절대 효능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찾은 절충안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방법을 모색하여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생산업체의 MOQ(최소 생산 수량) 보다 더 많은 제품을 만들기로 하고 원가율을 낮췄습니다.


두 번째, 우리 회사가 가지고 가는 이익 부분을 우선 최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첫 제품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캐시카우 같은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브랜드의 가치도 같이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는데 브랜드가 알려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제품이 이익을 많이 가져다주는 제품이 아닌 브랜드를 알리고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이 되어 회사 운영자금을 걱정 없게 만들어 주는 캐시카우 역할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온라인 사업인 만큼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10개 넘는 물류회사를 약 보름동안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택배비를 줄일 수 있는 업체, 보관비를 절약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물류사고가 조금이라도 날 수 있는 업체는 배제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적으로 들리지는 몰라도 제품력은 높이되 판매 가격은 줄이는 방법. 소비자에게는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지만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신은 판매자입니까?


실제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판매를 시작하면서 왜 우리가 제조사에서 근무할 당시의 고객사들이 효능보다는 원가를, 그리고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올라가는 키워드를 가진 제품들을 선호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시장에서는 가장 필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자들에게 어필이 되어 소개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섭취를 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제조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품력이 좋다는 것만 믿고 생산업체에게 까다롭게만 굴었던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요즘 어떤 제품을 찾고 있는지, 그 제품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소비자들에게 호감이 가는 가격대는 얼마인지 등의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가 개발해서 가장 좋은 효과를 보였던 제품이었다는 것에만 자부심을 느끼고 자만을 부렸던 것입니다.


완벽한 제품이란 제품력이 높은 제품이 아니라 시장에서 소비자들에서 선택을 받고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으며 누구나 부담 없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제품, 그것이 팔리는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판매자입니다. 판매자는 생산자의 눈으로 제품을 보는 게 아닌 소비자의 눈으로 제품을 봐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는 제품의 제품력은 필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을 받아야 제품력도 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전문성과 시장성 사이의 균형,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 사업가, 특히 브랜드 사업가의 숙명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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