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연대기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에서 열린 블랙핑크 콘서트에 방문한 한 프랑스 팬이 말했다. "이건 모두의 축제예요. 우리는 그냥 있는 그대로 왔어요. 맥도날드에 가듯이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K-pop 공연장은 각자의 특별한 정체성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한때 맥도날드에 맞서 농업 보호와 반(反)글로벌화 운동의 중심이었던 파리도 이제는 패스트푸드 체인이 가장 흔한 대중음식점이 되었다는 현실이다. 마니아를 위한 한류가 프랑스의 '보편적'인 문화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다양성과 개방성을 지향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국의 최장수 연예 프로그램인 지미 팰론의 ‘더 투나잇 쇼’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랩몬스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시아 국가의 작은 레이블에서 왔어요. 우리는 외부에서 온 누군가가 주류가 될 수 있다는 증거죠." 거세게 몰아치는 한류는 단순히 주류에 합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주류 연대기'를 자처하며 길을 이어갔다.
BTS는 온전한 한국인 그룹으로서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그룹이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은 날아오는 탄환을 막는다는 의미와 보이 스카우트를 뜻하는 단어의 조합으로, 멤버들이 젊은 세대를 지키는 수호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들의 외모에는 그러한 신빙성이 있었다. 데뷔 이후 전 세계에서 220개 이상의 상을 휩쓸고, 300회 이상 후보에 오른 이 보이밴드는 아시아, 미국, 남미, 유럽 등지에서 대규모 공연을 열며, 문자 그대로 국경 없는 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랩, 팝, R&B, 하우스와 레게톤의 융합 장르인 뭄바톤 등을 결합해 장르의 경계 또한 허물었다. BTS가 써 내려간 신화는 이제 50년 전 보이밴드의 시초인 비틀스 이외에는 달리 비교할 대상이 없다. 두 그룹 모두 청춘과 저항의 아이콘으로서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 접근 방식에서는 수제 공예품과 대량 생산된 공산품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은 상업적 성공 이후에도 끊임없는 음악적 실험을 통해 미국 팝 음악의 지형을 변화시킨 반면, 한류(Korean Wave)는 시장 수요에 맞춰 전문가들이 기획한 현상으로, 시장의 변덕에 따라 쉽게 대체될 위험이 있다.
자유, 평등, 박애로 잘 알려진 프랑스 공화국의 근본적인 가치는 프랑스만의 '소수지향적' 문화를 통해 그 고유성을 잘 나타내왔다.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에는 소수 집단의 목소리와 표현을 중심에 두고, 그 다양성과 개성을 보존하려는 미학적, 철학적 의식이 있다.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웅장한 퍼포먼스 대신, 소수자 감성과 다양성을 강조한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통해 그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다시 한번 잘 드러났다. 논쟁적이며 논란을 주저하지 않는 문화적 정체성이야말로 그동안 미식, 예술,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랑스가 전 세계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본래 프랑스인들의 주류와 비주류의 공생을 향한 치열한 시도는 비주류를 주류로 만들려는 맥도날드의 자본주의식 현지화 전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 전략이란 것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특정 문화나 정체성을 지우거나 약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샹젤리제 거리에 1호점을 처음 개점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맥도날드의 목표는 햄버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획일화와 대량생산을 통해 세계적인 확장을 이루는 것이었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