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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Nov 21. 2023

SNS 사진 안엔 없는 이야기  

 이것은 신혼인가 권태기인가

결혼해서 7년. 주택청약법까지 들먹여가며 신혼의 끝을 잡고, 사골을 우려우려 글 쓰는 것도 이제는 한계다.

젊고 풋풋한 신혼들도 차고 넘치는데 늙어 골골한 신혼들 이야기? 나라도 안본다. 안 땡기는 게 당연하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 둘 늘어있던 구독자 수가 요즘은 돌아서면 하나 둘 줄어 있고. 그 전에 나 하나 궁금한 거. '댓글 그게 뭐지?' '다른 사람들 글엔 줄줄이 사탕처럼 달리는 달달하고 힘나는 댓글들. 나는 왜 그런 게  안 달리는 거지?' 어쩌다 한 두 개 달리는 댓글이라곤, 맞춤법 지적이거나 내 글에 담긴 자기 합리화가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나 뭐라나. 맵고 무서운 비판 뿐...

그러니 이제 그만 브런치를 접어야겠다. 나는 끈기 부족에 알게 모르게 리셋증후군까지 있는 사람. 내가 여태껏 한 번도 안 지우고 그냥 둔 건, 연애 시절부터 줄곧 남편과 주고받은 카톡창 밖엔 없다. 하다 말다, 썼다 지웠다가 원래부터의 나, 어쩔 수 없는 나의 기질, 나의 주특기. 그냥 생긴대로 살아버릴까 싶었는데…


최근에 재밌게 보고 있고 공감이 돼 좋았다고, 힘나는 말씀을 해주신 몇몇 구독자 분들이 생겼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막 접을까 하던 브런치를 다시, 새롭게 해보기로 했다.

이제는 세상 소소한 늙은 신혼 이야기를 벗어나, 조금 더 색다른 테마로 글쓰기를 해보려고 열심히 생각 중인데...  


그 전에 신혼일기로는 이 글이 마지막이지 싶다.  

이 놈의 남의 편, 마누라 글감 떨어져 허덕이는 걸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이리 싸움을 걸어주시는지. 매번 글감하라고 시비 걸어주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부부싸움을 하면서 글 쓸 생각하는 나도 참 나다.




때는 지난 금요일. 아니 사실은 지난 주 내내 남편은 왕복 세 시간, 많게는 네 시간도 걸리는 출퇴근 때문에 많이 고단해 했다. 신도시로 이사 와 이제 일 년. 처음 우리가 입주할 당시보다 최근 속속 입주 아파트들이 늘어나면서, 인근 지하철 역이 출퇴근 시간만 되면 인산인해다. 거기다 집과 지하철 역을 오가는 도로 역시 늘어난 차량 때문에 늘 정체. 10,1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출퇴근 땐 3,40분씩 가야 한다고 늘 투덜대는 남편인데.

사실 집에서 전해 듣기만 하는 나조차도 절로 숨이 턱 막히고 고개가 절레절레 돌아가는 상황이긴 하다. 그래서 이해는 하는데, 그러면서도 종종 어깨가 축 쳐져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구는 남편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욱! 암만 출퇴근에 지쳐도 하루하루 시간 죽이듯 사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답답할 때가 많다. 이게 늘 그런 건 아닌데, 종종 한 번씩 잊을만 하면 찾아오고, 최근엔 그 주기가 좀 짧아진 것도 같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첫 눈도 내리겠다 기분 전환 겸 오랜만에 남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리고 퇴근 후 남편의 회사 근처에서 만난 우리.

“오빠 우리 뭐 먹을까?”

사실 미리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점심으로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더랬다. 그래서 밀가루+야채+소스 조합만 좀 빼고, 얼큰하고 뜨끈한 걸 먹고싶던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부리또 볼 어때?”

딱 밀가루+야채+소스 조합을 찍는 남편. 갈수록 안 맞는 게 많다. (이러면서 신혼 타령은 개뿔)

“하. 나 딱 그것만 빼고 다 괜찮은데… 사실 좀 전에 나 배고파서 먼저 샌드위치 하나 먹었거든.”

“그래? 그럼 너 먹고싶은 거 먹어. 어차피 그럴 거잖아.“

진짜 그럴 걸 그랬다. 물어봐야 서로 엇갈리기만 할 뿐 결국 나 역시 내 생각대로 할 거였지만, 남편의 '어차피 그럴 거잖아' 이 한 마디가 명치 끝을 딱 때렸다.

평소 같으면야 적당히 맞장구 치며 부리또 볼을 먹었어도 상관 없겠지만, 이 날은 내가 작정하고 소주나 한 잔 하며 남편의 이런저런 속 얘기를 들어볼 생각에 일부러 찾아간 날. 나는 내 고집대로, 아니 계획대로 남편을 해장국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이건 주문 후 잠시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내가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인데...

 

사진과 함께 <첫 눈 온 날, 내장탕에 소주, 중년의 맛>이라는 설명도 덧붙임.


<첫 눈 온 날, 내장탕에 소주, 중년의 맛> 간단한 듯 보이는 이 세 문장 안엔 나름 나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 '나는 여전히 첫 눈 온 날 남편과 함께 데이트를 즐기는 행복한 여자'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표현이 과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쌀이 찌푸려지지 않게 데이트라는 단어와 하트는 과감히 생략. 그리고 '중년'이라는 단어를 써서 살짝 무게감을 얹어준 건데. (고르갑) 이런 의도가 제대로 먹히면 이내 '좋아요'나 '역시 신혼이네' '불금이구만' '부럽다' 등의 멘션이 달리는 거고, 아님 마는 거다. 고작 지인으로만 구성된 팔로워18의 SNS 운영자도 이런 의도를 갖고 업로드를 하는데...  그러니 SNS는 사실 다 허상이다.  

이 날 우리는 상대의 무기력한 모습에 실망한 얘기, 막막한 앞날에 대한 얘기, 그러다 결국 당신이 외벌이라 힘들다는 거냐, 그러는 너는 그 자격지심이 문제다 등등, 수많은 말들과 한 숨을 내뱉으며 치열하게 치고 받았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도 이 사진 안엔 담기지 않았다. 물론 설명도 없다. SNS는 순전히 내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기록하고 자랑하는 수단이니까,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참고로 남편은 퍼거슨경처럼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해서 일절 안하고, 나는 SNS는 해도 가족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서로 예쁜 척, 멋진 척, 행복한 척 하는 거 못 봐주는 남동생과 나)

그러니 다정한 투 샷을 찍어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 기사가 나는 연예인 부부도 생각해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혼을 생각 중이란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나는 SNS고 브런치고 결혼 7년 차에도 여전히 신혼인 것처럼 사는 우리의 일상을 올리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최근엔 꽤 괜찮은 남자인 것처럼 남편을 소개해 놓은 내 브런치 글도 도로 취소시켜 버리고싶을만큼, 별로일 때가 많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러니 몸으로 온 나의 갱년기와 마음으로 온 남편의 갱년기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마침내 우리의 신혼도 권태기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은데...

사소한 말투, 습관, 심지어는 서로 타이밍이 안맞는 문제로도 한 번씩 부딪히곤 하는 우리. 남편은 내가 전보다 말투가 거칠고 투박해졌다고 툴툴대고, 나는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남편의 작은 습관들 때문에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좀 전에도 밥을 먹으려고 손을 씻고 나와 주방으로 가는데, 출근한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현관 앞에 내가 주문한 택배 왔다는데, 들고 들어와줄래?]

막 손을 씻고 나온 참이라, 택배 상자 뜯는 게 거시기 했던 나는 과감히 읽씹. 밥부터 먹고 택배를 가지러 나갈 생각였는데...

[미안한데, 그거 지금 뜯어서 안에 물건 좀 확인해 봐봐.]

[뭔데 그래? 집에 와 오빠가 확인해!]

[바빠?]

[밥 먹어]

[미안해. 그것만 좀 해주고 먹어라. 옷인데 사이즈를 잘못 산 것 같아서 그래. T40인지 좀 봐줘]

결국 나는 현관 밖으로 나가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곤 상자를 뜯어 비닐 안에 든 옷이 T40 사이즈인 걸 대충 확인하고, '귀찮고 짜증났으나 나는 네가 하란대로 다 했다'를 적절하게 표현해 줄 이모티콘 하나를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그때,    

[T40이면 여성 사이즈 95라던데, 나는 안 맞겠지?]

이게 뭔 뜬금포래? 답톡 대신 나는 얼른 비닐 포장을 열어 옷을 펼쳐봤다. 평소 내가 입고 싶어했던 브랜드의 니트 하나가 짜잔 모습을 드러냈다. 영락없는 여자 사이즈 니트. 내 옷이었다.

[너 팔뒤꿈치에 패치 달린 옷 입고싶어 했잖아. 금요일 동기 모임 때 입고 나가]

순간 눈에 불을 켠 이모티콘을 보내려다 멈칫한 나의 손가락. (손가락을 칭찬해) 눈에 불 대신 하트를 밝힌 이모티콘을 서둘러 찾아 남편에게 날렸다.

[딱 내 사이즈야. 오빠 입긴 턱없이 작지. 내가 접수할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게 그 옷이고, 맞다. 이건 자랑글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권태기보단 신혼에 가까운 부부다. 옷 하나에 줄창 열심히 쓴 글을 도로 없던 걸로 하고 싶어질만큼, 순식간에 남편이 좋아졌으니 말이다.

손톱깎기 쓰고 제자리 안뒀다고, 샤워기 헤드를 돌려놓지 않았다고, 욕실을 오래 쓴다고 잔소리 한 나도 반성한다. 출퇴근에 매일 지쳐있는 남편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활기찬 일상을 보낼 수 있을지, 나는 어떤 선물로 남편에게 보답할 수 있을지도 지금부터 궁리 해봐야겠다.


이것이 부부!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있지만 계절은 변하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도 곧 권태기가 올테고 그렇게 늙어가겠지. 그래도 남편과 함께여서 다행이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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