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IS THE NEW ITALIAN',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젊은 프랑스인 외식사업가의 사업계획서에 적힌 이 문구를 보았을 때, 마음속에서 벅차면서도 먹먹한 양가감정이 일어났다. 유럽의 문화 중심지인 파리에서 모국의 소식이 반갑지 않을 리 없지만, 마치 로마자로 표기된 한국의 고유 명사처럼 서먹한 일이었다. 한류가 전방위적으로 밀려드는 이곳에서 내가 아는 고향은 점점 기억 속으로 밀려난다. 프랑스 문화의 환상과 환멸을 가감 없이 적어내리기로 결심한 이 글에서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는 단순히 플라뇌르(flâneur) - 벤야민이 얘기한 아무 목적 없이 도시를 거니는 사람 혹은 한가로운 구경꾼 - 가 될 수 없었다. 이제 파리의 풍경도 크건 작건 한국이라는 조각을 빼고는 완성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유튜버의 말을 듣고 내게 세계적인 한국의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지인들의 물음처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풍이 곧 새로운 이탈리아풍이다'라는 표현은 이탈리아인들의 피자와 파스타가 지닌 세계적인 권위가 곧 한국 요리로 대체될 것처럼 들린다. 그다음으로 인기가 많다고 알려진 중국 요리나 일본 요리와 본격적으로 경합하기도 전에 한국은 챔피언과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게 된 셈이다. 파리 무대에서 격전을 벌일 두 반도 국가는 이미 지리적, 문화적으로 여러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족 중심의 문화에서 드러나는 어머니의 역할은 두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라는 비공식적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강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서로 다른 맛의 비밀을 정확히 계량한 레시피로 밝혀내지 않고 '손맛'으로 적당히 설명하는 것도 닮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요리의 세계화 비결은 식탁 위에서 풍요롭게 표현되는 그들만의 언어, 정신, 심지어는 맛과도 무관하다. 파리에서 몇 년 동안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빅 맘마(Big Mamma) 그룹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방문하면서 푸짐한 인상의 이탈리아 어머니가 마중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는 흔히 '심플리시티(Simplicity)', 단순함 내지는 소박함으로 설명된다. 원재료의 질과 본연의 맛을 최대한 활용하는 그들의 철학이 세계화 과정에서 '간단한 공정'으로 오역되었다. 20세기 초부터 대량으로 정교하게 생산된 건조 파스타 면과 통조림 토마토가 그 오해의 근거가 되었다. 저렴하고 빠르게 조리되는 피자와 파스타는 - 그래서 더 맛있지만 - 로마의 소꼬리 스튜나 나폴리의 사르투(sartù), 칼라브리아의 미역 튀김처럼 특정 지역의 향수를 일으키지 않는다. 파리까지 덮친 문화 쓰나미 속에서, 소위 K-푸드는 무엇으로 번역되고 있을까. 눈물 나게 매운맛? 혹은 단 몇 분이면 조리되는 인스턴트일까? 2009년 40여 개로 집계되었던 파리의 한식당은 이제 400여 개까지 늘어났다. 이 중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운영하는 데, 이는 대개 세계를 매료시킨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는 무관하다. 한국인의 이야기가 담긴 조리법 대신, 이익을 정확하게 계량하는 레시피만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 소프트 파워(soft power) 또는 연성 권력(軟性權力)은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프 나이가 고안한 개념으로, 설득의 수단으로서 돈이나 권력 등의 강요가 아닌 매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