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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Jun 12. 2024

와인에 의한, 와인을 위한


한국 음식은 흔히 장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장은 오랜 시간 정성으로 만드는 재료이면서, 집집마다 개성이 담겨 있으며, 식탁 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요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감히 말하건대, 프랑스 음식은 와인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프랑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고 말하면, 와인을 함께 곁들였는지, 어떤 와인을 골랐는지 묻게 된다. 모두 알다시피 음식의 순서를 구조화한 '코스 요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발명품 중 하나다. 구성을 아무리 간소화해도 메인 요리 앞뒤로 전채 요리와 디저트는 빠질 수 없다. 빵에 치즈만 곁들인 소박한 식탁부터 아뮤즈 부쉬(Amuse-bouche)가 세 가지씩이나 포함된 코스 요리까지, 와인은 모든 순간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존재다. 프랑스는 까다로운 식사 예절로 유명하지만, 와인을 둘러싼 정교한 예절과 지역마다 다른 와인 소비 방법은 비할 수 없이 풍부하다. 잘 숙성된 와인은 잘 발효된 장처럼 식사 후에도 깊은 맛과 여운을 남긴다.   


장이 요리에 풍미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주인공이 되는 일은 드물다. 된장, 고추장, 간장이 아무리 맛있어도 손님에게 장만 내어주는 경우는 없다. 반면 와인은 곁들여지기만 하는 조연의 운명을 당당하게 거부한다. 레스토랑, 비스트로, 혹은 카페 어디에서도 와인을 찾을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은 꺄브아방(Cave à vin)과 바아방(Bar à vin)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직역하면 와인 창고와 와인 바쯤 되겠지만, 식사도 가능한 이곳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한 장을 넘지 않는 단출한 음식 메뉴와 그에 비교되는 사전 두께의 와인 리스트일 것이다. 음식은 차갑게 제공되는 모둠 치즈와 샤퀴트리가 일반적이며, 대부분 와인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고추장 만드는 비법에 관하여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던 어느 브랜드 광고와는 달리 이곳은 다양한 빈티지의 와인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매력을 탐구하는 문화 공간에 가깝다. 전문가들이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주문 전에 시음을 권하는 와인들은 다양한 취향과 예산에 언제나 부합한다.


카운터나 테이블을 차지하는 비용을 조금만 더 내면 와인을 도매가격에 마실 수 있는 이 경제적인 형식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주요 이유다. 한편, 와인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판매되지 않는 희소한 와인들을 리스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인은 현장에서만 소비가 가능하다. 아직 예리하게 와인의 맛을 구분해내지 못하는 나는 그런 애호가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그들은 열정과 애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맛이라도 발견한 듯 떠들어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곳을 파리의 포장마차라고 부른다. 그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한 이민 생활에 대한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살짝 취기가 오르면, 나는 여전히 위대한 결정이 식탁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이 자신의 세상을 바꿀 만큼 중대한 것이라면 와인 한잔이 도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중인 글입니다.(발행일 20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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