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아르메니아 청취자의 사연을 들었다. 이민자인 그는 성별을 구분하는 프랑스어의 관사 사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바게트를 하나 사더라도 그 단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생각하며 "Un", "Une", "le", 또는 "la" 중에 무엇을 붙여야 할지 매번 깊이 고민한다. 그런 그에게 한 프랑스인이 기가 막힌 해결책을 주었다고 한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이제 저는 바게트를 두 개(Deux baguettes)씩 주문합니다." 그의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웃픈 이야기다. 그가 추가로 구매해야 했던 바게트 한 개는 마치 이민자들이 매일같이 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세금과도 같다. 차별과 소외는 늘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어, 어느 날에는 넘길 수 있지만 또 다른 날에는 눈물이 왈칵 날 정도로 부당하게 느껴진다. 그날 나는 이런 대우를 피하기 위해 열심히 프랑스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도시는 어느덧 2024년 하계 올림픽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허둥지둥하는 손님맞이도, 시민들의 볼멘소리도 클라이맥스에 다 달았다. 1924년 이후 정확히 100년 만의 개최인 데다가, 참가국은 206개-이는 유엔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195개국보다도 많은 숫자다-라니, 과한 욕심도 이해가 간다. 한동안 곳곳에 공사 때문에 발생한 소음이나 운행 시간도 방식도 제멋대로였던 혼잡스러운 대중교통은 그렇다 쳐도, 올림픽이 진행되는 두 달 동안 두배로 인상된 교통요금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는 듯하다. 파리의 대중교통이 가진 문제들은 올림픽을 운운하지 않아도 이미 악명이 높다. 두 달간 인상된 요금은 실제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노후 시설 개보수, 새로운 열차 도입, 운행 시간 연장과 빈도 증가, 추가 출구 및 대기 공간 확보, 교통 정보 시스템 개선 등 도시의 장기적 이동 편의성을 위한 결정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교통비를 포함한 세금이라는 것은 내가 속한 지역사회를 위한 것이다. 라디오에서 이러한 내용을 듣지 않았다면 나도 인상된 만큼의 요금을 도둑맞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올림픽 기간 동안 한적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겠다는 호화로운 해결책을 내는가 하면, 더러는 주거비와 생활비의 연쇄적인 인상으로 이미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이동 수단을 자전거로 바꾸는 등 긴축정책을 펼친다. 비록 두 달간의 임시 정책임에도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부의 횡포나 부조리로 비판하며 손가락질했다. 나는 사실상 이민자의 도시인 파리에서 올림픽 경기 동안 과연 프랑스를 응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여름 사프란 농장 취재를 위해 모로코를 방문했을 때 만난 한 베르베르인 농부가 떠올랐다. 토착민인 그는 자신의 서툰 외국어 실력을 쑥스러워했지만, 말과 낙타를 기르던 그가 이제는 꽃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나 평생에 거쳐서 베르베르어, 아랍어, 불어, 이제는 영어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딱히 불만을 품은 것 같지 않았다. 이민자들이 자신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작은 차이에도 쉽게 불평하는 한편, 오히려 자신이 뿌리내린 땅의 변화하는 환경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그를 보며, 진정한 의미의 정착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발행일 202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