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 에투알, 레퓌블리크, 바스티유, 보주... 파리는 광장으로 유명하다. 광장이라는 공간의 공공적이면서 정치적인 특성이 도시를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파리 3구, 10구, 11구가 만나는 경계에 3만 평 규모의 레퓌블리크(République) 광장은, 원래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마리안 동상을 둘러싼 원형 교차로가 놓인 차량 교통의 중심지였다. 2013년,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보행자 거리로 바뀌면서, 마리안 동상의 모티브가 된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이제 수많은 시민이 그녀 곁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공공 공간의 접근성 논의 속에 새롭게 단장한 레퓌블리크 광장은 2015년 1월 파리 테러 희생자를 위해 150만 명이 모인 역사적 추모 행진 이후, '배제'와 '포함'에 관한 한 가장 정치적인 공공장소가 되었다. 2024년 7월 4일 마리안 동상에는 이전 낙서가 지워지기도 전에 "가자를 해방하라", "나헬을 위하여", "극우 반대" 등의 문구가 덧대어져 있었다.
레퓌블리크 광장이 비극만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여름은 오전부터 밤까지 볼거리로 가득하다. 야외 공연과 사교댄스, 플리마켓, 각종 워크숍, 그리고 4년 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까지 - 이들은 더 이상 펑크족이나 마약 중독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폭염 속에서도 탁 트인 공간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소음은 그치지 않는다. 광장보다 대중적인 장소가 또 있을까? 광장의 기원이 되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와 로마의 포룸(Forum)의 공통된 특징은 정치, 상업, 종교,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목적이 혼합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바로 그곳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며, 시민들은 제 삶을 떠들어댔다. 광장의 모호한 경계 때문에 다양한 인물 간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었다. 공공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상호작용이 민주적 사회의 근간이라는 말은 교과서적이다. 공공 영역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나는 한동안 광장을 소외와 무관심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오해했다. 마치 도시의 허파 같은 그곳에서 이따금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숨을 돌렸지만, 나는 언제나 관객일 뿐, 그곳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다. 쉼이 필요하면 공원을 가면 될 일인데도, 나는 굳이 광장 위로 흘러가는 시민들의 강렬한 감정을 흘겨보며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몰래 도둑질했다. 내겐 매일의 '노동'과 목표가 있는 '작업'은 있었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정체성이 드러나는 '행동'이 결여되어 있었다. 더 이상 이방인 콤플렉스를 당연시하거나 -그것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프랑스에 있을 때도 찾아오는 것이다 - 개인적인 존재로만 남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텅 빈 공간에서 조용히 발버둥 쳤다. 광장은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비어 있음 자체가 목적인 곳이다. 그곳은 행동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질 수 있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발행일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