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듣기 힘든 이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땐 '독후감 쓰기 대회', '경필 쓰기 대회' 등에서 교내 표창장을 휩쓸었고,
-고등학교 땐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 한 덕에 국어 교과 성적만큼은 전교에서 손에 꼽힐만큼 우수했으며,
-그 바람에 자신이 글쓰기에 대단한 능력자인 줄 착각하고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전직 (아직 폐업을 하진 않았습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한때는 경기 소재 뭐 대학에서 영상문학과 시나리오작법을 강의했던,
-현재는 작문이라곤 브런치와 톡창에서만 하는 <가정주부>다.
이런 내가 종종, 심심치 않게 듣는 얘기가 하나 있다.
남편은 결혼할 당시 예비신부인 내가 반백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차하면(?) 글짓기 선생님이라도 되겠지 싶은 생각에 결혼을 감행했다 하고, 집에서 놀고 먹느라 입으로만 가계 걱정을 하는 나를 보면 주변 친구나 가족들은 늘 나에게 글짓기 선생님이 돼 보라고 권유을 하는데...
이건 마치 운동 선수가 은퇴를 하면 자연스레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될 거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역일 때 잘 나갔던 선수이냐 아니냐에 따라, 지도자의 일을 국가대표 팀에서도 할지 동네 입시 학원에서 할지만 달라질 뿐, 결국 운동 선수도 작가도 은퇴를 하면 열에 여덟 아홉은 그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전수하니까.
그러니 주변에선 할 법한 이야기요, 나는 자주 들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자연스런 이야기인데...
이걸 알면서도 주변에서 자꾸 부추기면 슬... 비딱해지는 나.
"왜 꼭 누굴 가르쳐야 돼? 난 좀 김연아처럼 그냥 살면 안돼?"
안된다!!!
지난 시절 내가 작가계 김연아... 였으면 모를까, 나는 태릉 빙상장도 견학 수준으로다 몇 번 밟아본 게 전부인 그저그런 선수... 아니 작가였다. 고로 나는 현역일 때 그녀처럼 벌어놓은 돈도 없고, 그녀처럼 연하의 (오래 일할 수 있는) 남편도 없다.
도리어 나의 남편은 왕복 세 시간의 출퇴근으로 가뜩이나 더 늙어가고 있는 곧 있으면 쉰, 퇴직을 앞둔 남자.
그러니 그 전에 나는 한 해라도 빨리 남편을 외벌이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의 노후를 준비해야할 반쪽의 책임이 있는 사람인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알면서도 그 수단이 글짓기 선생님이 되면 또다시 주춤하게 되는 나.
"하면 하지. 근데 가맹점 가입이며 학원 월세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 걸?"
이 핑계로 미뤄 온 게 벌써 5년째다.
처음엔 이주 할 동네가 신도시이다 보니 이사만 가면 거기 새로 생기는 상가에 작게나마 자리를 하나 잡아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파트 대출금도 매달 버거운 마당에, 덜컥 상가 세까지 얻는다고?'
학원이 순풍에 돛단 듯 잘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야 한 번 해볼만 하겠지만, 사실 그런 것도 아녔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주변으로 하나 둘 생긴 상가엔 이미 학원들, 교습소들이 들어와 있었고, 그들끼리의 경쟁만 해도 이미 이곳은 대격전의 현장. 거기에 내가 낄 틈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그런 학원에서 먼저 일해보는 건 어때?"
현역에서 은퇴를 하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만큼이나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사실 누가 봐도, 학원부터 낼 게 아니라,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을 배우는 게 먼저였다.
그래서 학원 강사를 구하는 구인 광고를 보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 보곤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한 군데서도 연락이 오질 않았다.
내가 내심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한 덴 이유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 자신이 없다. 댓가를 받고 전수할 노하우가 나에겐 없다. 대상이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맞춤법도 별로 자신이 없어요;)
사람들은 으레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고 하면, 초등학생 정도는 눈감고 가르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그게 그렇치만도 않다.
그리고 이제와 말이지만, 지난 날 그것도 몇 해씩이나, 내가 대학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쳤는지 사실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는 내가 할 수 있고 없고를 따지기도 전에 일이 알아서 시작돼 버렸고, (정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대학 선배 추천으로 현장 경력자 우대 채용이 됐었네요), 하는 동안엔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지만...
'근데 그거 진짜 나 맞아?'
한 번씩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만큼, 그때의 나와 비교해 지금의 나는 누굴 가르칠 자신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학생은 지금이라도 준비하면 어떻게든 가르치겠지만 (사실 그때도 가르친다기보다, 그냥 내가 좀더 아는 걸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했더랬죠), 초등 중등 고등학생을 상대로 소위 글짓기 혹은 논술이란 걸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또 자신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아파트 내 카페 공간이 주민들에게 오픈이 됐다. 시간 당 일정 금액을 내고 교육, 회의, 파티 등의 용도로 대여가 가능한 공간이 생긴 건데...
'그럼 어디 한 번 여기서 글짓기 교습을 해봐?'
아직은 그냥 생각!
덜컥 말부터 꺼냈다간 남편이 쌍수들고 환영할 게 뻔해서다. 그랬다간 도로 무를 수도 없다. 해서 지금은 그냥 마음에만 담아뒀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단 자체가 스스로도 좀 신기하긴 했다.
월세 걱정도 크게 없고 단지 안에 학생들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되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안하면 흡사 직무유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이런 생각이 들자, 글짓기 교실의 이름은 뭘로 할지, 커리큘럼은 어떻게 짤지, 월회비는 어느 정도나 받을지,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테면,
- 이름은 <더 글놀이> ?
- 커리큘럼은 독후감, 논술 집어치우고 <노래 가사 쓰기>, <요즘 핫한 드라마 다음회 써보기>가 어떨까?
- 아예 그러지 말고 학생들이랑 <브런치>를 한 번 해봐?
신났다리~ 신났다리~~~ 했는데...
"아직 정해진 거 아녜요. 주민 투표를 해서 찬성이 70%를 넘어야 오픈 합니다 기다리세요!"
그렇단다.
일주일에 1~2회. 한 번 할 때 90분 정도 시간 계획을 하고 공간 대여를 위해 문의 차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더니, 관계자 분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직 그 공간의 활용 방법은 정해진 게 없고, 오픈 예정도 현재는 없단다.
고로 나의 <더 글놀이>도 아직은 개원 미정인 상태.
어떻게 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커리큘럼도 짜고 교재도 만들고 나의 교습 노하우도 정립을 해야하는데...
그 작업을 위한 시간을 번 건 너무나도 잘된 일. 그런데 그 사이 '에라 모르겠다. 어디 한 번 부딪혀봐?' 했던 나의 마음이 도로 수그러들까, 쫄보가 될까, 그건 좀 걱정이다.
그런데 그거 앎?
준비가 철저하면 절대 쫄보가 될리 없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