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쉐린은 식당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으로도 유명하다. 그 책이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리던 때에는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암행 평가원들이 수여하는 별 하나에 어떤 식당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 돌연히 SNS 시대가 도래하고, 구글이 취합하는 개인의 리뷰와 평점이 중요해지면서 미쉐린의 별은 찌그러졌다며 비판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년 봄이 되면 그들의 권위 있는 평가에 온세계가 여전히 귀를 기울인다. 당연하게도 세계 미식의 수도중 하나인 파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쉐린의 별이 존재한다. 파리지앵들의 미식에 대한 열정은 코로나 19 유행으로 도시가 마비되었을 때도 예외가 없었다. 고가의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 식당에서 배달된 코스 요리를 즐기면서, 여섯 종류 이상의 소스를 직접 데워 먹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파리 곳곳에는 와인 상점이 우리나라의 편의점만큼 많고, 거리의 쇼윈도에는 보석 대신 화려한 디저트가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파리의 미식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비스트로(Bistrot)다.
비스트로는 그 용어의 유래가 불투명하지만–프랑스 사전 Le Petit Robert에서는 질이 나쁜 술이나 브랜디가 섞인 커피를 지칭하는 비스투이(bistouille)나 ‘빨리’라는 뜻의 러시아어 비스트로(bistro)를 어원으로 제시하고 있다–이탈리아의 ‘피제리아’나 스페인의 ‘타파스 바’와 같이, 단순한 요리 이상의 문화와 지역 정서를 담고 있다. 프랑스 전통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소위 ‘프렌치 비스트로’는 그런 점에서 국경 없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프랑스의 주요 식문화 수출품 중 하나다. 카페와 레스토랑 사이 어디쯤 위치하는 비스트로는 부르주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말하자면 샴페인보다는 와인이나 맥주 한잔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단골들은 검은색 칠판에 대충 적어둔 메뉴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불평하면서도, 저렴한 와인 목록을 끊임없이 탐닉한다. 일부가 콩투아(comptoir)-서서 음료나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계산대-에 비스듬히 기대어서 오직 술을 안주삼아 대화에만 빠져있다고 해서 이곳에 미식 경험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티초크, 농어, 가리비, 쇠고기, 비둘기 고기 등 재료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송아지의 뇌와 흉선 같은 특수부위야 말로 비스트로의 시그니처 메뉴다.
아무리 귀한 제철 재료라 할지라도 비스트로에서는 마치 가정의 식탁과 같이 소박하게 그러나 푸짐하게 제공된다. 느닷없이 헛헛한 감정이 찾아오면 한식당이 아닌 벨빌(Belleville)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허름한 비스트로를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무뚝뚝한 서비스와 투박한 담음새에도 어째서인지 경계심이 금세 풀려버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국적인 요소가 조화롭게 섞인 그곳의 요리들은 이방인인 내게 작은 격려처럼 다가왔다. 음악소리 하나 없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나면 나도 모르게 분주한 공간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이런 덕분에 매년 은퇴설이 도는 셰프의 건강을 핑계 삼아 더 자주 그곳을 찾게 된다. 이제 우리는 누구나 미식가나 아마추어 평론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 높은 식사에 대한 요구가, 비스트로와 가스트로노미를 합친 비스트로노미 운동과 기성 셰프들의 은퇴를 부추기고 있으리라. 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줄곧 비스트로를 엄격하게 정의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곳에서 가벼운 관계의 필요성을 배웠기 때문이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발행일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