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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인지적 구두쇠

그의 일상, 그녀의 추억

빅토리아 왕조시대를 넘어가는 어느 겨울, 1900년 초 비엔나의 어느 골목 한 사내가 마차에서 내린다. 


그는 한 남자로부터 결투신청을 받고, 두어시간뒤에 결투를 해야 한다. 


같이 왔던 남자들은 그가 결투에 참여하지 않고 도망갈것이라고 수군댄다. 


그의 생각도 그렇다. 객기에 결투를 받아줬지만, 정작 신사는 아니었다.  


그는 싸울 맘은 없어 그들의 말대로 도망칠 결심을 했던 터였다. 


벙어리 하인이 그의 모자를 받아들면서 그에게 편지를 건네준다. 

발신인의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는 편지 


"이 편지를 받았을때쯤이면 나는 죽어 있을거예요"


그는 도망칠 생각은 저만치 두고, 편지를 차분하게 읽어내려간다.     


첫 문장과 시작된 편지는 소녀로 부터 시작하는 여자와 남자의 과거가 담긴 편지였다. 


여자는 둘이 간직하고 싶었던 추억이라고 말하지만 남자는 기억 깊숙한 곳에 손을 뻗어 겨우 그녀를 기억한다.  


십수년전 자신의 아파트에 이사온 남자를 기억하는 한 소녀의 뒤늦은 고백에서 부터 잊어버렸던 여자의 기억과 재회가 스쳐지나간다. 


그녀가 기억하는 황홀한 만남에서 이별까지, 그리고 존재를 몰랐던 자신의 아들까지


세월이 흘러 다시 그들이 만난 날 그녀는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랬지만 남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영원히 그를 떠났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고, 그녀 역시 장티푸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그녀는 이 편지를 보낸다. 

비로서 그는 그녀를 기억하고, 후회와 회환이 밀려온다. 


자신의 재능덕에 너무 빨리 맞이한 성공과 주위의 환호, 그리고 여자들, 그녀는 그의 여자들 중에 그저 지나가는 한 여자일뿐이였다. 


누구에게는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지만 누구는 그저 일상인 기억 


인지적 구두쇠인 인간에게 자동화된 일상은 특별한 트리거가 없으면 재생되기 힘들다. 


그에게 그녀는 그저 그런 스쳐지나가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특별해지고 싶었지만 그저 일상과 다름없는 풍경이었던 사람. 


여자를 기억하고 자신의 낭비된 젊음과 빛나는 청춘을 뒤로 한채 지고 지순한 여인을 생각하며 회환과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죽기전에 그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추억은 소중하다. 일생을 바쳐 사랑했지만 그것을 알려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로 불리우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여인상이 전 시대의 사랑받기 만을 원하는 수동적인 여인과 달랐기 때문이다. 


남자는 편지를 읽는 동안에 도망칠 시간없이 결투에 임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결투를 신청한 남자가 바로 그 여인의 남편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여자는 하늘에서 자신의 아들과 함께 그를 소환한 것이라면 로맨틱하기전에 너무 섬찟하지 않은가 


집을 나서는 중 그는 환영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그 소녀를 다시 만난다. 


그녀에게 답장을 쓰는 대신 죽음을 기꺼이 택한 것일까, 남자는 체념한듯 마차에 오른다. 

From 막스 오퓔스 감독 48년작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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