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싱어게인3를 재미있게 봤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음악으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던 적도 여러번이었다.
알다시피 싱어게인은 음원이나 앨범을 한 번 이상 발매한 가수들이 참가해서 경연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때 반짝하고 빛나던 가수들도 있고, 꾸준하게 활동했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닿지는 못했던 가수들도 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점검 받고 싶어하고, 대중들에게 주목 받고 싶어 한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즌에도 참가자들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무대들이 큰 감동을 주었는데, 특히 이번 시즌에는 참가자들의 ‘성실함’이 두드러지는 장면들이 많이 기억에 남았다.
매 무대마다 완성도 높은 노래를 선보여 심사위원들로부터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가수이젤, 파이널 무대 노래를 부르기 전, 사전 영상에서 부른 <How to love my 22> 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도 살짝 찡했다. 연습생 생활을 막 시작하던 본인의 스물 두살을 사랑할 수 없던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사라지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고, 그런 나의 스물 두살을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노래가사가 실수 투성이인 이십대 초반을 지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가사였다. 역시 그 지난한 연습생의 날을 경험했던, 영상에 출연했던 STACY의 세은도 노래를 듣고 눈물을 터트린다. 숱하게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불합격 뿐인 날들을 지나며, 당시 기록했던 일기들이 화면속에 비쳐졌다. 그런 날들의 쌓여 전문가들도 부정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내지르지 않는 창법으로도 우승후보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소수빈도 인상적이었다. 500곡을 넘게 들어보며 마지막 참가곡을 골랐으며, 때로는 본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만족스러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그는 “힘들었어도 이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이 ‘쉽게’ 이야기를 설명 받는다면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저만 어려우면 되는 거니까. 저는 앞으로도 어렵게 음악하고 여러분께는 쉬운 가수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라고 이야기 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라는 꿈을 위해 절실함과 성실함을 동력으로 후회없이 달린 젊은 예술가들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실함에 감화되었다가, 행사 30분 전에 감기기운을 이유로 행사 불참을 통보한 대통령을 보니, 씁쓸함이 몰려왔다. (그 정도 규모의 행사라면 30분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행사장에 도착해서 행사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는 시간이다.) 한 사람의 불성실로 수많은 사람이 헛걸음 하게 만든 그 상황이 나에게 큰 경각심을 준다.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이 조선일보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인격의 핵심은 성실성’이라고 말했고,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도 진행하는 팟캐스트 ‘공부’에서 “능력이라는 것은 성실입니다. 성실은 모든 삶의 기본이죠. 인간관계의 성실이나 사회적 일이나, 직업이나” 라고 말했다.
‘성실하다’라는 단어에 무덤덤한 때가 있었다. 특별한 재능이나, 재주가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수식하기 좋은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어느 수식어보다 나를 설명해주는 단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생을 성실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