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옳은 ep.3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어떤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강렬한 색감 혹은 밝은 조명이 눈 안에 가득 들어와 에너지를 얻게 된다. 잔잔한 음악과 고의로 어두컴컴하게 한 조명 아래에선 어쩐지 위로를 받게 된다. 또 어떤 공간은 아릿한 추억을 강제로 소환한다.
문득 조금 다른 공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맛이 검증된 곳 몇 군데만 주구장창 다니는 편이지만, 그냥 그날은 그랬다. 온종일 일한 나에게 보상하듯 거하게 삼겹살 한 판을 먹은 뒤였다. 여기에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거릴 수 있는, 그런 생기 한 방울 떨어뜨리면 오늘 하루도 멋진 하루라 다이어리에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화도 시킬 겸, 무턱대고 멀리 가고 싶었다. 뭐든 천천히 느릿느릿 생기는 어느 고즈넉한 풍경에서 여유로운 커피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가게 된 경상도 상주의 카페, 무양주택. 2시간을 달려 도착하여 한눈에 카페를 알아봤다. 저 예쁜 집이 무양주택이구나. 안으로 들어섰다. 커피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향이 났다. 신선한 원두가 분명하다, 이 냄새는. 주문하고 공간을 둘러봤다. 주택을 개조한 공간은 비밀장소처럼 공간이 여기저기로 나뉘어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 공간도 있었고, 몇 계단 내려가야 하는 지하공간도 있었다. 예쁘고 아늑하고 따뜻한 그런 느낌이었다.
주택을 개조한 만큼 그리 넓진 않지만 여기저기 꼼꼼하게 시선을 두느라 꽤 오래 구경을 했다. 원래 주택이었고, 주택은 본래 여러 개의 방이 있지 않나. 무양주택은 그 방들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강화했다. 그래서 그 방들은 비밀스러운 담소 공간이 됐다. 가장 눈이 갔던 공간은 다락방이었다.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가 다락방에 들어가면 허리를 다 펴지 못하고 앉아야 하는 공간이 나오는데, 그 작은 공간이 주는 아늑함은 컸다.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서 나누는 이야기는 더 따스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니까. 그곳에 자리 잡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계속 곁눈질로 다락방 쪽을 쳐다봤지만, 역시 인기있는 공간인지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았다.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공간을 여러 개로 나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만든 건 물론이고 공간을 채운 요소들도 개성있기 때문이다. 테이블과 의자들 중에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 다른 모양새라 오히려 이곳만의 통일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소중한 이들과 와서 조용히 노닥이다가 가고픈 곳. 카페 중에서도 어느 카페는 시끄럽게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 곳이 있고, 어느 카페는 속삭여야만 할 것 같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후자다. 비밀공간 같은 곳이니까.
이제 카페의 본질인 커피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예찬론자이다. 오면서 이곳을 검색을 했을 땐 원두 타입이 두 가지였는데, 주문하려고 보니 한 가지라고 한다. 아마도 산미 있는 원두는 인기가 없어서 단일 메뉴가 되었나 보다. 한 모금 마시자 예상했던 대로 신선한 원두 맛이 느껴졌다. 기대했던 만큼 느린 풍경 속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렇게 한동안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선… 아니 공간을 탐닉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테다. 공간 곳곳을 눈에도 사진에도 담고 커피향을 가득 들이마셨으니까. 그러느라 거의 그대로 남아버린 커피는 테이크아웃잔에 옮겨 들고 나왔다. 주택을 개조했지만 모든 테이블과 의자가 똑같았다면. 화장실은 보통의 화장실과 같았다면. 독립서점에서 볼 수 있을 만한 책이 아닌 베스트셀러가 놓여 있었다면. 뭐 하나만 달랐어도 이곳이 내 마음에 닿지 못했을 텐데. 입구부터 시작해서 이곳의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까탈스러운 커피애호가로, 가끔 일부러 시간을 들여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때, 이곳을 떠올려도 좋다. 무양주택은 커피가 맛없다고 해도, 인테리어만으로 커피 맛집이 될 수 있는 그 정도의 공간이니까. 여기에 커피를 좋아한다면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권한다. 예쁘고 아늑하고 따뜻한 비밀공간에서 조금은 비밀스러워지는 것도 괜찮을 거다.
2023.02.09. 커피향을 가득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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