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매듭 위에서 새로운 줄기가 시작하여 더 높이 커가는 것처럼 매듭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모험이자 출발이며, 더 성숙해지기 위한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매듭이라고 하는 말은 종결의 의미와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매듭은 고통이며 상처입니다. 매듭을 지을 때까지 한동안 아픔이고 시련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 때문에 발전과 도약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윤상열 “대나무 매듭처럼” 中에서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여 누구나 자신의 중요한 목표와 할 일들에 대해 계획을 세우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새해 계획은 어떨까? 고민 반 기대 반으로 각기 다른 한 해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20대라면 취업과 연애에 대한 내용일 테고, 30대라면 직장에서의 경력개발 그리고 결혼에 대한 신년의 소망이 있을 것이고, 40대 이상은 가정의 행복과 직장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전직 및 이직 등의 고민과 희망이 새해 계획의 범주 안에 있을 듯하다. 어쨌든 간에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고민은 ‘일’에 대한 것이다. 최근에는 20대에서조차 이러한 ‘일’에 대한 고민이 사랑의 희망을 압도해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자리 안정을 위한 정책 등이 자리 잡는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좋은 일자리는 드물다. 40대 이상인 분들은 퇴사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창업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2040년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은 90세라고 한다. 이는 18세기 평균수명의 무려 3배이고, 100년 전인 19세기 평균수명인 50의 2배이다. 이제 늘어난 평균수명 때문에 둘로 나뉘었던 평균 연령이 이제는 3단계의 마디로 나뉘어 인생 2 모작이 아닌 3 모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 3 모작 개념도(출처 : 고용노동부, 2017)
새 정부가 내놓은 인생 3 모작 개념도는 인생주기를 세 단락의 큰 마디로 나누어 ‘일‘의 관점에서 구분해 놓았다. 어느덧 불쑥 늘어난 80세, 100세라는 인간의 기대수명으로 인해 은퇴라는 개념은 뒤로 한참 밀려났고 그 사이에는 새로운 마디가 생겨났다. 농부가 논에 1년 안에 3번의 벼를 심어 수확하는 3 모작의 개념과 동일한데, 말하자면 우리 일생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생을 영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 모작 시기는 주된 일자리로서 30세 전후에 취업하고 50세까지의 일자리를 의미한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서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나름 승승장구하며 살아가는 시기이다. 가장 혈기왕성하고 소득도 높을 때이다. 1 모작 시기에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오랜 교육을 통해 입직(入直)하여 자신의 전문성을 추구하게 된다. 문제는 이 기간이 이전보다 훨씬 짧아졌다는 것이다.
50대 이상은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같았던 때가 있었다. 60년을 은퇴시점으로 보고 80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전제하의 이른바 ‘60년 노동시대’에서는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직업적으로 직접적으로 투자하는 효과가 있었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직업교육이었고 학교를 통한 직업교육은 생애 전반에 있어 가장 큰 투자이자 교육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30세 이후에 입직(入直)이 이뤄지고 50세도 이르기 전에 퇴직이 일어나는 것이 빈번하다. 20년을 공부하여 20년도 채 못 써먹는 꼴이다. 투자로 치자면 투자수익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투자인 셈이다.
현재처럼 오랜 시간을 투입하기보다는 짧은 시간의 교육을 통해 빠른 입직이 필요하다. 평생교육이 상식이 된 마당에 하나의 직업을 바라보고 근 20여 년간 교육에 과도하게 투자한다는 것은 생애 기준에서 바라보면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2 모작 시기는 재취업 일자리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여 이직이나 전직을 통해 지속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때다. 하지만 1 모작 기간이 단축되고 이 기간을 맞이하기 위한 충분한 여유가 없는 현실이 우리를 기다린다. 자녀는 아직 어리고 인생 재설계에 투입할 만한 충분한 재원도 마련해놓지 못했다. 만약에 직장을 나와 재취업을 한다면 좀 더 낮은 급여에 낮은 조건의 일자리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더군다나 2 모작 시기가 빨라졌다. 더불어 우리가 직장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예전보다 더 일찍 나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수입은 반토막 수준으로 노동시장에서 합의된다. 이러한 수입구조를 방어하기 위해서 설익은 창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직장인 대부분 이 시기에 경력단절을 겪게 되며 이직, 전직 등을 통해 경력단절을 극복하려 한다.
50세를 넘어서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창업의 형태는 자영업이다. 자영업 자체가 생계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영업을 통해 버는 돈이 500만 원 이하면 생계형이라고 구분 짓는데(현실적으로는 이보다도 못한 것이 부지기수다), 이는 국내 자영업의 수익구조가 악화된 것이 문제지 자영업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의 경우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아픔을 추스르고 태어난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특히 부모와 자식 세대를 동시에 부양하면서 최초로 자식 세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은퇴를 했는데, 나와보니 은퇴가 아니고, 더 무서운 것은 아직 살아갈 인생이 지나온 삶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남은 기간이 지내온 기간보다 더 많이 남아 있기에 이 시기에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개인적인 전환(Conversion)이 필요한 시기이다.
3 모작 시기의 일자리는 사회공헌 일자리로서 이 시기에는 노동력이나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안정적인 복지국가라면 연금을 받으면서 살 만한 나이지만 우리의 경우 현재의 연금으로는 외로움조차 달래 줄 수도 없다. 많이 남아도는 시간경영을 별다르게 할 방법이 없다. 돈도 필요하다. 결국은 일거리가 최고의 복지인 셈이다. 이 시기의 일자리는 사회공헌과 소득 행위를 지속하는 형태에 해당한다. 자신이 속한 개인의 공동체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적합성이 중요하다. 시골에서 옛날 어르신이 새끼 꼬고 짚신을 지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과 같다.
인생 3 모작의 논리적 모형에 의하면 한 사람은 인생에서 최소 평균 3가지 이상의 직업이나 직장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이제 초중고 시절에만 진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서 진로 고민을 하게 생겼다. 인생이라는 대나무는 길어졌지만 그 마디는 짧아졌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그런 마디들도 겪어야 한다. 1 모작 시기는 짧아지고 2 모작 시기는 더 앞당겨졌다. 남아 있는 3분기의 삶은 전체적으로는 앞으로 늘어날 일만 남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인생 2 모작의 개념도 아직 생소하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외에는 정년이라는 개념은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비현실적인 이야기고, 퇴사 연령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40 이후의 재취업도 현실적으로 낙관하기에는 어렵다.
많은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30~40대가 핵심을 이루고 있고, 40대 이후에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은 웬만한 능력으로는 힘들어 보인다. 50대 이상에서는 스스로 고용하라는 말처럼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해야 하는 필요성을 누구나 공감하게 되었다.
60년 노동시대의 일은 전체 인생에서 긴 직선과도 같이 평이하고 굴곡이 없었다. 가까스로 60년의 정년을 거치더라도 앞으로 생은 무려 지나온 생에 비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생이 남아 있다.
80년 노동시대에는 계속 학습하고 자기발전을 하며 재교육과 자기투자를 통해 여러 개의 직업을 거칠 수밖에 없다. 60년 노동시대에서 벗어나 이는 하나의 가닥으로 뽑은 줄과 여러 개의 가닥으로 매듭을 지은 줄이 그 강도에 있어 다르다.
이에 비유하면 100세 인생을 지탱하는 데 있어서 하나 이상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100세 시대의 일은 한 인생의 하나의 직업이라는 개념에 하나의 인생에 여러 개의 직업이 포트폴리오로 구성되어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형이 연속적으로 온전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마디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전환(Transformation)이 일어나야 한다. 즉 생애 재설계를 통해 현 단계에서 다음의 단계를 보장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흥미와 재능의 발견을 통해 적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일자리의 탄생, 그 시작은 자신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3 모작 시기를 걸쳐 독립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에게 우호적인 협업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지속적인 학습능력과 각 주기를 관리하는 자기경영 능력이 가장 필요한 생애 능력이라고 하겠다.
최근 필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는 바로 2 모작 시기이다. 아직 전반전이 끝난 시기도 아니며 남은 기간도 충분하다. 잘못 걸어왔다면 다시 되돌아갈 여유도 있다. 이 시기의 단절은 안정을 깨트리고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단절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전체를 다시금 보게 한다. 늘 가던 길에 새로운 도로가 나서 내비게이션이 재탐색해서 경로를 재설정하듯이 현재를 다시 정의해야 하고 다시금 방향성을 잡고 발걸음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 2막이라는 칼럼의 제목에서 의미하듯 본 글의 독자는 어느 정도 직장생활을 통해 경력 전쟁이라는 길을 지나 자신의 일과 생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시기의 직장인이 될 것이다.
대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디를 형성하는 것처럼 스스로 일을 만드는 과정들은 닮아 있다고 본다. 인생에서 자기의 업(業)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대나무가 아무리 심한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마디와 매듭 때문이다. 재도전은 인생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당신에게 고통이라는 태풍에 견디기 위한 체력과 희망이 될 것이다. 길고 긴 인생 불확실의 불안으로 사는 것보다 확신에 찬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든든한 마디가 필요하다.
다시 뛰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듯이 작심삼일이 될 만한 금연이나 내년에도 다시 기억날 새해 계획이 아닌, 올해의 새해 설계에는 당신의 인생 마디의 매듭을 묶을 준비가 포함되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