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영화관을 의미하는 '극장'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연극을 공연하는 무대를 의미한다. 파리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하면서도 현재까지 활발히 공연을 올리는 상징적인 극장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발레와 오페라 공연이 주로 열리는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와, 1680년에 설립된 국립극장으로, 몰리에르가 창설에 기여한 것으로 유명한 코미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가 있다. 이 외에도 파리에는 300개 이상의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극장이 존재한다. 이 숫자는 프랑스인들의 공연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무대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각종 무대 예술은 전기나 수도처럼 필수 공공재로서 보급된다. '문화 민주화'라는 비전 아래 정부가 매년 200억 유로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하며, '문화 분권화' 정책을 통해 지방 도시에서도 연극과 공연 예술을 활성화하고,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람비를 지원하는 문화 패스권(Pass Culture)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리 정부의 이런 노력이 있더라도, 관객 없이는 공연 문화가 존재할 수 없다.
파리의 300개의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은 참 다양하다. 프랑스 전역을 순회하는 클래식 연주자, 무용수, 배우들의 세계적인 공연뿐만 아니라, 언젠가 그들과 같은 공연장 위에 오를 지망생과 학생들의 공연도 마찬가지로 성황을 이룬다. 또한 고전극과 현대극, 댄스, 카바레, 오르간이나 아코디언 연주회까지 열리는 파리는 비주류 예술가들의 성지와도 같다. 20석에서 3000석에 달하는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에서 아마추어 공연가와 관객이 만나는 프랑스만의 문화적 생태계는 신진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주목받을 수 있는 긍정적 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실황 공연을 향한 프랑스인들의 열정은 자국 축구 리그를 향한 영국인들의 열정과 닮은 구석이 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고 영예롭게 여겨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뿐만 아니라,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라고 알려진 5부 리그(National League)에서도 관중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축구 경기장 수와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영국에서 축구는 아마도 가장 평등하고 민주적인 스포츠일 것이다. 간단한 규칙과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누구든 즐길 수 있다.
파리는 희비가 엇갈리는 한 편의 극처럼 올림픽을 마쳤다. '모두에게 열린 대회'를 슬로건으로 내건 파리 올림픽은 코로나 이후 다시 지구촌 축제로 전환하는 기점이 되었다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하루는 스웨덴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6m 25cm를 뛰어올라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는 모습을 보고 경탄하면서, 나는 그의 도약이 정말 지구촌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이틀 뒤, 높이뛰기 종목에서 세 번째 시도마저 실패하고 7위를 기록한 우상혁 선수가 금메달을 딴 선수와 같은 미소를 띠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그들은 모두 엘리트 선수이자 아마추어였다. 프랑스어 '아마추어(amateur)'는 결코 기술적으로 미숙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랑하다(amator)'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처럼, 아마추어는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엘리트주의와 전문가들의 시대에 아마추어 정신이란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