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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Mar 24. 2024

모나리자: 파리의 초상화

프랑스의 환경 운동가들은 유명 그림 위로 수프를 던진다. 지난 2월, ‘식량 대응(Riposte Alimentaire)’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활동가들이 리옹 미술관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그림 ‘봄(Le Printemps)’ 위로 노란색 수프를 투척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얼굴에 주황색 수프가 뿌려진 지 한 달 만이다. 둘 사이에는 거장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모네의 그림 테러 직후에는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봄은 없습니다’라는 펀치라인이 준비되어 있었던 반면에 모나리자의 경우 단지 그녀의 유명세 때문이었다. 이런 수모를 모나리자가 처음 겪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2년 전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로 변장한 남성이 그림 위로 케이크를 집어던진 바 있었다. 남성은 보안요원에 의해 끌려나가면서 “지구를 생각하라”라고 외쳤다. 어쩌면 1950년대에 있었던 돌멩이와 황산 테러 사건 이후에 모나리자가 강화유리 안에 보관되면서 이런 퍼포먼스에 최적화가 된 모양이다. 그들의 예술에 대한 테러 혹은 예술적인 테러가 다음 타깃을 찾고 있다는 영화 같은 소식을 들으며 생각했다. 과연 프랑스를 활동가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예술가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모나리자가 영구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루브르는 파리의 1구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박물관이다. 중세 시대에 성채로서 처음 세워졌고 이후 여러 차례 확장을 통해 궁정으로 활용되었다. 18세기, 왕정이 몰락하고 찾아온 계몽 시대에 국회는 루브르를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루브르의 역사는 곧 프랑스의 역사이기도 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승리 후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 설치된 피라미드 건축물 앞에서 지지자들과 축하 행사를 가졌다. 중도파를 표방하는 마크롱은 루브르가 가장 정치적 의미가 약하다며 그 선정 이유를 말했지만, 그곳은 나폴레옹 1세가 영사로 임명된 장소이기도 하다. 또 유리 금속 피라미드를 보며 파라오의 ‘전능한’ 능력을 떠올리기 위해 이집트학 전공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간 8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하며, 50만 점이 넘는 작품을 보유한 이 상징적 장소는 오늘도 예술을 대중에게 보급하려는 시도와 수집품과 전리품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따라서 앞서 ‘예술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슬로건으로 모나리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예술품이 가진 정치적 지위를 무시하거나 그 중요성을 축소하는 실수처럼 보인다. 


오랜 무명 기간 끝에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모나리자 그림은 루브르와 프랑스의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끝없는 인파와 각양각색의 관람법 때문에 방문객 리뷰에 부정적인 언급이 40%에 육박하며,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걸작'으로 평가 절하되었다. 프랑스에 여러 해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년에야 처음으로 모나리자를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박물관의 야간 개장 시간 동안, 그리고 폐장 직전에 우연히 박물관에 들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년이 넘도록 희미한 눈썹 자국 탓에 사람들의 입 밖에 오르고, 노랫말이 되거나 패러디 이미지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지만 결코 미소를 잃지 않은 모나리자가 그곳에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뛰어난 기술, 작품 속 감정과 생생한 표현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우라를 목격한 나는 전 세계의 눈이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의 이름이 모든 언어로 불리게 된 비결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박한 크기의 포플러 나무액자 속 그녀는 함께 셀카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그랬듯 다정하고 신비로운, 아주 옅은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훌륭한 외교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발행일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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